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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 엉덩이를 들썩, Gorillaz

해외 스포츠에 빗대면, 영국은 으뜸은 아니어도 버금에 속하는 리그다. 더러 빅리그의 ‘지존’ 아메리칸 리그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 다름 아니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나 ‘꽃미남 오빠들’이 활약한 시절 말이다. ‘해가 지지 않는 리그’란 말은 이미 고사성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쟁쟁한 리그임엔 분명하다. 1990년대의 리그 챔피언 ‘맨체스터 오아시스’는 ‘한물갔다’는 세간의 평에 절치부심한 듯 전성기 때의 팀 컬러를 복원해 최근 컴백했고, 신흥 명문 ‘런던 콜드플레이’는 올 시즌도 우승을 향해 독주하고 있다. 그렇담 과거 맨체스터 오아시스와 쌍벽을 이루던 ‘에식스 블러(Blur)’는?

블러는 몇해 전 플레이메이커 그레이엄 콕슨의 이적에 이어, 로커룸에서 선수끼리 싸움(‘訟事’)을 벌이고 있다는 외신이 들리는 등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클럽 하우스 리더’ 데이먼 앨번은 ‘버추얼(virtual) 고릴라즈’란 새 팀에서 감독 겸 선수로 활약 중이다. 2001년 리그에 데뷔한 버추얼 고릴라즈는 팀 명칭대로 제이미 휴렛(<Tank Girl>의 원작자)의 카툰 캐릭터를 앞세운 가상 팀. 올 시즌에는 플레잉 코치(producer)를 댄 디 오토메이터에서 데인저 마우스로 교체했는데, 다크호스로 지목될 만큼 ‘초반 러시’ 중이다. 비유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고릴라즈의 정규 2집 <Demon Days>(EMI 발매)는 표제처럼 어둡고 으스스하다. 좀비가 튀어나올 듯한 첫 트랙 <Intro>는 상징적. 도저한 저음으로 인도하는 관악기와 퍼커션 연주가 불길한 이 곡은 호러영화 <새벽의 저주>에서 샘플링을 따온 것. 영화배우 데니스 호퍼가 게스트로 참여해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Fire Coming Out of the Monkey’s Head>는 그런 맥락에서 독특한 트랙. 하지만 음반이 정말 좀비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지는 않다. 그 안엔 생동감 넘치는 그루브와 사이키델리아가 담겨 있다. 드 라 솔이 피처링한 <Feel Good Inc.>는 대표적인데 댄스 플로어 지향적인 바운스와 인디록 스타일이 훵키하게 갈무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힙합, 브릿팝, 일렉트로니카(특히 덥)가 명민하게 결합된 짜임새 있는 음반이다. 만장일치는 아니어도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신선한 재미를 듬뿍 담고 있다. 제이미 휴렛의 애니메이션을 곁들이며 몸을 들썩이면, 망상 속에서 버추얼 고릴라즈의 게임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