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아이를 보는 토요일. 내 몸을 짓밟으며 공룡 놀이를 하던 김단과 김건이 잠시 다른 놀잇감을 찾아 물러간 틈을 타 텔레비전을 켠다. 연속극, 스포츠, 쇼, 미국방송, 일본방송, 중국방송…. 버릇대로 이리저리 리모컨 서핑을 하다 눈에 밟히는 얻어맞는 고딩의 클로즈업. 숏이 바뀌고 H.O.T가 카메라 앞에 바짝 다가와 팔을 휘젖는다. H.O.T가 왕따를 노래하고 있다. 언젠가 씨랜드 아이들을 노래하는 걸 본(‘들은’이 아니다. 이수만은 H.O.T의 장르가 립싱크라 확인한 바 있다) 기억이 살아나면서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영혼까지 팔고사는 자본주의라지만 해도 너무 하는군.
한때 통기타를 치며 여린 목소리로 <모든 것 끝난 뒤> 같은 감상적인 노래를 부르던 ‘트로트 포크’ 가수 이수만은 미국 유학에선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단단히 배워왔던 모양이다. 대중음악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여느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분명히 한 최초의 한국인일 그는 (현진영 정도를 제외하곤) 지나치게 앞선 시도가 불발에 그치곤 하다 결국 H.O.T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나는 H.O.T 공연실황 클립 속에서 천사 날개를 달고 무대에 선 H.O.T에 환호하는 10대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장면을 보며 내 머리통 속에선 H.O.T에 천사 날개를 달아준 이수만의 욕망과 고작 그런 우스운 천사에게서나 안식을 얻는 한국 10대들의 가련한 처지가 대립했다.
알다시피 H.O.T라는 상품이 순항하는 근거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남긴 공백이다. (박노해가 신영복 모델을 선택하듯) 이수만은 서태지 모델을 선택했고 그런 선택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중음악 시장을 면밀히 분석해온 이수만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서태지 모델을 선택했다는 것은 단지 서태지의 은퇴로 생긴 남성 댄스그룹의 빈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외에 몇 가지 세부를 갖는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이른바 사회비판이다. 추측건대 서태지 모델을 선택한 이수만이 서태지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 공인된 사회비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만은 사회비판이라는 요소를 기꺼이 H.O.T라는 공산품의 외장재로 채택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음악이 상품이 아닐 도리는 없겠지만 그 상품들이 가진 사회비판의 권한은 저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천지인이나 메이데이처럼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품 시스템을 사용할 뿐인 그룹이나 스스로 음악을 창작하고 집행하는 능력을 갖춘 서태지와, 순수한 공산품인 H.O.T에 똑같은 사회비판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대체 우리의 삶에 어떤 판단의 가치가 존재할 수 있는가. “돈 속에 썩어버린 양심 너의 그런 한심한 모습은 더이상 꼴도 보기싫다. (….) 이젠 제발 돈 때문에 사람 팔지 말고 주위를 둘러봐 너 혼자만 잘살잖아 한편의 허상을 향해 초라한 몸부림에 흐느끼는 영혼들의 울음이 들린다.”(Korean pride)
두어달 전 어느 시사월간지에서 이수만과 대담을 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우습게도, 갑자기 불어난 유사 지식인 활동에 치어 사는 나로선 선뜻 응할 형편도 못 됐지만, 허탈함에 쓴웃음이 나왔다. 대담 제목이 ‘문화는 돈이다’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인생의 적이자 신앙의 적으로 여기는 내가 자본주의의 전사 이수만과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 자본주의는 현실의 법이며 내가 아무리 이수만을 마땅치 않아 한들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그를 공식적으로 비난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나는 꿈에라도 이수만이 욕망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의 전사에서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대중음악 활동가로 탈바꿈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내가 이수만에게 바라는 건 단지 그의 공산품에 사회비판이라는 외장재는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것, 공산품의 길을 걸어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