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은 시작부터 어깨가 무겁다. ‘금순이’, ‘삼순이’로 드라마 왕국의 면모가 다시 한번 발휘되고 있으니 이 참에 ‘굳히기’ 들어가주었으면 하는 방송사의 바람을 잔뜩 안고 있다. ‘일일’에 ‘수·목’까지 꿰찼으니 ‘월·화’도 접수하면 좋지 않겠냐는 기대. <환생-넥스트>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탓에 더욱 증폭된 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아주 죽겠어요.” 연출을 맡은 이태곤 PD는 은근한 기대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시청률을 떠나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데….” 이렇게 되면 시청률을 간과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토로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패션 70’s>의 이재규 PD는 가장 아끼는 후배이고, <그녀가 돌아왔다>는 <12월의 열대야>에서 함께했던 남진이가 출연하잖아요!” 그러니, 그들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모두 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게 이태곤 PD의 ‘사심없는’ 욕심이라면 욕심인 셈이다.
그러니 “욕만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난색을 표하지만, 7월4일 모습을 드러낼 <변호사들>은 MBC가 내건 히든카드답게 분명 그 활약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첫 방송을 앞두고 시청자 게시판을 잔뜩 메운 ‘기대’의 글이 아니더라도 눈길을 끄는 면면들이 꽤 있다.
먼저, 변호사라는 소재다. MBC에서 98년 방송된 <애드버킷>을 비롯해 SBS의 <로펌>(2001),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2005) 등 그간 변호사는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꾸준히 등장해왔다. “이른바 특수직업이라고 일컬어지는 변호사가 (다른 특수직업에 비해)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는 사실은 변호사라는 소재가 시청자에게 ‘어필’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제작진은 생각이다. <애드버킷>의 평균 시청률이 30.7%, <로펌>과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도 20%대를 유지하는 등 모두 사랑받았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태곤 PD 역시 “살면서 억울한 일을 안 당해본 사람은 없다”며 “TV를 통해서나마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가 구현되는 것에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변호사드라마의 인기요인을 분석했다.
이 드라마 역시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소속 변호사들간의 치열한 경쟁과 사랑이 그려지는 만큼 그런 기대감을 갖게 한다. “사건은 무궁무진하니 법정드라마야말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장르”라는 이태곤 PD는 “가슴에 와닿는 현실적인 사건들을 해결하며 시청자들에게 정보와 재미를 함께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자신한다. 다양한 판례를 조사하기 위해 법원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는 후문은 <변호사들>이 내놓을 사건에 관심을 증폭시킨다. 법정드라마 특유의 극적 긴장감을 위해 인물의 움직임을 일일이 쫓는 ‘팔로 기법’을 사용했고, 리얼리티를 위해 가장 한국적인 법정장면을 담아냈다는 사실도 시청자가 원하는 카타르시스를 충족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사랑’이 주요 사안으로 등장한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여타의 법정드라마들이 사건이 주가 되고 사랑이 부가 되었던 것과는 달리 <변호사들>은 등장인물의 관계에도 초점을 맞춘다. 이태곤 PD는 “변호사들이 맡은 사건이나 에피소드만큼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룰 예정”이라며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선택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이 얼마만큼 바뀔 수 있는지를 사랑에 임하는 그들의 행동으로 설명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이들의 ‘사랑’은 당차거나 밝게 그려지진 않는다. <12월의 열대야>를 통해 지독한 사랑을 확인시켜준 바 있는 이태곤 PD의 작품답게 우울하고 슬프다. 배경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엠시 스나이퍼의 <글루미 선데이>를 샘플로 들려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위기는 짐작된다.
법정드라마의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당당함에 선택의 기로에 선 내면연기까지, 여느 작품보다 섬세한 연기를 요구하는 <변호사들>은, 그로 인해 출연자들의 면면에도 관심이 쏟아진다. 엉뚱하지만 정의로운 변호사 서정호 역은 <2004 인간시장>을 통해 정의감에 불타는 사나이 역을 멋지게 소화해냈던 김상경이 맡아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김상경은 <애드버킷>에서 검사로 출연해 호평을 받은 바 있고 <마지막 전쟁>에서는 법대 출신의 기업 컨설턴트, <메디컬센터>에서는 의사로 출연하며 지적이고 강인한 면모를 과시한 바 있다.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만큼 시청자들 역시 “그가 제격이다”는 평가다. 그런 정호를 짝사랑하는 비서 김주희 역은 <불새>에서 열연했던 정혜영이 맡았다. 주희는 5년 전 사고로 부모를 잃고 불구가 된 동생과 함께 사는 순수한 여인으로 묵묵히 정호를 도와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화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하는 등, <불새>에서 보여주었던 악역을 벗어던진 그의 변신도 관심을 끈다. 정호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주희의 옛 연인 윤석기 역엔 <로망스>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쳤던 김성수가, 젊은 변호사를 유혹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관능적인 비서 양하영 역은 한고은이 맡았고, 첫 정극연기에 도전하는 이휘재와 제롬 등 ‘화려한’ 조연들의 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PD는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조연과 주연의 구분이 없다”며 “모두 나름의 사연을 갖고 이야기가 펼쳐지므로 다른 법정드라마와는 달리 좀더 현실적이고 다양한, 사실적인 모습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인물은 추상미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해 촉망받는 검사가 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되는 조연 송이령을 연기한다. 주로 주인공을 맡았던 그는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 가장 비중이 작지만 절제할 줄 알고 포용력이 있는 선한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고 출연이유를 밝혔다. 역할 자체가 마음에 들어 조연을 결심했다는 추상미의 이야기는 그의 연기에 기대를 걸게도 하지만 <변호사들>에 대한 기대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추상미가 조연도 마다지 않았으니 얼마나 뛰어난 드라마일까” 싶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극본을 담당한 정성주 작가가 <아줌마> <장미와 콩나물> 등 중년층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술의 나라> <애정만세> 등 젊은 드라마에선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다. 이태곤 PD는 “감각적이고 기본 실력이 탄탄한 작가인 만큼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것”이라며 “이미 나온 6회분의 대본은 아주 만족스럽다”고 우려를 잠식시켰지만 정성주 작가의 실력이 <변호사들>에서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