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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주부들>의 매력 탐구 [2]
김도훈 2005-07-01

갈수록 뒤얽히는 미스터리

<위기의 주부들>은 “어떤 전통적인 드라마들과도 가까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크 체리의 희망처럼,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든 장르의 혼용을 보여준다. 로맨틱코미디와 소프오페라, 가족드라마와 살해범을 찾는 <제시카의 추리극장>식 미스터리가 모두 녹아들어 있다. 주부들은 숨막힐 듯 깨끗한 교외의 저택 속에서 살아가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곳은 끈적끈적한 비밀이 뒤얽힌 정글과도 같다. 윈스페리아 거리의 주부들은 서로를 친구라 믿고 있지만, 닫힌 문 안에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는지는 상상도 못하고 있는 여인들이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주부들은 어젯밤 섹스 상대의 성기 길이까지 서로에게 알려주던 <섹스&시티>의 여자들과는 다르다. 가브리엘은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의 정원사와 비밀스런 내연관계를 유지하다가 나중에서야 친구들에게 발각된다. 브리의 가족들은 범죄와 섹슈얼리티의 지옥 같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메인 캐릭터인 수잔의 데이트 상대인 배관공 마이크는 도통 정체가 불분명한 인물. 게다가 자살한 메리 앨리스의 가족사를 둘러싼 불쾌하고도 더러운 음모가 시리즈 전체에 깊은 암운을 드리운다. <위기의 주부들>이 단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한낮의 소프오페라가 아니라는 사실은 빠른 속도의 전개에서도 볼 수 있다. 보통의 시리즈가 극의 끝까지 질질 끌고갔을 (매리 앨리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참견쟁이 후버 부인은 겨우 1시즌 일곱 번째 에피소드에서 살해당한다. “다른 드라마들이 기본적으로 5페이지 정도의 대본으로부터 35개의 신을 만들어내는 반면, <위기의 주부들>은 겨우 2페이지 정도의 대본으로부터 60개의 신을 뽑아낸다”라는 프로듀서의 설명처럼, <위기의 주부들>은 오래된 ‘클리프 행어’(벼랑 끝에 매달린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회를 마감하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다음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식 즐거움을 소프오페라의 세계로 가져왔다.

개성있는 캐릭터와 경쾌한 미국식 유머

<위기의 주부들>이 긴박한 극적 구조에만 거대한 명성을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섹스 앤 더 서버비아(교외)>라는 별명처럼, 여기에는 4명으로 구성된 메인 캐릭터들의 각기 다른 개성과 드라마가 있다. <섹스&시티>가 독신 여성들의 마음을 앗아갔듯이, <위기의 주부들>은 가정주부들의 심장을 움켜잡는다. 언젠가 나타날 완벽한 남자를 기다리는 절박한 이혼녀 수잔, 50년대 세재광고처럼 완벽한 가정을 꿈꾸지만 자기 세계의 붕괴를 경험하는 브리, 4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데 완전히 소진한 채로 화려했던 커리어 우먼의 나날들을 되새김질하는 리네트, 자신도 매리 앨리스처럼 머리를 날려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나머지 젊은 남자와의 일탈을 즐기는 ‘인형의 집’ 속의 가브리엘. 네 주인공의 모습들은 각기 다양한 종류의 주부들을 대변한다. 물론 (미국 가정주부들의 가장 큰 응원을 받는다는) 리네트를 제외한다면, 모든 주인공들의 삶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진짜 같은 것은 아니다. <위기의 주부들>은 기본적으로 소프오페라이며 미국식 농담으로 가득한 절묘한 코미디다. 캐릭터들의 자포자기한 심정은 스산한 내레이션과 함께 다음회를 예고하지만, 결코 무겁게 시청자들의 가슴을 내려앉히지는 않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여자들은 분명히 절박하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절망과 자포자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평온한 섬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섹스&시티>의 여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서로에게서 뭔가를 숨기고 살아갈 것이고, 때로는 아주 나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위기의 주부들>이 만들어내는 재미의 원천이다.”(마크 체리)

