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는 누가 꾸는 꿈입니까
예쁜 소녀를 미소짓게 하고 싶어 안달난 어른들은 그녀에게 종종 썰렁한 첫인사를 건넨다. “너, 노스 다코타니, 사우스 다코타니?” 대답은 물론 남쪽이다. 지금 열한살의 다코타 패닝은 배우로서 따스한 볕이 내리고 초록 산들바람이 부는 땅에 서 있다. 실질적 영화 데뷔작 <아이 엠 샘>(2000)으로 최연소 배우조합상(SAG Award) 후보에 올랐고 몇년 뒤 다른 시상식에서는 올랜도 블룸에게 안아 올려져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맨 온 파이어>의 토니 스콧 감독은 다코타 패닝에게 오디션을 요구하는 것을 결례라고 판단했고, <숨바꼭질>의 북미 포스터는 로버트 드 니로가 아닌 패닝의 이미지가 압도했다. 아역 보는 혜안을 지닌 스티븐 스필버그는 <테이큰>과 <우주전쟁>의 ‘요정’을 누구로 할지 망설이지 않았다. 드림웍스의 신작 <드리머>는 원래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으나 패닝의 합류가 가능해지자 부녀의 스토리로 바뀌었다.
미국 밖의 관객은 힐러리 더프나 린제이 로한은 몰라도 이 소녀는 알아본다. 하지만 그녀는 매컬리 컬킨과 다르다. 컬킨은 귀여운 얼굴을 내민다는 사실 하나로 표를 팔았지만, 패닝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관객은 없다. 그러나 패닝은 감독과 투자자를 안심시킨다. 그녀를 기다리는 스튜디오의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들은 미간에 주름을 잡게 됐다. 이 꼬마 명배우는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다음 주자인가? 드루 배리모어, 아니면 조디 포스터가 될 것인가? 그중 친절한 이들은 염려한다. 유년기를 잃어버린 소녀는 행복할까? 그중 회의적인 사람들은 의심도 한다. 행복이야 하겠지. 그보다 어린아이인 건 확실한 거야? 혹시 외계인은 아닐까? 미리 알리자면 이것은 할리우드 아역배우 계보의 마지막 줄을 새로 쓰려는 의도의 글이 아니다. 패닝의 앞길에 대한 근심도 아니다. 그 문제는 총명한 그녀와 부모, 에이전트에 맡겨두라. 이 글은 그저,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젊고, 가장 기묘한 배우의 이미지에 대한 소묘다.
말씀드렸던가요? 저는 그애의 비명을 듣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우주전쟁>에서 그 아이가 눈가를 붉히며 악을 쓰면 머리카락 뿌리가 바늘처럼 곤두섰습니다. 톰 크루즈의 10살배기 딸을 연기한 배우 다코타 패닝. 그애는 조그만 마녀입니다. 피난민 부녀를 거둬준 생면부지의 아저씨 팀 로빈스가 대뜸 꼬마에게 구애하는 꼴을 보라죠.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널 돌봐줄게.” <우주전쟁>은 달리 말하면, 입벌린 지옥 앞에서 어린 딸의 눈을 가리기 위한 사투입니다. 딸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아빠가 문 뒤에서 살인하는 동안, 아빠가 눈을 동여매준 검은 천 아래에서 소녀는 울면서 노래합니다. 문을 닫았는데 눈은 왜 또 가렸냐고요? 그것도 어쩌면 다코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비틀스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노래했듯이 이 아이는 온갖 형상이 보이는 만화경 같은 눈동자를 갖고 있으니까요.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가 꼭 저렇게 푸르지 않을까 싶은 눈동자. 양손과 혼을 더럽힌 아빠는 돌아와 냄새나는 짐승처럼 멀찌감치 웅크립니다. 딸은 그 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가 피묻은 아빠의 손을 잡지요. 너의 죄를 사하노라. 이 아이는 눈물 한 방울로 세상에서 제일 큰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이 소녀가 미국의 어느 지명(地名)을 이름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속임수의 냄새마저 납니다. 다코타 패닝은 1994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믿을 수 있나요? 그건 커트 코베인과 데렉 자만이 죽어간 해였지요. 그러고보니 톰 크루즈는 그해에 뱀파이어 레스타트였고, 팀 로빈스는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더랬습니다.
