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璧(완벽)
마흔을 앞둔 열살 소녀
그럼 이 작은 배우는 어디서 이런 조숙함을 얻은 걸까요? 그녀는 사실 고양이의 정령이어서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쯤의 생을 살고 있는 걸까요? 이런! 제 이야기가 좀더 멋대로 날아가버리기 전에, 명백한 사실들을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코타 패닝의 결정적 연기 교사는 <아이 엠 샘>의 숀 펜이었던 것 같습니다. 숀 펜은 상대가 꼬마라고 자신의 방식을 선선히 바꿀 배우가 아니지요. 그는 시나리오대로 고분고분 연기하지 않았습니다. 70% 정도가 즉흥 대사였다는데, 6살의 다코타는 모든 장면에서 그가 예기치 않게 난사하는 화살을 놀랍게도 다 받아넘겼습니다. <아이 엠 샘>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래서 다코타는 그녀의 직관을 믿는 법을 일찍 배우게 됐다”고 말합니다.
여섯살 때부터 학교에 가지 않게 된 다코타는 열성적인 학생입니다. “매번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하죠. 영화 세트에서 매일 스티븐 스필버그가 뭔가 말할 때마다 ‘좋아, 저걸 외워둬야만 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코타는 사전의 열독자랍니다. 인명사전까지도 애독서랍니다. 시나리오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아니 아는 단어라도 사전을 찾아서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면 연기에 도움이 된다나요? 그저 “‘악의적인 미소를 짓는다’는 지문이 있으면 ‘악의적’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해요”라고 말하는 이 소녀만큼, 시나리오를 쓴 어른도 사전에 충실했기만 부디 바랄 뿐이죠.
다코타 패닝 안에 현명한 노파가 들어앉아 있다는 소문은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엄마를 제쳐두고 드림웍스 사장과 독대했다는 둥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편집진이 ‘유망주 리스트’(IT list) 기사에 자기를 넣어준 데에 대한 패닝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는 둥. 게다가 취미까지 뜨개질이랍니다. 그것이 덴젤 워싱턴, 톰 크루즈, 로버트 드 니로가 같은 바늘로 짠 목도리를 두르게 된 사연이라지요. 패닝의 또 다른 취미인 발레도 그 춤이 요구하는 균형과 자기통제, 정확성을 생각하면 그녀의 연기와 마치 일부러 꾸민 것처럼 아귀가 들어맞지 않나요? 이쯤 되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단정해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패닝이 외로운 결벽증 소녀로 분한 <업타운 걸>과 엄마의 자살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딸로 분한 <숨바꼭질>은 이런 다코타 패닝의 완벽함에서 병색을 읽어낸 영화일 것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다른 큰 문제가 잠들어 있다는 뜻이잖아요. ‘못되고 뒤틀린 여자애’라 하면 한때 크리스티나 리치나 위노나 라이더가 보여준 마성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세계와의 불화 안에서 도도하고 편안하게 흑요석처럼 빛나는 그녀들과 달리 다코타 패닝의 ‘나쁜 여자애’는 그냥 병든 아이입니다. 어두운 영화 속 다코타의 모습과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 <병든 아이>(Das Kranken Kind)는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그러고보면 이마가 넓고 파리한 다코타의 얼굴에는 지나치게 색감이 결여돼 있습니다. 영화의 의상 담당들이 그녀에게 유난히 알록달록한 옷과 귀여운 배낭을 즐겨 걸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非人間(비인간)
영원한 아이, 모두의 아이, 메시아
그처럼 은막 위에서 다코타 패닝의 얼굴은 자체가 작은 조명입니다. 숱 적고 가냘픈 금발이 둘러싼, 혈관이 비쳐나도록 창백한 피부는 진주알처럼 하얗게 빛나며 시선을 붙듭니다. <아이 엠 샘>에서 루시가 막 태어났을 때 마치 성령을 목도한 듯한 아버지 샘의 마비된 눈빛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숀 펜의 그 황홀한 눈빛이 다코타 패닝이 배우로서 짊어질 소명에 관한 이상한 방식의 예언이 아니었을까 가끔 돌이켜봅니다. 루시는 샘의 양팔에 벅찰 만큼 사랑과 지혜가 넘치는 기적의 아이지요. 그러나 곧 선량한 조력자들이 루시의 주변에 모여듭니다. 샘의 친구들, 변호사, 이웃의 피아노 교사, 친절한 직장상사들, 너그러운 양부모까지. 그렇게 루시는 모두의 아이가 됩니다. <테이큰> <업타운 걸> <맨 온 파이어> <숨바꼭질>에서도 다코타는 한 부모의 아이로 머무르지 못합니다. 이 소녀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키우기에는 너무 넘치는 존재이거나 더 거대한 숙명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모두의 아이인 동시에 다코타 패닝은 ‘영원의 아이’입니다. 평범한 현실의 아이를 잘 키울 수 없거나 부모 되기의 경험에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극중의 성인과 관객에게 패닝은 말 그대로 사랑스럽고도 자비로운 아이돌입니다. 이젠 제가 왜 이 소녀의 비명에 그토록 진저리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영원하고 완벽한 아이 패닝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영화들은 최면에 걸린 것처럼 이 아이를 반복해서 유괴하고 또 유괴합니다. 위험으로 가득 찬 거리와 벌판에 이 작은 소녀를 홀로 세워두고 멀리서 카메라로 돌아봅니다. 어른들은 가슴을 찢으며 외칩니다. “안 돼! 어서, 달려!” <맨 온 파이어>의 후반부 복수극은 이 아이가 죽었다는 실체없는 말 한마디만으로 미친 듯이 달려갑니다. 어쩌면, 어쩌면 영화 속의 다코타는 모두를 죽게 만들 수 있는 괴물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스크린의 다코타를 유심히 지켜봐왔다면 거의 언제나 이 소녀가 한팔에 인형을 안고 파랑새가 날아들 듯 두팔을 뻗어 어른 남자의 품에 ‘번쩍’ 안기는 그림을 기억하실 겁니다. 나아가 <아이 엠 샘> <맨 온 파이어> <우주전쟁>에서 아버지 혹은 유사 아버지와 다코타 캐릭터의 관계는 연인의 그것에 근접합니다. <아이 엠 샘>에서 법정에 의해 갈라져 몸부림치는 부녀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애틋하고, <맨 온 파이어>의 덴젤 워싱턴은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만큼 고뇌하지요. <우주전쟁>에서 톰 크루즈가 아들을 버리고 택하는 딸은, 항상 모성이 우선인 다른 스필버그 영화의 여성들보다 더욱 로맨틱한 대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코타 패닝은 <로리타>의 험버트 험버트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루이스 캐럴이 반했을 만한 소녀입니다. 아름다움에 넋을 잃되 성적인 긴장으로부터 안전한 제단에 모시고 영적인 사랑을 바치는 편이 어울리는 것이죠. 그러고보니, 그녀의 차기작 후보 가운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있군요. 두고볼 일입니다.
