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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지루한 스토리는 효과음으로 대처하라

투덜군, 개성없는 공포영화 범람에 맞춰 공포영화 제작 표준안을 내놓다

올 여름 개봉한 공포영화 <분홍신>

목적과 개요

본안은 (1) 연중 생산량의 80% 이상이 하절기에 집중되는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공포영화들의 과당경쟁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2) 지난 98년 <링>의 등장 이래, 그 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만 반복 양산됨으로써 거의 제자리에 묶여 있는 공포영화 관객을,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 공포영화계 전체가 공평하게 분배해, 공존공생의 도를 실현하고 (3) 최근 개봉된 공포영화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듯, 갈수록 그게 그거화(化)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공포영화들을 아예 표준화·규격화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 내년 하절기부터 월 10편 이상의 대량생산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기초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마련되었다.

내용

앞으로 제작되는 모든 공포영화들은, 다음과 같은 제작 지침들을 따르도록 한다.

1. 스토리가 지루해진다 싶을 경우, 당황하지 말고, 전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아예 없애버린 뒤, 갑자기 ‘쾅!’ 하는 소리를 낸다. 이 경우, 가급적 법정 소음 기준을 상회하는 60dB 이상의 음량을 유지한다. 단, 이러한 소리가 나야만 하는 전후사정이나 개연성 등은 과감히 무시하라.

2. 위 1번 테크닉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 위 테크닉과 함께, 갑자기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설정을 병용하라. 이 경우 역시, 1번과 마찬가지로 관객의 순간적인 놀람을 유발시키는 데만 그 목적이 있으므로 누구든 튀어나오게 해도 좋다. 물론 동물도 무방하다.

3. 세트의 문짝에 사용되는 모든 경첩은 골고루 녹이 슬 때까지 충분히 수분에 노출시킨다. 문짝에 미세한 힘을 가하여 천천히 열리게 한 다음, 은은하고 지속적인 삐걱소리가 나는지 확인한다. 모든 종류의 윤활유는 공포영화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임을 상기하라.

4. 스토리가 워낙에 받쳐주지 않아 귀신을 등장시키는 데 애로사항이 있는 경우엔, 포기하지 말고 일단 귀신을 등장시킨다. 꿈이라는 훌륭한 제도가 돌파구를 열어줄 것이다. 일단 저지르고 난 뒤 ‘사실은 꿈이야’라고 해버리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그동안 앞뒤 개연성 맞추느라 못했던 무서운 설정들을 전량 투입하라.

효과

이러한 표준화는, 거의 서로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유사한 공포영화를 대량생산해내고 있는 현 공포영화계의 추세를 굳건히 정착시킬 것이며, 이를 통해 모든 공포영화들의 관객 수는 자연스럽게 평준화될 것이다. 더불어, 이는 최근 스타들의 출연료 문제로 불거져나온 우리 영화계의 분배구조 문제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영화계 내에서 공포영화계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이상 공포영화 제작 표준화 연구원장 한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