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중 <그녀의 손길>

하나의 인용. “어쩌다 내 손가락이 (그 무언가를 하려) 할 때”라는 단상에서 롤랑 바르트는 접촉을 정의한다. 이 문형은 욕망하는 대상의 육체(더 정확하게는 그 살갗과)의 가벼운 접촉으로 야기되는 그 모든 내적 담론을 가리킨다. (…중략) 그래서 상대와 건드려질 때마다 도처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항상 의미를 만들어내며, 이 의미가 그를 전율케 한다. 그는 의미의 도가니 안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의 접촉은 이렇듯 모든 대답의 문제를 야기하며, 이때 대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살갗이다(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나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스티븐 소더버그, 그리고 왕가위가 각자 한편씩 만든 옴니버스영화 <에로스>에서 그 첫 번째 에피소드인 왕가위의 <그녀의 손길>이 끝나는 순간 즉각적으로 이 문장이 떠올랐다(미안하지만 나는 이 글에 안토니오니와 소더버그의 영화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왕가위의 8과 1/3번째 영화 혹은 그의 9번째 영화에 관한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평으로 나는 이 글을 온통 옮겨쓰고 싶은 가냘픈 충동에 시달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 둘 사이가 그렇게 오려붙이듯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게 상상력을 허락한다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참조해서 쓴 롤랑 바르트의 이 문장과 왕가위의 단편을 중재하는 것은 나에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의 마지막 장면이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좀 복잡한 굴곡과 우연이 있다.

왕가위와 안토니오니를 겹쳐놓는 ‘손’

왕가위의 에피소드를 한국에서 번역한 제목은 ‘그녀의 손길’인데, 이 번역이 시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는 맞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제목은 그냥 간단하게 <The hand>, ‘손’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역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손을 쫓아갈 뿐이다. 왕가위가 신체 기관의 감각을 동원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언뜻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감정적인 숏이 없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말하자면 로베르 브레송이 <소매치기>에서 한 것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혹은 루이스 브뉘엘이 <어느 하녀의 일기>에서 발을 그렇게 열심히 쫓아간 것처럼, 하워드 혹스가 <리오 브라보>에서 그렇게 라이플총을 따라 오고간 것처럼, 왕가위는 그 손을 하염없이 쫓아간다. 접촉의 기억, 그 기억의 운유. 그 치환된 은유가 불러일으키는 정념. 그런데 그 손은 그냥 손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재단사 장과 고급 창녀 후아의 그 손이 아니다. 후아가 장씨에게 거의 마지막 대목에서 손을 내밀 때 그 손은 내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그 손은 왕가위에게 안토니오니의 <모험>의 그 마지막 손이다(이 영화의 제목도 <정사>로 우리에게 알려지면서 오해되었다). 아마도 영화 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그 손. 그 누구도 그 장면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한 그 손. 그러니까 다른 여자와 껴안고 있는 산드로를 보고 난 다음 절망적인 마음으로 거리를 떠돌다가 언덕에 올라가 서 있는 클라우디아와 그녀를 뒤쫓아온 산드로의 그 장면. 그런 다음 산드로가 벤치에 앉아 알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릴 때 그 의미를 알고 있다는 듯이, 거기 어떤 깨달음이 있는 것처럼 그 머리 위에 얹히는 클라우디아의 손이 거기 있을 때 그것에 공감하는 것은 그 맞은편의 에트나 화산이다.

