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쯤 만났을 때 정두홍 무술감독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그는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의 액션을 만들어낸 뒤 3개월째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묻기도 전에 그는 무술연기자, 감독, 제작자 등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잘 안 풀리는 가정사까지. 우리는 우울하게 헤어졌고, 그뒤로도 한동안 그가 어떤 작품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이 연출하는 초대형 영화 <몽골>의 무술감독으로 그가 선발됐다는 이야기였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그리는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로서는 큰 의미가 있다. 무술감독으로서 할리우드, 그리고 세계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던 그에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화시장인 러시아의 대작에 참여한다는 일은 최종목표를 향한 첫발을 뗀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게 나타났다. 얼굴이 벌겋고 약간 울퉁불퉁한 채로.
-얼굴이 좀….
=스파링을 하고 오느라 좀 늦었다. 고등학생과 붙었는데 엄청 맞았다.
-스파링이라면….
=7월29일 지방에서 두 번째 경기를 갖는다. 준비를 해야 한다.
-데뷔전을 가진 게 딱 1년 전인데, 권투는 왜 그리 열심인가.
=마음 단련이다. 나를 조이는 거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자만이다. 나사가 풀리는 거. 복싱을 하면서 공포를 더 배운다. 사각의 공포. 첫 데뷔전할 때 너무 공포스러워서 죽는 줄 알았다. 심장이 터지는 게 이래서 터지는 거구나 싶었다. 나이 사십에 젊은 애들이랑 하는 거 굉장히 힘들다. 와이프 말이 내가 요즘 이렇게 (주먹을 가슴에 모은 채 가드를 한 듯) 잔단다. (웃음) 그만큼 권투가 나를 긴장시킨다는 얘기다. 스턴트할 때도 그랬다. 위험한 장면을 앞뒀을 때는 침대 끄트머리에서 떨어질 듯 말 듯하면서 자곤 했다.
-응원 가야겠다.
=그러지 마라. 내가 첫 번째 경기를 왜 망쳤냐면 김성수 감독, 류승완 감독, 조민환 나비픽처스 대표, 이런 사람들이 링 사이드에서 “정두홍 파이팅” 하는데 그게 귀에 꽂히는 순간 부담이 돼서…. (웃음)
-첫 경기는 이겼잖나.
=죽는 줄 알았다. 상대는 3전3승, 그것도 모두 KO승을 거둔 선수였다. 그런데 경기 직전 스파링하다가 코뼈가 부러졌다. 남들이 경기를 말렸는데 난 원래 뼈 부러졌다고 뭐 포기하라는 거 싫어하잖나. 그래서 나가서 싸움을 했다, 복싱이 아니라. (웃음) 기술적으로 들어가면 완전 작살난다. 이제 권투를 1년 남짓한 사람이 7, 8년 익힌 사람을 어떻게 이기나. 그런데 링 안에서 싸움을 하면 상대도 기를 못 쓴다. 내 페이스에 휘말리는 거다.
-왜 갑자기 권투도장에 다니게 됐나.
=그때는 그냥 도전이었다. 어느 날인가 보라매공원을 획일적으로 뛰다가 이게 아닌 것 같더라. 히말라야 원정을 해볼까, 하면서 뭔가 도전해야 할 것을 찾고 싶더라. 친하게 지내는 이훈에게 그 얘기를 하니까 “형, 그럼 복싱을 해”, 그러더라. 걔는 권투를 한 4년 했다. 그때는 딱 한번만 링에서 뛰고 더이상 안 하겠다, 그런 심정이었다.
-권투는 언제까지 할 건가.
=이번 경기를 이기고 랭킹전을 한번 한 뒤 한국 챔피언을 따는 게 목표다. 한국 챔피언 중 마흔 넘는 사람이 지금 두명이다.
-이훈씨 말이 나와서 그런데, 피트니스센터를 연다고 들었다.
=맞다. 신사동의 한 건물 3개 층을 빌려서 8월4일 문을 연다. 더블H라고.
-더블H면, (정두)홍과 (이)훈?
=에이…. 헬스&해피다. 원래는 H2였는데 이상하더라고. (웃음)
-어디서 투자를 받았나.
=투자 안 받았다. 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 잘못되면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어디서 뛰어내려서. (웃음)
-규모가 꽤 커 보이더라.
=2층에는 일반 헬스클럽 같은 시설을 놓고, 3층에는 샤워실, 라커룸, 파우더룸 같은 게 들어선다. 4층은 이종격투기, 복싱, 액션연기를 지도하는 공간이다.
-왜 갑자기 피트니스센터인가.
=뭔가 또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사실 이훈과 5년 전부터 얘기해왔던 일이다. 그동안 다른 무도의 세계를 몰랐는데, 복싱을 하면서 이 안을 들여다보니 이 바닥도 너무 힘들다. 운동 뼈빠지게 해도 정말 버는 게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격투기 인구가 줄잖나. 그래서 뭔가 개혁이 필요한데, 24시간 편의점을 생각했다. 편의점이 생기면서 상권이 커지고 점점 고급화되지 않았나. 무도계에서도 그런 구조를 가져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영화쪽에서 액션을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이쪽 분야도 업그레이드해놓고 싶은 욕심 같은 거.