早熟(조숙)
아빠 혹은 어른의 보호자
여기서 감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다코타 패닝은 나쁜 ‘아역 배우’입니다. 당신은 아역 배우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나요? 숙련된 관객은 알고 있습니다. 어린 배우들이 성인 배우를 압도하는 괴력은 대개 기교와 자의식의 결핍에서 나옵니다. 그런 순간에는 말론 브랜도라고 해도 아이들을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신의 손을 방금 떠나 아직 훼손되지 않은 인간에겐 꽃과 나무에게나 허락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하게 조숙한 어린 배우의 연기는 무대 뒤의 극성맞은 부모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입 안에 떫은 맛을 남기지 않던가요? 다코타 패닝은 예컨대 할리우드의 문근영이 아닙니다. 그녀의 인터뷰는 티끌만큼도 흥미롭지 않아요. “전 제 일을 사랑해요. 힘들긴커녕 매우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고 이런 기회가 주어져 얼마나 행운이고 축복인지 몰라요” 등등. 하품하는 기자들의 얼굴이 보일 듯하지요? 그녀의 말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완결된 프로덕트” 같은 <할리우드 리포터>풍의 업계 용어는 종종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성장담도 뻔하디 뻔합니다. 조지아주의 세일즈맨 가정에서 태어났고 걸음마를 떼자마자 배우를 꿈꿨고 다섯살에 LA에서 일을 얻자, 온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습니다. 뒤따라 동생 엘도 다코타의 어린 역할 등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답니다. 수백번은 읽은 듯한 스토리입니다.
다코타 패닝은 귀엽거나 순진무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특별합니다. 그리고 능란합니다. 지금쯤 당신도 알아차리셨겠지요? 다코타는 누군가의 딸로 출연한 대부분의 출연작에서 실은 ‘엄마’였습니다. <아이 엠 샘>에서 루시는 자신이 8살이 되어 7살 지능에 머물러 있는 아버지를 추월하는 것을 느끼자 퇴행 현상을 보입니다. “아빠가 못 읽으면 나도 못 읽어.” 도리질치며 아빠가 못 읽는 단어가 든 책을 밀쳐버립니다. <맨 온 파이어>에서 경호원 크리시(덴젤 워싱턴)를 만나자마자 피타는 알아봅니다. “아저씨는 슬픈 곰이야.” 그리고 먼저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소녀의 우월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사나이는 방어하려 들지요. “나는 새 장난감이 아니야.” 심지어 다중 결말을 택한 스릴러 <숨바꼭질>에서조차 널리 공개된 결론은 비슷합니다. 마음이 병든 아이 에밀리가 알고 보면 안간힘을 다해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의 보호자 노릇을 했던 것이죠. <우주전쟁>의 도입부도 볼까요? 재혼하여 임신한 엄마가 무거운 가방을 들려 하자 “들지 말고 굴리세요”라고 말하는 짧은 대사는 별것 아니지만 전형적인 다코타의 말투입니다. 외계인의 공습이 시작됐을 때 “오빠는 괜찮겠죠? 아빠 괜찮아요?”라고 먼저 챙기는 것도 이 소녀입니다. 물론 다 시나리오가 만들어낸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코끼리에게 사슴인 척하라고 요구하는 바보는 없겠지요. 이 캐릭터들을 미덥게 하는 에테르는 다코타의 이미지이고, 한 사람의 중심에 깃들어 있는 이해력과 고요함은 급조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다코타에게 자기의 나이가 속한 관람등급을 넘어서는 영화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면 매우 무의미하고 불공정한 처사로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