모험의 끝에 이른 그 손. 이 완만하게 이루어진 모험 끝에 추락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클라우디아가 내미는 손은 유일한 구원의 손이다. 그 손을 붙잡으면 모험에서 구원받을 수 있지만, 그 손을 붙잡지 못하면 화산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때 그 화산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의 그 화산이다. 그리고 거기 (할리우드 스타 잉그리드 버그만이 연기하는) 카린의 깨달음이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의 절반이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 화면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눈 그 벽에서 그 마음의 절반의 불투명성을 보게 된다. 하나의 집처럼 이루어진 이 영화들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공통의 집합은 제스처가 만들어내는 몸과 마음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 감각이다. 동시적으로 주어진 세개의 그때. 첫 번째 그때 영화는 그 감각기관 자체가 되어야만 한다. 두 번째 그때 베르테르와 클라우디아와 재단사 장씨는 같은 집에서 서로 다른 창문으로 세상을 향해서 흔드는 손길이며, 잔인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그토록 무심한 세상을 향해서 열려 있는 감각이다. 세 번째 그때 세상이 이들 감각에 무관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베르테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세상은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클라우디아가 산드로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을 때 에트나 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재단사 장씨가 절망적으로 고급 창녀 후아를 안으려 할 때 바깥에서 홍콩을 향해 다가오는 태풍의 바람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바르트는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정의하면서 그의 영화가 지니는 몇 가지 특징을 조심성과 지혜와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역설적인) 불안정성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말은 왕가위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장씨의 성기와 항문을 애무하는 손

왕가위는 이 짧은 영화 안에서 이상할 정도로 시선에 대해 영화가 지닌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아니, 차리리 눈이 먼 것처럼 영화는 진행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영화는 재단사 장씨가 고급 창녀 후아와 만나는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한 다음 기나긴 플래시백과 짧은 결말, 그리고 그에 덧붙여진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기억이라는 두서없는 시간 안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손이다. 혹은 손이 작동하는 메커카니즘에 따라서 운동하기 시작한다. 재단사 장씨가 고급 창녀 후아를 처음 만나는 것은 그녀의 모습이 아니라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침대의 삐거덕거리는 요란스러운 율동과 섹스가 빚어내는 신음소리이다. 그 두개의 소리의 결합, 그러니까 침대와 신체가 만들어내는 두개의 소리의 하나의 운동이 어린 재단사 장씨의 그것을 발기하게 만든다(여기서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왕가위는 구태여 재단사 장씨의 성기를 찍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재단사 장씨는 섹스를 보고서 발기하는 대신 듣고서 발기한다. 그런 다음 재단사 장씨는 고급 창녀 후아를 만난다. 후아는 발기된 재단사 장씨의 (그 불룩해진) 바지를 보고서 그를 불러 바지를 내리라고 명령한다. 값비싼 옷만을 주문하는 손님 후아의 요구에 장씨는 바지를 내리고, 후아는 장씨를 희롱하면서 자기 옷을 만들 때 이 느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때 후아는 장씨의 성기를 만진 다음 사타구니를 타고 올라가 그의 항문을 손으로 애무한다. 그러는 동안 장씨는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때 모든 감각은 사실상 손에 집중되어 있다. 그 손이 신체의 성기 주변을 맴돌 때 그것을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그것을 본다기보다 그것이 만져지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 손이 자유로이 운동하는 동안 성기와 항문은 그 자리에 멈춰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재단사 장씨의 신체 중 성기와 항문을 어루만지는 그 손의 운동은 이 장면의 영화적 신체기관의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그 손의 운동을 완성시키는 것은 성기와 항문이다. 후아의 손은 섹스의 시작이며, 재단사 장씨의 성기와 항문은 섹스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섹스의 운동은 계속해서 자기의 표현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가능세계를 열어 보인다. 재단사 장씨가 그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손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손이 후아의 성기와 항문을 만지는 것으로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대체물인 후아의 성기와 항문을 감싸안는 옷으로 반복되는 것은 사랑의 (치환된) 은유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단지 페티시즘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관계는 그 행위가 섹스를 하는 것이라고 믿을 것으로 가정된 주체의 자리에 불려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계속 연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반복과 연기, 차이와 지연. 그 둘의 시간적 욕망. 그 안에서 여전히 손은 그 둘 사이를 연결하고, 종합하고, 그 다음에 분리한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눈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욕망은 측량되지 않으며, 옷은 눈이 아니라 손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서 이 말이 손으로, 라고 쓰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손에 관한 잔인하고도 슬픈 의미의 역설

