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 음반을 살뜰히 취급하는 음반 매장에 가보면 EP와 싱글 음반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미니 앨범격인 EP와 두어곡의 신곡을 담은 싱글은 경제적이고 기동력 있는 제작과 부담없는 가격 때문에 2003년경부터 인디 신에서 각광받아왔다. 순탄치 않은 유통과 홍보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지만, 듣도 보도 못한 밴드의 음반부터 나름대로 이름있는 밴드의 음반까지 쉽고 다양한 접근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흐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주에 소개할 음반 2종은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춘 인디 뮤지션의 EP와 싱글에 해당한다. <반도의 끝>(열두폭병풍 발매)은 스웨터의 프론트 우먼 이아립의 사이드 프로젝트 음반이다. 까만 봉투를 열면 CD와 함께 앞뒤 열두폭으로 된 종이 케이스 겸 속지가 나오는데, 수록곡들은 반도 지도에 저해상도 해변 사진을 포갠 흑백 아트워크가 주는 느낌과 부합한다. 달리 말해 그건 한줌의 아련함을 머금고 있는 깔끔함이다.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이아립의 보컬은 때론 또렷하게 때론 흐릿하게 흘러나오고, 흥겨운 셰이커와 청명한 비브라폰(<그리스의 오후>), 트레몰로 기타(<모든 걸 결정할 땐>), 기타 노이즈(<반도의 끝>), 거리의 소음과 멜로디언(<풀>)이 트랙을 달리하며 뒷받침한다. 스웨터의 초기 음반을 단아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숙성시킨 것 같은 이 음반은 나른한 여행의 여운을 음미하려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일 듯하다.
라이너스의 담요의 싱글 <Labor in Vain>(비트볼 발매)은 ‘모던 록 소년소녀’의 쿨한 배경음악으로 각광받았던 데뷔 EP <Semester>(2003)와 동일선상에 있다. 말하자면 카디건스나 이런저런 트위팝 음악과 맥을 같이하는 순도 100%의 ‘담요표’ 사운드는 변함없다는 얘기다. 기발표곡인 <Signal>의 왈츠 버전과 영화 <연애의 목적> 예고편에 삽입된 신곡 <Walk>는 대표적인데, 스캣이나 허밍으로 따라 부르게 하는 야릇한 힘이 있다. 롤리타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연진의 보컬과 찰진 실러블이 돋보이는 타이틀곡도 마찬가지다. 냉소적 가사에 놀랄 이도 없지 않겠지만. 이 싱글은 삶의 스타카토 같은 음악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음반이다. 전작 <Semester>를 끼고 살았던 이들이라면 말이 필요없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