-이종격투기, 권투, 액션연기는 뭔가.
=목표는 선수를 키우는 거다. 내가 4층을 책임지는데, 전문 트레이너를 영입했다. 내년 연말 정도에 더블H 주최 대회를 여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일본은 이런 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나. K1이니 프라이드FC니. 그런 식으로 우리도 좀 고급화해나가고 싶다.
-서울액션스쿨이 드디어 파주로 간다.
=보라매공원 체육관이 내년에 철거 예정이다. 강우석 감독님이 건설비 23억원 전액을 대주기로 해서 결국 파주행이 결정됐다. 애초에는 <실미도>를 끝내고 옮겨갈 예정이었지만, 강 감독님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무산될 뻔했다. 한동안 액션스쿨 전원이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폐물류 창고 같은 공간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결국 다시 강 감독님을 만나 결정을 지었다.
-강 감독을 만나니 해결되던가.
=4∼5개월 전인가, 강 감독님을 찾아가서 무턱대고 액션스쿨 짓게 6억원만 빌려주십쇼 했다. 그랬더니 그거면 짓냐고 묻더라. 어떻게 하든 짓겠다고 하니까 너 미쳤다고 하더니 바로 CJ에 전화하더라. 강 감독님은 내 지분을 팔든가 빌려주든가 어떻게 좀 해보라고 얘기했다. 그 다음에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돈이 생겼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강 감독님밖에 없다.
-강 감독에게 신세를 진 셈이다.
=영화 만들 때 도와드릴 거다. 나는 무보수로 일할 거다. 누군가는 너 왜 강우석이랑 붙어서 놀고 있냐고 하는데, 길거리에 나앉은 심정을 알면 그렇게 말 못할 것이다.
-23억원이면 적지 않은 돈인데, 어떤 시설인가.
=바닥면적은 250평, 건평은 350평 정도 된다. 정말 굉장히 좋은 시설이 될 거다. 일단 서울액션스쿨과 내가 회장으로 있는 무연회, 그러니까 한국무술연기자협회 회원 등 100여명이 함께 사용할 거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통해 스턴트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을 교육할 것이다. 나도 6∼7년 전 미국 플로리다의 스턴트 학교를 다녀봤지만, 새로 만들어질 시설과는 비교가 안 되게 낙후돼 있는데도 전세계에서 몰려오더라. 올해 12월쯤이면 새로운 서울액션스쿨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파주액션스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래도 서울액션스쿨이다. GS그룹처럼 상호를 바꾸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웃음) 그냥 서울액션스쿨로 간다.
-영화 얘기를 해보자.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의 <징기스칸> 3부작의 첫 번째인 <몽골>의 무술감독으로 발탁됐다고 들었다.
=그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감독이 <무사>를 아주 잘 봐서 김성수 감독에게 무술감독을 쓸 수 없겠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내게는 한달쯤 전에 연락이 왔다. 그 제작진이 중국 베이징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있는데, 한번 와줄 수 없겠냐고. 그래서 두 차례 찾아가서 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이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가 좋더라. 그렇게 계약을 끝냈다.
-촬영은 언제부터 들어가나.
=일단 올해 8월 중에 칭기즈칸의 어린 시절을 촬영한다. 액션은 비교적 적은 분량이라 20일 정도 체류하면 된다. 내년 8월에 본격 액션장면을 찍는데 그땐 두어달 거기 있어야 할 거다.
-어떤 액션을 만들게 되나.
=감독이 원하는 바는 리얼한 전투다. 아주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잔인한 전투장면 말이다. 그때 그 인간들 자체가 잔인하지 않았나.
-<무사>를 해봤으니까 그런 액션은 조금 쉽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거다. 류승완 감독도 뉴욕아시아영화제 갔다 와서 그러더라. 한국처럼 리얼하게 진짜 싸우는 액션은 없다고. 원래 류 감독이 한국적 액션을 싫어했는데 이제 프라이드를 갖는 것 같다. 세계를 통틀어 리얼한 싸움에서만큼은 난 정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첫 해외 프로젝트라 부담되는 면도 있겠다.
=언어나 이런 면은 솔직히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일하다보면 소통은 될 테니까. 어쨌든 해외에서 하는 첫 작품인데, 내가 못하면 대한민국 애들 다 별볼일 없더라는 얘기 듣게 될 테니 정말 잘해보고 싶다. 영문으로 내 이름이 찍히니까 그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다고 너무 잘해야지 하고 욕심을 내면 실수할 수도 있으니 편안하게 갈 생각이다.
-할리우드 진출이 꿈이지 않았나. 발판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이제 내 소원은 눈곱만큼은 풀어진 거다. 이게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커지느냐 어딘가에 부딪혀서 산산조각나느냐.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많이 쓰고 있다.
