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야, 니들도 늙어보라지! <마더>

나이차별주의자 투덜양, <마더>를 보며 노년의 욕망을 편들다

<마더>

<마더>를 보기 직전 느꼈던 부끄러운 사실(전반전). 전에도 여러 번 설파했는 바 여전히 나이차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도자료를 뒤지면서 옆에 앉은 후배에게 쉼없이 종알종알댔다. 아니 이 엄마 미친 거 아냐? 어떻게 딸 남자를 뺏어? 것도 남자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인 애 딸린 독신녀에 돈도 없고 얼굴도 별볼일 없는 딸의 것을. 상도덕이 이렇게 떨어져도 되는 거야? 안 그래도 경쟁률 5만 대 1의 연애 정글에서 이제 엄마하고까지 맞장떠야 하는 거냐고.

<마더>를 보면서 느꼈던 슬픈 사실(후반전). 점점 엄마에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 로맨스를 바람직하다고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만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결국, 나도 늙은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늙은 것이다. 더 슬픈 건 내가 영화에서 절절한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게 됐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순전히 내 옆에 앉은 젊은 남자들에게 훈화받아 결국 그 감동이 영화 안으로 물결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정황을 설명하자면 내 옆에 새끈한(얼굴은 모르겠다. 다만 연령대가 그래 보였다) 청춘남 세명이 조르륵 앉아 있었다. 하는 짓이며 말투며 20대를 넘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그렇게 대경실색하는 건 처음 봤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볼 때도, <엑소시스트>를 볼 때도 나는 남자들의 톤 높은 비명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엄마가 남자를 침대로 유혹하는 순간부터 이들의 ‘공포여행’은 시작됐다. ‘아!’(공포영화를 볼 때나 낼 수 있는, 끝으로 갈수록 극도록 높아지는 신음소리다) 하는 단말마적인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더니 엄마와 젊은 남자(별로 젊지도 않았는데 말이다!)가 뭔가 야시시한 눈빛과 몸짓을 교환할 때마다 연신 “미쳤어, 미쳤어”를 외치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들의 반응이 너무나도 천진하게 느껴져 웃음이 나왔지만 갈수록 점점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한 건 바로 부아가 치밀기 시작한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비밀을 안 딸이 엄마 앞에서 애인과 노골적인 키스를 하며 엄마를 괴롭힐 때 나도 괴로웠고 결국 엄마가 혼자 텅 빈 집에 돌아올 때는 눈물까지 찔끔 났다.

영화가 끝난 뒤 속으로 그 청춘남들을 향해 외쳤다. <봉숭아 학당>의 이장님 버전으로. ‘야 이노무 자식들아~ 니들도 늙어봐라 이 자식들아~.’ 마음속의 포효를 한 다음 슬퍼졌다. 어엇, 왜 나는 이들의 비명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거지? 나 원래 나이차별주의자였잖아. 그리고 깨달았다. 이처럼 대치국면이 그려질 때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내 편은 젊고 새끈한 청춘이 아니라 늙고 추레한 노인이라는 걸. 고로 나는 이제 청춘이 아니라 노년에 더 가깝다는 걸. 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이차별주의자의 시절로.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