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쿠데타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처럼, 역시 쿠데타로 새로운 황제가 된 그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를 두고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아무리 비장한 사건이라도 두 번째 반복될 때는 처음의 비장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일 게다. 그래서인지 박정희와 달리 전두환은 고등학생들의 입에서도 비장한 표정의 군인이 아니라 코미디언 이주일과 혼동되는 희극적 농담의 주역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황우석 박사로 인해 최근 다시 개화하고 있는 배아를 둘러싼 휴머니즘 논란은 이처럼 희극으로 반복되는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는 이미 인간인데 그것을 장기를 만들거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데 이용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과 배아를 인간이라고 보는 견해를 일종의 종교적 근본주의쯤으로 보면서,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휴머니즘 아니냐는 반론이 그것일 게다. 이 논란은 결국 배아줄기세포가 인간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문제로 귀착된다. 인간이라면 그걸 이용해서 다른 인간을 치료하면 안 되지! 인간이 아니라면, 그야 인간을 위해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지!
이와 동일한 논쟁이 바로 휴머니즘의 시대로 알려진 15세기, 그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과 이른바 ‘신대륙’을 넘나들며 행해졌다. ‘신대륙’에서 발견된 원주민들이 과연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그 주제였다. 그 논쟁의 이유 또한 똑같았다. 그들이 인간이라면, 그들을 은광으로 끌고가 노예로 부리거나 맘대로 죽여선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라면? 물론 “인간들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노예로 부리거나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 오랜 시간을 두고 논쟁을 벌인 결과 ‘다행스럽게도’ 인디언 역시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들을 노예로 부리거나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영화 <미션>이 다루는 과라니족의 경우 18세기 후반인데도 ‘인간’이니 아니니 하면서 노예로 부리고 선교사까지 관여해서 만들어진 그들의 공동체를 교회의 이름으로 파괴하고 탈취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논쟁의 와중에 어떤 휴머니스트로 흑인이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래서 흑인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노예로, 인간들의 복리를 위해 마음껏 사용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에 <한겨레> ‘덕분에’ 황우석 박사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인터뷰하면서 받은 인상은, 아마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의 여론에 숱한 질타를 받아서일 테지만, 생명의 개념에 대해 생명공학자의 입장과 상충될 정도로 전통적이고 방어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던 것 같다. <한겨레>조차 황우석 박사의 업적을 상찬했고, 종교단체조차 가톨릭의 예상된 비판을 제외하곤 대부분 칭찬하거나 적어도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예상되는 노벨상의 광채에 모두 정신을 잃은 것일까? 어쨌건 일년 만에 만들어진 이런 변화는 이 휴머니즘 논쟁의 승자가 누구일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 논란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말이 심지어 <미션>에서 재현된 비장함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는 걸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이런 논란의 구도 속에서 500년 전과 마찬가지로 반복되어 잊혀지는 것이 있다. 인간이라면 노예로 사용해도, 치료에 사용해도 안 되지만, 인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용해도 좋다는 그 휴머니즘적(인간중심적!) 발상법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때 노예가 된 흑인들의 비극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가령 실험의 편의를 위해 태어날 때부터 암세포를 갖고 태어나는 쥐(‘온코마우스’라고 부른다)를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내는 만행이 비난받기는커녕 특허를 얻어 돈을 벌고 업적으로 상찬받는(특허권은 인간과학의 ‘명문’ 하버드대학이 갖고 있다) 사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배아라면 결코 실험이나 치료에 사용되어선 안 된다면서 신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단체도, 멀쩡한 생명체들을 하루에도 몇 만 마리씩 실험실에서 ‘사용’하고 실험하고 어떻게 죽나 보면서 처참하게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선 인류를 위한 것으로 포용하고 이해하는 사태가 말이다. 정말 지구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식물(사과나무는 빼고)이나 동물들, 혹은 대지와 공기조차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기 때문일까? 근데 정말 신이라면, 그런 식으로 세상을 만들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