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포커스
<위기의 주부들>의 매력 탐구 [1]
김도훈 2005-07-01

당신 가정에는 비밀이 없습니까?

주부판 <섹스&시티>가 미국을 휩쓸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계집애들 프로는 안 봐!”라며 풋볼이나 보던 800만명의 미국 남자들까지 브라운관 앞에 앉혀버린 드라마. 1시즌 2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위기의 주부들>은 결코 만만한 가정주부용 소프오페라가 아니다. 여기에는 숨막히는 미스터리가 있고, 절박한 주부들의 드라마가 있고, 경쾌한 미국식 유머가 있으며, 섹시한 여자들과 남자들이 있다. 슬그머니 포장지를 뜯어본 <위기의 주부들>의 진실과 거짓말, 그 알싸한 세계.

위기의 주부들이 온다! 미국 <ABC>가 지난해와 올해 초에 걸쳐 방영했던 <위기의 주부들>은 베수비오 화산이었다. 2004년 10월3일에 전미 방영된 첫 번째 에피소드는 2200만명을 브라운관 앞에 앉혔고, 1시즌 23편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 그 수는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화산 폭발이었다. 게다가 그 화산재는 온 미국을 폼페이처럼 두텁게 뒤덮었다. 지난 1월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마지막 시즌을 끝낸 <섹스&시티>를 물리치고 작품상과 여우주연상(테리 헤처)을 휩쓸었고, 주인공 중 한명인 브리가 집 나간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걸쳤던 빨간색 속옷은 300달러의 고가를 웃어넘기듯 완전 품절되었다. 주부들 열풍은 백악관도 지나치지 않았다. 지난 4월30일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퍼스트 레이디 로라 부시는 “부시 대통령은 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 나는 TV를 틀고 <위기의 주부들>을 본다. 이런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가 아니냐”며 좌중을 웃겼다.

다섯 아이를 익사시킨 한 엄마의 사건에서 힌트

<위기의 주부들>은 한 남자의 공상으로부터 시작된 시리즈다. 지난 2002년, 시리즈의 창조자인 마크 체리는 엄마와 함께 ‘안드레아 예이츠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안드레아 예이츠는 자신의 다섯 아이들을 욕조에 익사시켜 살해한 죄로 체포된 주부. “자식들을 죽일 만큼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여자를 상상할 수나 있어요 엄마?” 그의 엄마는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자신도 그런 적이 있노라고 조용히 고백했다. “충격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완벽한 주부이자 엄마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주부들이 저마다의 절박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에 이른 마크 체리는 그 즉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의 주부들>은 그의 공상 속에서만 머무르다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을 ‘위기의 시리즈’였다. 방송사들은 관습과는 거리가 먼 대본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포자기 상태의 마크 체리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한동안 히트 시리즈를 내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던 <ABC>였다. <ABC>의 제작자들은 어둠침침하고 폭력적인 블랙코미디를 저녁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지만 궁리 끝에 방도를 찾아냈다. “설정만 조금 바꾸어서 소프오페라처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소프오페라의 세계, 티끌 하나없이 화사한 ‘미국 교외의 중산층 마을(Suburbia)’ 윈스페리아. 한 중년 여자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 이름은 메리 앨리스 영이에요. (중략) 모든 게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어요. 가족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고. 보통의 다른 날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냈답니다. 그것이 바로 놀라운 이유예요. 제가 갑자기 붙박이장을 열고,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권총을 꺼내들었으니까요.” 그리고 뱅! 매리 앨리스는 자살한다. 매리 앨리스의 죽음 뒤에는 남겨진 네명의 주부들이 있다. 사랑에 목을 매는 철없는 이혼녀 수잔(테리 헤처), 마샤 스튜어트와 <스텝포드 와이프>를 연상시키는 가사일의 황제 브리(마르시아 크로스), 부자 남편과 살고 있는 매력적인 전직 모델 가브리엘(에바 롱고리아), 성공적인 광고계의 중역직을 포기하고 4명의 개구쟁이들을 키우는 리네트(펠리시티 허프만). 네 사람은 매리 앨리스의 유품에서 협박편지(“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정말로 역겹더군. 사람들에게 폭로해버릴 거야”)를 발견한다. 오오. 불쌍한 메리 앨리스.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거니? 네 사람은 친구의 죽음 뒤에 숨은 비밀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극중 대사로 알아보는 주인공의 성격

말하는 거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고 했던가

수잔 메이어

수잔 | 비서랑 바람 피운 전남편이 말하더군. 그건 그냥 섹스일 뿐이었다고. 그러고는 부처 같은 표정으로 이러더라고. 수잔, 대부분의 남자들은 조용히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그러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데? 만족 좀 시켜달라고 절규하면서?

가브리엘 |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지. 발기한 성기는 자제력이 없다.

리네트 | 심지어 졸아든 성기조차 윤리라곤 없지.

브리 반 드 캠프

결혼상담소 박사 | 프로이트도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할 것 같군요.

브리 | 프로이트는 19세기 말에 성장했어요. 가전제품도 없는 시대였죠. 그의 엄마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겠죠. 그런데 프로이트는 뭘했나요? 그는 성인이 되어 유명해지고 나서는, 모든 성인들이 지닌 정신적 문제가 어릴 적 엄마들이 그들에게 저지른 일 때문이라는 이론을 발표했어요. 프로이트의 엄마는 정말로 배신당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의 엄마가 얼마나 그를 위해 희생했는지 프로이트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단 한마디라도 했을지 의문이군요.

리네트 스카보

톰 | 애들을 집에서 교육하는 건 어떨까. 다 크고 나면 정식학교에서 공부한 아이들보다 더 잘되는 경우도 있다구.

리네트 | 만약 내가 매일매일을 이놈들과 지내야 한다면, 그 ‘다 크고 나면’이란 건 오지도 않을걸.

톰 | 때로는 당신이 좀 희생할 필요가 있어. 이게 애들을 위한 최선의 방식일지도 모르잖아.

리네트 | 좋아. 차라리 이것들을 내 뱃속으로 집어넣고 다 큰 인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때?

가브리엘 솔리스

카를로스 | 우리가 평생 쇼핑이나 하다가 삶을 마감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브리엘 | 그거야 뭘 사느냐에 달려 있지.

카를로스 | 난 애가 갖고 싶어.

가브리엘 | 결혼하기 전에 계약했잖아. 애는 안 갖기로.

카를로스 | 계약이란 언제나 재교섭이 가능한 거야.

가브리엘 | 호오. 절대로 내 자궁이랑 교섭할 수는 없을걸.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