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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영상동호회의 세계 [3] - 애니메이션 코스프레팀
글·사진 이영진권은주 2005-06-28

변신! 메이크업 코스프레 파워~

선문대 애니메이션 동호회 ‘애니세대’ 코스프레 팀

“얘가 도대체 어디 간 거야?” 토론토 피어슨 공항 근처 한 일식당. 한국 동포인 여사장은 갑자기 성깔이 돋았다. 손님이 한참 밀려드는 시각인데 웨이트리스가 앞치마를 벗어두고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사장이 직접 주문을 받는 동안 문제의 웨이트리스는 근처 코스프레 행사장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눈요기만 하러 슬쩍 나온 그녀는 급기야 코스프레 행렬을 뒤따라 애니메이션 상영관으로 직행했고,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었다.

6월1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앞 광장. 코믹월드가 주최한 코스프레 콘테스트 첫날에 만난 편예정 씨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는 스무살, 대학 새내기다. 이날 <환상마전 최유기>를 흉내낸 코스프레팀을 보더니, 그는 문득 몇년 전 캐나다에서 열렸던 재패니메이션 전시회와 코스프레 행사에 홀딱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을 게워내며 깔깔댄다. “캐나다에 간 지 1년8개월쯤 됐나. 한동안 못 봤던 캐릭터들을 봐서 그랬나 봐요. 처음엔 잠깐 구경만 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일이 그렇게까지 된 거죠.”

눈 감고 꾹 참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신문을 펴들고 방송 편성표를 훑던 초등학생이었고, 애니메이션 동아리를 만든다고 학교를 들쑤셨던 중학생이었고, 극장판 애니를 볼 수만 있다면 부모에게 거짓말하고 서울을 찾던 고등학생이기도 했다. 그랬으니 ‘유배지’가 어디인들 무슨 상관이랴.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갔을 것이다. “매일 인터넷으로 재패니메이션을 다운받고 그랬으니 부모님이 좋아하셨을 리 없죠. 절 외국으로 보내신 것도 그 때문인지 몰라요.”

코스프레를 아시나요?

코스프레팀 부문 최고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재연 중인 애니세대.

코스프레 행사가 열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또래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애니메이션 중독자들이다. “따분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하다”는 게 이들이 성인이 돼서도 판타지의 마법에서 풀려나길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 우혜연씨는 “보수적인 할아버지 때문에 만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코흘리던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섭렵한 케이스다. 고수현, 이민영씨는 재패니메이션을 자막없이 보기 위해 학원을 다녀가면서까지 일본어를 배웠고, 결국 대학에서도 일어를 전공하고 있다. 다소 뒤늦게 입문한 김순혜씨 또한 일어를 복수전공하고 있는 중이다.

다섯살 꼬마부터 혼기가 다 된 처녀까지 괴상한 복장으로 북적이는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은 선문대학교 1, 2학년생. 만들어진 지 13년이나 된 학내 동아리 ‘애니세대’ 멤버다. 애니세대는 만화, 일러스트, 글, 코스프레 등 4파트로 나뉜 애니메이션 동아리로, 이들은 코스프레조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기말시험이 코앞인데 포기하고 천안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의아해했더니 오찬복씨 왈. “공부야 평소에 하는 것 아닌가요.” 지역대학 연합동아리, 학교 축제 행사에만 참가해오다 “좀더 많은 코스프레 기회를 갖기 위해” 코믹월드가 주최한 행사까지 나오게 됐다는 이들은 “요즘이야 좋아졌죠. 4∼5년 전만 해도 코스프레 하면 손가락질 하며 미쳤다고 했으니까”라고 덧붙인다.

“얘는 마류 라미아스, 그리고 애는 아스란 자라, 그리고….” 이들이 코스프레한 <건담시드 데스티니>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여섯 캐릭터 이름을 받아적느라 애먹고 있는데, 한쪽에선 이날 콘테스트 품평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사이 편예정씨가 휴대폰을 받더니 “우리 1등이래!”라고 환호한다. 참가 관객의 투표 결과, 코스프레팀 부문 최고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엔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팔고 사기도 해요. 기본적인 성의가 없어요.” 한달 넘게 손바느질한 옷을 입고 나선 첫 공식 무대에서 1등을 먹었으니 다들 펄쩍 뛰며 흥분할 만도 하다.

