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감독 유현목 출연 김진규
<EBS> 7월22일(일) 밤 10시10분
1960년대 유현목 감독은 6·25 전후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전쟁과 종교적 믿음의 문제를 접목한 <순교자>(1965)와 <카인의 후예> 등의 작품이다. 흔히 유현목 감독에게 1960년대 중반은 침체기로 정의되곤 한다. <오발탄>의 빛나는 미학적 성과 이후 이렇다할 후속작을 내놓지 못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감독에게 있어 이것은 필연적인 ‘우회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유신이라는 냉엄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감독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는지의 시각에서 보면, <카인의 후예>도 충분한 연구대상으로 떠오른다. 게다가 이 영화는 이후 유현목 감독이 만든 일련의 반공영화들을 설명해주는 키워드 역할도 해낸다.
<카인의 후예>에선 8·15 해방 이후 북한사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공산화의 물결을 타고 면마다 농민위원회가 설치되기 시작한다. 야학교사를 하는 박훈은 당에서 파견나온 인물에게 야학을 접수당한다. 지주들은 인민의 적으로 몰리고 그들의 재산은 순식간에 몰수당한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이익을 노리는 집단도 생겨난다. 한때 지주들의 편에 섰던 도섭 영감은 영리하게 방향을 바꿔 공산당의 앞잡이가 되어 지주 비판에 앞장선다. 토지개혁과 인민재판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을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합집산을 거듭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황순원의 소설이 원작이다. 다른 유현목 감독의 작업처럼, 넓게 보자면 문예영화에 속한다. 영화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투명하게 내비치고 있다. 공산주의의 비인간적인 태도, 공산화의 물결 속에 희생되는 개인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약간의 양념으로 멜로드라마의 코드가 포함되긴 해도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진 않다. 얼핏 <카인의 후예>는 ‘반공영화’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붉은 완장을 차고 ‘인민해방’을 강요하는 세력들은 한결같이 수상쩍으며 괴물 같은 모습이며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좀더 이지적인 이들로 포장한다. 유약한 지식인 이미지의 박훈은 집단화되고 인민재판의 힘이 막강해지는 북한사회에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카인의 후예>는 토지개혁 등의 과정을 거쳐 전통적인 사회구조가 서서히 붕괴해가는 등 해방 이후 북한사회가 변화해가는 양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김진규와 박노식, 문희 등 배우들의 호연은 <카인의 후예>를 든든하게 받치는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영화에선 이따금 미묘한 틈새가 발견된다. 지나칠 만큼 형식에 치중한다는 점.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 ‘반공’의 주제의식을 밑바탕에 깐 채로 감독은 형식에서 모더니즘적인 엄격함을 견지해나간다. 영화 내내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유장하기 이를 데 없는 미장센을 펼쳐보이고 있다. 당시 유현목 감독이 반공이데올로기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 문법을 수용하면서 영화적인 타협점을 찾고 있음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으로 감독의 작품들을 고찰해보면 더 흥미로운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당시 유현목 감독에게 반공영화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식실험을 가능케 하는 의미를 지녔던 것은 아닐까?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