이를테면 옛날 서양 회화 속의 발가벗은 아기가 그저 발가벗은 아기가 아니듯 다코타 패닝은 여자아이의 형상에 담겨 우리에게 던져진 메시지처럼 보입니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피를 이어받아 태어난 아기인 <테이큰>의 앨리는 패닝이 지닌 초월적인 이미지의 결정체-메시아입니다. 10개 에피소드가 절반 넘게 흘러가야 탄생하는 앨리는 50년 전인 1편부터 세 집안의 고통스런 내력을 전지적 시점으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속삭이듯이, 타이르듯이. 마침내 태어난 앨리는 총상을 치유하고 미하엘 엔데의 모모처럼 병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시간을 멈춥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불렀을 때, 소녀는 죽지도 지상에 머물지도 않고 홀연 사라집니다. 구세주에게 어울리는 방식이지요. 앨리의 독백은 <미지와의 조우>를 만든 스필버그에 대한 뜨끔한 질문처럼 들립니다. “이 세계 밖에 누군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고독하지 않게 될까요? 그저 함께 고독할 뿐 아닐까요?”
제 아무리 메시아 소녀라도 아역 배우에게 예비된 수난을 비켜갈 수는 없겠지요. 거울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힘겨운 사춘기를, 대중의 눈앞에서 전시해야 하는 고통의 계절이 다코타 패닝에게도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염려할 수 있겠습니까? 다코타도 어느 영화에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발레를 배울 때) 자꾸 돌고 돌고 또 돌면, 현기증이 나곤 했죠. 그러나 이젠, 정지했을 때 어지러워요.” 당신이 감독이라면 어느 배우의 이미지가 원형으로서 알레고리로서 시각적 은유로서 완벽하다면,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감정을 가진 A.I. 로봇을 만들거나, CG로 그리는 헛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보다 저는 긴 몽상도 헛되이 루이스 캐럴처럼 멍하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묻게 됩니다. 이 소녀는 누가 꾸는 꿈입니까?
다코타는 햇빛이다
스티븐 스필버그(<테이큰> 제작, <우주전쟁> 감독) “다코타는 자기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또 하나의 재능이다. 촬영 중 그녀는 모든 신과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자기의 반응 정도를 측정해내고 정확히 연기한다.”
데이비드 코엡(<우주전쟁> 각본) “연기와 다코타의 관계는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리허설을 할 때 상대 (성인) 배우들이 내심 당황하며 ‘어어 잠깐, 이 11살짜리보다 내가 못할 순 없지’라고 허둥대는 모습을 종종 읽어낼 수 있다.”
덴젤 워싱턴(<맨 온 파이어> 공연) “연기 생활하면서 그저 상대방 배우를 멍하니 보고만 있던 기억이 딱 두번 있다. 한번은 진 해크먼이었고 한번은 다코타다.”
제시 넬슨(<아이 엠 샘> 감독) “한 테이크가 끝나면 다코타는 다가와서 말하곤 했다. 전, 조금 더 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뭔가 더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브리타니 머피(<업타운 걸> 공연) “그 애는 내가 평생 만난 사람 중 가장 훌륭하고 균형잡히고 양발을 땅에 굳게 디딘 사람이다. 다코타는 햇빛이다.”
마이크 마이어스(<더 캣> 공연) “다코타는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갤런드와 메릴 스트립의 합체다. 너무 귀여워서 뺨을 깨물어주고 싶다. 피나게는 말고 그냥 앞니로 살짝 아웅!”
제프 울너프(<테이큰> 에피소드8 감독) “다코타는 8살의 연기 기계다. 이런 애는 본 적이 없다. 아침이면 세트의 모두와 포옹을 나누며 인사하고 항상 행복하다. 마흔을 앞둔 8살 같다. 보통의 8살짜리에게 기대할 만한 행동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출처 : <뉴욕 데일리 뉴스> <헤럴드 선>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