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닥터와 로즈를 연기하는 발음 이상한 배우들은 누구인가?
새로운 닥터를 연기하는 것은 대니 보일의 <쉘로우 그레이브>와 마이클 윈터보텀의 <쥬드>, 니콜 키드먼의 남편으로 등장했던 <디 아더스>, <28일후…>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영국 배우 크리스토퍼 에클스턴. 주로 어둡고 비정상적인 인물들을 연기해오던 그는 <닥터 후>의 제작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닥터 역을 쟁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즈 역을 맡은 배우는 1998년 15살의 나이로 <Because We Want>를 차트 1위에 올려놓았던 아이돌 가수 출신 빌리 파이퍼. 17살 연상의 DJ 출신 방송거물 크리스 에반스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닥터 후>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두 사람이 구사하는 맨체스터와 런던 토박이 발음 때문에 한 영국 시청자는 “영국 TV시리즈에서 T 발음이 사라질 판”이라고 딴죽을 걸기도 했다고(두 사람 공히 ‘T’ 발음을 최대한 묵음으로 말한다). 에클스턴과 파이퍼 모두 이전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던진 열연으로 영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2. 오래된 시리즈라는데 그렇다면 지금 닥터는 대체 몇 번째 닥터인가?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은 9대 닥터다. 1963년에 처음 시작한 이 시리즈는 89년까지 7명의 닥터를 갈아치우며 영국의 대표적인 SF시리즈로 장수해왔고, 96년에는 미국의 유니버설과 함께 만든 TV 영화판이 제작되면서 8번째 닥터가 등장했다. 여담이지만 1965년 <더 체이스>(The Chase)라는 에피소드에는 비틀스가 출연하기도 했다.
(왼쪽부터)1대 윌리엄 하트넬, 2대 패트릭 트로우톤, 3대 존 퍼위, 4대 톰 베이커
(왼쪽부터)5대 피터 데이비슨, 6대 콜린 베이커, 7대 실베스터 매코이, 8대 폴 맥건
3. 타디스(Tardis)는 무엇이며, 왜 생뚱맞은 전화박스 모양을 하고 있나?
<닥터 후>의 트레이드마크인 타디스는 닥터가 시공간을 여행하는 데 사용하는 타임머신의 일종.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은 내부 공간을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 ‘심장’을 지니고 있는 일종의 생명체다. 원래 타디스의 외양은 타임로드가 도착한 시대에 적합하게 스스로 변형된다. 닥터의 타디스는 60년대 영국 경찰이 사용하던 비상전화박스의 외양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닥터가 63년의 영국에 착륙한 이후 외양을 변형시키는 장치가 고장이 났기 때문. 전화박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닥터는 고장난 장치를 고치지 않았다고 극중에서 설명한다. <BBC>는 타디스의 모습을 전화박스로 설정하면서 런던 경찰로부터 아예 비상전화박스의 판권을 사버렸다. Tardis는 Time And Relative Dimension In Space의 약자.
4. 걸어다니는 게 신기한 깡통로봇 달렉이 그리도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스퍼드 사전이 아니라도 좋다. 대부분의 영한사전에서 Dalek을 찾으면 ‘[영국] 귀에 거슬리는 단조로운 소리로 말하는 로봇’이라는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달렉은 <닥터 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캐릭터로 영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다. 금속성의 목소리로 “말살하라!”(Exterminate!)라고 부르짖고 다니는 후추통 달렉들이 좀 우습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는 증오 이외의 감정은 모두 지워버린 채 타종족을 말살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데다가 놀라운 조직력과 무한대의 살상능력을 지닌 끔찍한 존재다. 후추통 모양의 깡통 속에는 조그맣고 흉측한 외계인 조종사가 들어 있다.
5. 미술과 특수효과가 아무래도 좀 구려 보이는데?
<닥터 후>의 특수효과는 <글래디에이터> <알렉산더> 등을 담당했고 부품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혼다 자동차 광고로 유명한 ‘밀’(Mill)’이 맡았다. 에피소드당 그린 스크린과 CG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 100여개의 특수효과 화면이 들어가 있지만, 이는 할리우드영화나 거대한 자본을 들인 미국의 몇몇 SF시리즈들과 비교해 질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저예산으로 거칠게 만들어진 수공예 특수효과야말로 <닥터 후>의 진짜 재미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편이 좋다. 이는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60년대부터 시작된 클래식 SF시리즈의 키치적인 기운을 잘 살려내고 있으며, 나이 든 팬들의 향수를 자아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게다가 <닥터 후>의 잘 짜여진 플롯과 독창적인 상상력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편. 예를 들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깡통로봇 달렉이 극의 마지막에 가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근사한 은하계 최고의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가.
6. 1시즌 마지막에서 닥터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이유는 뭔가?
그건 타임로드의 재생(Regeneration)능력 때문이다. 모두 12개의 목숨을 지닌 닥터는 생명을 잃는 순간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재생할 수 있다. 이는 1대 닥터를 연기했던 배우가 시리즈 중간에 도중하차하게 되자 제작진이 고안한 미봉책. 게다가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은 계약 당시에 미리 “한 시즌만 연기하겠다”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이 13번째 에피소드에서 사라지고 데이비드 테넌트(올 겨울 개봉예정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 역을 맡은 배우)가 새로운 닥터로 재생하는 순간, 영국 전역의 어린이들이 닥터를 내놓으라며 울부짖었다는 후문이 있다. 당시 <런던 타임스>의 헤드라인은 “그는 세계와 <BBC>를 구원하고, <닥터 후>를 그만두었다”였다고.
7. <닥터 후>는 계속되는가?
<BBC>에서는 내년 3월에 방영예정인 새로운 시즌을 촬영 중이며, 크리스마스에는 스페셜 에피소드를 방영할 계획이다. 게다가 내후년에도 세 번째 새로운 닥터의 모험은 계속된다. 로즈 역의 빌리 파이퍼와 캡틴 잭 역의 존 배로우먼은 이미 새로운 시리즈에 출연하기 위한 계약을 갱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닥터도 돌아온다. 비록 얼굴은 새 인물로 바뀌겠지만 닥터의 목숨이 원래 12개 아닌가. 그리고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아낼 옛 시리즈의 악당들도 속속들이 재등장할 예정. 한국 시청자들에게야 다 낯선 놈들일 테지만, ‘달렉’만한 괴물이 등장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