꿈을 재봉하는 재미, 포기할 수 없어요

<천사 금렵구>의 지브릴을 코스프레 중인 플레이어.

코스프레는 현재로선 이들이 애니메이션에 애정을 적극적으로 고백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일 좋은 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죠. 능력이 없어서 덧대서 그리는 게 고작이지만….” 모두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창작을 동경해왔지만, 빼어난 그림 솜씨를 가진 친구들 때문에 포기했던 기억들이 있다. “사각형이던 옷감이 모양을 갖추게 됐을 때도 그렇고 또 그걸 입었을 때도 그렇고 뭔가 이뤘다는 성취감이 있어요. 그건 안 해보면 몰라요.” 처음 만든 원피스가 너무 작아 입지도 못하고 버리기도 여러 번. 이제 꿈을 깁는 재미를 톡톡히 맛봤다. 다음번 도전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물 <백작카인 시리즈>라며, 기대해도 좋다 한다.

이들의 프로포즈가 코스프레에서 그칠까. 관련학과에 재학 중인 것은 아니지만, 여섯명 모두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 관련 일에 종사하고 싶은 꿈을 품고 있다. 동아리는 꿈에 도달하기까지 숨찬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행복한 울타리다. 편예정씨는 “혼자 즐길 수도 있죠. 그런데 같이 하면 도움되는 게 많아요. 이를테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만 하더라도 저는 하울이라는 캐릭터에만 집중해서 봤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갑자기 늙어버린 자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소피 이야길 하더라고요. 제 좁은 세계 바깥을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죠”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질문 하나. 코스프레가 타인들로부터 시선집중을 받기 위한 젊은 세대들의 그저 그런 이벤트가 아니냐고? 고백건대, 그들과의 만남은 준비했던 삐딱한 반문을 삼키게 만들었다.

인기있는 코스프레 캐릭터들

제복입은 캐릭터가 좋아요!

<블리치>의 사신 캐릭터 중 하나인 코우라쿠 슌스이의 코스프레.

애니메이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뭘까. 코스프레가 놀이로 자리잡으면서 재봉 실력이 92%쯤 부족한 코스튬 플레이어 희망자들을 위한 코스프레 의상 전문 제작·대여업체도 생겨났는데, 가장 많이 대여되는 캐릭터 의상 순위로 요즘 애니메이션 팬들이 선호하는 캐릭터를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프레 의상 전문업체 코스프레 닷컴에서 밝힌 최근 가장 인기있는 애니메이션은 <블리치>다. 사신들 사이에서도 복잡한 계급이 존재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많은 캐릭터 중 사신들 캐릭터가 있기 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건담시드>의 캐릭터들을 꼽을 수 있다. 건담 시리즈의 11번째 시리즈인 <건담 시드>는 최근 <투니버스>에서 방영이 되면서 주문이 늘어난 경우다. 만화 전문 채널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인 <이누야샤>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 이중에서 무녀 키쿄우와 여고생 카고메의 의상이 특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 여고생 학원물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는 시리즈에 나오는 교복 자체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아직도 베스트셀러 품목이지만 현재는 하향세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외에 코스프레 닷컴의 의상담당 김민정씨가 꼽은 이른바 뜨고 있는 캐릭터는, (비록 아직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디·그레이 맨>의 주인공들. 만화책이 정식 수입되어 출판된 것이 올해 5월이었던 것에 비해 주문량이 상당하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제복과 교복 등 단체의상이 강세를 보임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여고생들에게 남자 캐릭터 의상이 인기있다는 점. 남자 코스튬 플레이어보다 여자 코스튬 플레이어가 미소년 캐릭터로 변장했을 때 효과가 더 높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