사회적 논란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쟁점

정치적 공정성을 심각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위기의 주부들>은 어쩌면 조금 불편한 오락거리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리네트는 “이제 내가 주부가 될 테니 네가 일하라”는 남편의 말에 “그건 좀 괴상하지 않아?”라고 반문한다. 꽥. 열혈 페미니스트들이라면 소리를 지를 대목이다. 품위있는 매력의 소유자 브리는 벽에 로널드 레이건의 사진을 걸어두고, 미국총기협회를 지지하며, 정상성의 궤도를 벗어난 섹스를 ‘변태’(Pervert), 이성애를 벗어난 성적 지향을 ‘소도미’(Sodomy)라 부르는 열렬한 공화당원이자 기독교도다. 이런 위태위태함이 바로 <위기의 주부들>을 줄곧 관통하는 매력 중 하나다. 시리즈의 메인 카피인 “누구나 더러운 빨랫감을 조금씩은 지니고 있다”(Everyone Has a Little Dirty Laundry)는 글귀는, 미스터리의 비밀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이면까지도 거울처럼 비춰낸다. 그 누구도 완벽하진 않으며, 비밀이 없는 인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열혈 공화당원이자 게이라는 아이러니한 인생의 소유자 마크 체리는, 표백제로 빨아놓은 듯한 소프오페라의 세계에 맵싸한 풍자극 하나를 던져놓았다. 바야흐로 달콤한 연애와 섹스와 시티의 시절은 가고 더러운 빨래를 세탁할 계절이 온 것이다.

*<위기의 주부들>은 영화채널 캐치온 플러스에서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밤 11시에 방송되고 있으며(재방송은 월·화 오후 3시), 공영방송인 KBS 역시 7월24일부터 매주 일요일 밤 11시15분에 이 섹시하고 위험한 시리즈를 방영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등장인물이 많아 헷갈리신다고요?

1. 아담스 패밀리 혹은 메리 앨리스 패밀리 미스터리의 시작을 알리는 가족. 메리 앨리스는 등장하자마자 권총으로 자살하고, 비밀을 간직한 폴과 잭은 알 수 없는 행위들로 이웃의 의심을 산다. 특히 출생의 비밀을 타고난 아들 잭은 모든 비극과 폭력의 근원으로, 종종 사이코 같은 행동으로 주변사람들을 위협한다.

2. 참견쟁이 후버 부인 ‘말 많은 동네의 참견쟁이’에 머무르지 않고, 이웃의 약점을 캐내 협박하고 돈까지 뜯어내는 악질 부인. 결국 비극적인(그리고 통쾌한) 죽음을 맞이한다.

3. 위기의 주부. 브리 반 드 캠프 가족 요리부터 정원 가꾸기까지 모든 것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브리는 완벽한 주부의 표본. 하지만 그녀의 결벽증적인 완벽 성향에 남편과 아들, 딸은 갑갑함을 느낀다. 결국 남편은 이혼을 선언하고, 아들 앤드류는 비행소년으로 전락. 그보다 더한 고난들도 향후 에피소드에서 도사리고 있다. 가장 ‘위기’에 빠진 주부.

4. 다섯명의 웬수들과 리네트 스카보 가족 광고회사 중역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리네트는 출산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전향. 사랑스럽지만 우유부단한 남편을 포함, ‘다섯명의 아이’에 부대끼며 산다. 미국의 주부 시청자들이 가장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는 캐릭터.

5. 사랑밖에 난 몰라, 수잔 메이어와 딸 줄리 동화책 일러스트레이터인 수잔은 비서와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난 남편에 대해 여전히 이를 갈고 있다. <섹스 & 시티>의 캐리와 일맥상통하는, 대표적인 ‘사랑밖에 난 몰라’ 혹은 ‘사랑없인 못 살아’ 캐릭터. 조숙한 딸 줄리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6. 가브리엘 솔리스, 범죄자 남편 그리고 정부 가브리엘은 전직 모델 출신이지만, 다이아몬드의 쾌락을 좇아 남편 카를로스와 결혼. 비록 답답한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는 있지만 풍족한 삶을 벗어던질 용기도 없다. 17살의 섹시한 정원사 존과 내연의 관계에 있다.

7. 팜므파탈, 에디 브리트 모든 남자를 목표로 삼는데다가 생활력도 질긴 바람둥이 이혼녀. 시리즈 초반에는 부수적인 인물이었으나 점점 인기가 높아져서 현재는 메인 캐릭터들과 거의 동등한 대접을 받는 중.

8. 이 남자를 믿지 마세요, 마이크 델피노 새로 이사온 배관공. 수잔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위스테리아 거리로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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