-돈은 많이 받나.
=비교적 많이 받는다. 한국에서 받는 것의 ‘따블’이다.
-준비는 많이 했나.
=권투 경기도 걸려 있고 피트니스센터 오픈도 있어 집중이 안 된다. 권투경기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매달려야지.
-10월에는 조동오 감독의 <중천>도 걸려 있다.
=와이어 액션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한국 와이어 액션을 더이상 욕먹지 않게 하겠다.
-아까 액션 콘티(서울액션스쿨 스턴트맨을 기용해 실제 영화장면과 똑같이 와이어 액션을 펼친 뒤 편집까지 마친 동영상으로, 인터뷰 직전 취재진에게 보여줬다)를 보니 손잡이에 밧줄이 매달린 칼을 이용한 다양한 액션이 새롭더라.
=조동오 감독의 컨셉이었다. 하지만 그걸 실현시키는 방법은 내 아이디어였다. 어렸을 때 줄다리기해봤나. 줄 끝을 잡고 크게 흔들면 줄이 파도처럼 움직이지 않던가.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물론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쳤다. 밧줄 액션은 컴퓨터그래픽으로 해결이 안 된다.
-또 어떤 작품을 할 계획인가.
=싸이더스 FNH에서 만드는 <애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인데, 복고적인 액션이 나온다. 총격장면도 있고. 그리고 류승완 감독과 하게 될 <짝패>도 머지않아 들어간다. 이 정도까지만…. 너무 많이 얘기하면 일이 안 들어온다. (웃음) 지금은 팡팡 놀고 있지 않나. 희한한 게 일이 있을 때는 몰리고, 없을 때는 전혀 없다. 일이 몰리다보면 쟤 바쁘다는 소문이 나고, 그러다보면 한동안 안 찾고 하는 일이 반복되나보다. (웃음)
-그러고보니 <달콤한 인생>과 <주먹이 운다> 이후로 한동안 쉬었다.
=두 작품 모두 올해 초에 촬영이 끝났다. 그 이후로 4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정말 타락이 뭔지 보고 싶었다. (웃음)
-결국 타락을 봤나.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속이 너무 아프고 온몸이 이상하더라. 이건 사람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결국 그때 장에 병을 얻었다. 사실, 타락을 하면 뭔가 철학적인 것을 얻을 줄 알았다. (웃음) 지하철역에서 잠자는 사람들에게도 뭔가 철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얻은 건 안 좋은 장과 이곳저곳의 잔병뿐이었다. (웃음) 그래서 타락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나.
=그런 것 같다. 눈앞의 일, 당장의 사안,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넓게 보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도 자책하고, 자학하고, 실의에 빠져서 난 안 돼, 하곤 했는데 지금은 봐라. (우렁차게) 내 목소리에 힘이 있지 않나.
-무술감독으로서 더이상 오를 곳이 없을 법도 하다.
=아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작품이 많다. 예컨대 <형사> 같은 것 말이다. 시켜달라고 감독님을 따라다니고 싶은 영화다. 박찬욱 감독님 영화도 그렇다. 다른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감독님들이니까. 무술감독을 더이상 할 게 없다,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감독님과 작품을 하면서 그 사람에 맞는,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에 맞는 액션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기술적으로는 더 정복할 게 없다는 말인가.
=이제 기술은 보편화됐다고 생각한다. <중천>을 준비하면서 와이어 액션을 배우기 위해 홍콩에 갔었다. 그런데 거의 배운 게 없다. 우리가 하는 것과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쪽의 와이어를 당기는 사람들이 잘하긴 하더라. 우리가 5번 정도 해서 오케이날 장면을 두세번에 성공시키더라.
-그동안 항상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 도전해왔다. 한국적 와이어 액션도 그렇게 성공했다. 지금은 그런 도전 과제가 없나.
=이젠 감독 공부를 좀더 해서 연출을 하고 싶다. 그게 내 인생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난 어릴 때 시골에서 정말 못 먹고 없이 살다가 운동을 하게 됐고, 운동이 최고인 줄 알고 살다가는 영화판에서 액션배우가 되려나보다 했지만, 결국 ‘방망이’(스턴트맨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나 하게 됐다. 그렇게 처절하게 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마구 들이대고 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러면서 사업까지 하고 있는데,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뼈를 묻어야 하는 공간이 있다면 그건 영화다. 여전히 날 보고 ‘네가 대한민국 최고의 무술감독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그게 좋은 뜻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알지만,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이상 발전하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는 얘기잖나.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그 물은 썩는다. 그 무게감 때문에 새싹도 못 뚫고 올라온다. 내가 후진 영화를 찍건, 삼류 액션영화를 찍건, 하다못해 에로 비디오를 찍건 내가 영화라는 분야에서 꽃을 피운다면 그건 연출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에 가서 연출을 못하게 된다 해도 나는 해볼 거다. 희망이 없잖나. 그건 또한 내 뒤에 있는 후배들의 희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