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개봉한 조엘 슈마허의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을 충실하게 복제하려 했다. 음악과 드라마뿐만 아니라 미술까지도. 황금색과 겨울 안개빛깔이 교차하는 <오페라의 유령>은 영화만이 가능한 스펙터클을 창조하기보다 원작의 무대를 필름 위에 그대로 투영하는 편을 택했다. 브로드웨이팀이 무대장치까지 공수해온 내한공연을 보면 슈마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의 촛불과 샹들리에, 의상, 마스크는 빛을 뿜는다. 화려한 오페라 극장과 팬텀이 숨어 사는 지하 호수, 그 지하를 가로지르는, 지상에 필적하는 구조물, 가면무도회와 오페라. 슈마허는 1986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오페라의 유령>에 사로잡힌 듯하다.
뮤지컬의 원작 <오페라의 유령>은 20세기 초반 소설답게 음산한 톤으로 지난 세기를 회상하면서, 단순하지만 매혹적인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불타버린 파리 오페라 극장, 늙은 라울 자작은 극장 소장품을 경매하는 자리에 참석해서 옛 시절을 회상한다. 그리고 유명한 메인 테마와 함께 추락한 샹들리에가 치솟으면서 오페라 극장은 화려했던 수십년 전으로 돌아간다. 소프라노 가수 크리스틴은 오페라 극장에 은거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노래 수업을 받아왔다. 그 남자 팬텀은 추악한 외모를 가면으로 가리고 오직 혼자서 살아가는 인물. 그는 크리스틴을 사랑하지만 연적 라울 자작이 나타나면서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살인과 증오, 납치가 계속된 몇달. 라울은 팬텀의 지하 호수까지 내려가 크리스틴을 되찾아오고자 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영화로 치자면 블록버스터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무대는 암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넓은 공간을 장악하며 세트를 바꾸고, 육중한 화성의 음악은 마음뿐만 아니라 공기 그 자체를 물리적으로 뒤흔든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런 엄청난 규모 때문에 투어공연이 힘들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공연은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이 연합하여 순익분기점의 부담을 나누어가지는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 한톤 가라앉은 유럽적인 느낌의 런던이나 다소 소박했던 한국 무대에 비해 대중적이고 스펙터클한 오락물의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