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일 밤 11시15분
언제나 정답이 존재하고, 반짝거리는 최신 기구들이 잔뜩 등장하는 빈틈없는 드라마도 지루할 때가 있다. <환상특급> <트윈픽스> <X파일>류의 어둡고 해답이 모호한, 때로 등골 서늘한 이야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는 것. 최근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는 <닥터 후>는 1963년부터 지금까지 27시즌의 600편이 넘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영국산 TV시리즈물이다. 900살 먹은 외계인 ‘닥터’가 그 주인공으로, 육체를 바꿔가며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시리즈를 계속하면서 닥터의 모습이 바뀌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 닥터는 전화부스 모양의 타임머신을 타고 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빈티지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다시 말해 요즘 시간여행 이야기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전화부스의 조악함도, 대의를 위해 소소한 희생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닥터의 오싹한 대범함도 <닥터 후>의 매력. 핵전쟁을 일으킨 뒤 죽은 별이 된 지구를 조각내 우주선 연료로 팔아먹고자 외계인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상상력이 즐겁다. 닥터의 미소를 보면서 우아한 잔혹극의 스릴을 맛보시라. KBS2에서 매주 일요일 밤 11시15분에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