“너 왜 이렇게 늙었니?”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은 영화 <묻지마 패밀리>와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을 끝내고 일년 만에 만난 류덕환에게 그런 서운한 말을 건넸다. 열아홉 나이보다 두세살은 어려 보이는데, 무슨 뜻이었을까. 박광현 감독은 류덕환에게 미친 소녀 여일과 함께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는 꼬마 동구 역을 맡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류덕환은 연극에서 자신이 맡았던 배역보다 한참 커버렸고, 그를 위해 나이를 낮춘, 인민군 병사 서택기 역을 대신 하게 됐다. “인상 때문인지 착하고 순박한 역을 주로 맡았어요. <전원일기>에서 맡은 복길이 동생 순길이 역도 그랬고. 그런데 서택기는 다르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하기에 따라 카리스마도 있을 것 같고.”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영화와 배역을 설명해주는 소년. 영리하고 어른스럽다던, 박광현 감독의 칭찬이 새삼 떠올랐다.
여덟살 때부터 연극을 한 류덕환은 엄마가 옆에 없으면 제대로 말도 못하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다. 웅변과 연기 중 택한 것이 연기. 신기하게도 그는 대본만 손에 쥐면 엄마도 찾지 않았고 낯모르는 사람과도 곧잘 어울릴 수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고비도 겪었다. 성적이 곤두박질쳐서 일년을 쉬기도 했고 자라지 않는 키 때문에 고민도 했다. 그러나 류덕환은 <묻지마 패밀리> 중에서 <내 나이키>에 출연한 인연으로 계속된 <웰컴 투 동막골>에서 답을 얻었다. “영화 찍으면서 하균이 형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네가 연기를 정말 잘하면 사람들은 키가 아니라 연기를 먼저 봐줄 거라고.” 소주잔에 초코우유와 딸기우유를 담아 마시면서도 빠지지 않던 술자리가 그에겐 사람과 친해지는 계기 이상이었던 셈이다.
지금 류덕환은 키가 170cm가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소년이다. 그를 보고서, 운동화와 티셔츠와 책받침에 나이키 로고를 그려넣고 좋아하던 <내 나이키>의 명진이 냉큼 떠올랐던 것도, 몇년 사이 그리 변하지 않은 얼굴과 체격 탓이었을 거다. 그러나 류덕환이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며 숭배하는 조승우도 그렇게 큰 체격을 갖고 있진 않다. 류덕환의 마음속 무언가가 키보다도 훨씬 크게 자라나기를,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에 빌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