<에로스>중 <그녀의 손길>

그러므로 이 영화가 시선을 버리고 촉각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재단사 장씨는 후아가 고급 창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그 사실로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후아가 고급 창녀라는 사실이 재단사 장씨에게는 일종의 블랙홀이다. 그는 후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가 고급 창녀라는 사실에 대해서 마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다음 후아는 완전히 거리의 창녀로 전락하고, 그러고나서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 그제야 이 영화의 플래시백은 끝나고 재단사 장씨와 후아가 대면하는 그 장소에로 영화는 옮겨온다. 같은 말이지만 후아의 몸이 화려하게 빛날 때 장씨는 기억의 힘을 빌려 후아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장씨가 후아를 실제로 대면할 수 있는 것은 후아가 그 아름다움을 다 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때 후아는 재단사 장씨에게 슬프게 말한다. 이제 몸은 병들어 망가졌고, 성한 것은 손밖에 없으니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다시 한번 손으로 장씨의 성기를 만져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답고도 끔찍한 장면은 여기에 있다. 손에 관한 잔인하고도 슬픈 의미의 역설. 처음에 그 손은 몸의 일부였으나, 지금은 몸이 손의 일부가 된다. 후아의 성기는 병들었으며, 후아의 입술도 병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후아는 장씨의 간절한 입맞춤조차 허락하지 못한다. 이미 병들고 썩어들어가고 있는 몸. 그러므로 손은 후아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전부이다. 그 손이 몸의 일부였을 때 그 손은 은유였지만, 그 손이 전부가 되었을 때 그 손은 환유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씨는 그 손을 다시 은유로 되돌리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래서 장씨는 후아의 병들어가는 입술에 키스를 하려들고, 썩어가는 성기에 자기의 성기를 넣으려고 한다. 환유가 되어버린 손을 위해서 장씨는 그 손이 지닌 은유의 회복을 위해 기꺼이 그 몸을 안으려 한다. 하지만 후아의 그 손이 장씨를 밀어내고 그를 자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장씨에게는 후아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녀가 여전히 소유하고 있음을 믿고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 자신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씨의 그 행위는 믿음의 행위이다. 그러나 후아는 장씨를 여전히 손의 대상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물론 그것은 가능한 여러 경우로부터 이제는 절대적인 한 가지 경우에로의 후퇴이지만, 그 후퇴가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그 손이 은유였을 때 그것은 희롱이었지만, 그 손이 환유가 되었을 때 그 손은 사랑이 된다. 그러므로 장씨와 후아 사이에서 그 손은 낭만적 사랑이 지닌 기호의 아이러니이다. 왕가위는 그 기호를 탐색한다. 그러므로 왕가위가 이 영화에서 그 기호가 만들어내는 감각에 영화의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촉각이다. 손이 만들어내는 가능한 세계, 그 세계를 둘러싼 의미의 드라마,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 의미가 만들어내는 표현의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때 질문하는 것은 (낭만적) 사랑의 진실에 대한 기호의 선택이다.

왕가위가 안토니오니에게 배운 것

그때 그 순간, 그 손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안토니오니의 <모험>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손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 남자 산드로의 머리 위에 올려진 클라우디아의 그 손은 은유인가, 아니면 환유인가? 혹은 가능세계로서의 은유로 올려놓은 그 손에 대해서 그 손을 붙잡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던져진 환유로 생각한 때문일까? 혹은 그 역은 성립하는가? 그런데 누가 누구의? 안토니오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그 대답의 불가능성은 왕가위의 영화에서 느리게, 매우 낭만적으로, 하지만 참으로 잔인하게, 오직 그 손만을 따라서, 배움의 과정을 따라간다. 배움이라고? 그렇다. 이 영화는 (내 생각에) 왕가위의 안토니오니에 대한 배움의 영화이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그 자신만을 위한 배움의 영화이다. 마치 맛있는 과일 속으로 벌레가 끈질기게 파고들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 벌레가 세상에서 그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아주 예민하고도 집요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배우는 영화이다. 말하자면 배움의 오마주. 저 위대한 모더니즘의 낭만적 사랑의 대가 안토니오니와 함께한 자리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이토록 배움의 예의를 다해 대하는 모습을 나는 진심으로 본받고 싶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나에게 배움의 영화이다. 말하자면 대가에 대한 예법에 관한 간절한 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