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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캐릭터 전성시대 [3] - <…김삼순> 인기 비결

방영 2주만에 30%대 시청률 잡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인기 비결

삼순이 덕에 ‘음메~, 기 살어’

아는 건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삼식이밖에 없다. 삼순이에 대해 뭘 써야 하나 고민한다.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본다.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기껏 한다는 생각이 그래도 24부가 아니라 아직까지 4부밖에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위안 아닌 위안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작정하고 <내 이름은 김삼순>을 주말 동안 몰아 본다.

먼저 약간의 진부함으로 여겨지는 것들. 주인공 김삼순(김선아)과 그의 적수이자 (아직까지는 가짜) 연인인 현진헌(현빈), 그리고 그의 옛사랑 유희진(정려원), 삼순의 옛사랑 민현우(이규한), 현우의 현재 애인 장채리(이윤미), 뒤에 유희진의 또 다른 파트너로 등장할 헨리 킴(대니얼 헤니)까지 그들의 관계 구성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척척 장단을 맞추며 서로 막가고 있는 김삼순과 현진헌의 관계가 재미있기는 해도, 그 한쪽 현진헌의 캐릭터는 솔직히 어디선가 많이 본 것의 변형인 듯한 느낌이다. ‘부잣집 아들에 싸가지 없는 냉정한 “얼음왕자”이지만, 싸가지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멋있는 “미지왕”에, “뽀삽질”한 걸로 착각할 만큼 미남인데다, 능력까지 출중하고, 가슴 한구석에는 슬픔과 순수함까지 지닌 젊은 이 총각’(아~~ 써놓고보니 속이 쓰릴 만큼 멋지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은 역시 여전하다).

김선아의 코믹연기가 선사하는 통쾌한 웃음

하지만 뭐가 힘인지도 보고나니 좀 알겠다. 일단 웃기다는 것을 알겠다. 억지로 웃음을 강매하는 충무로의 일부 허접한 영화들보다 한수 위이니, 그 방면에서만큼은 분명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도 하게 된다. 나오자마자 왜 30% 시청률을 훌쩍 넘어섰는지도 알겠다(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6월1일 첫회 방영 이후 4회 만에 30.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시청률 감응 속도로만 보면 지난해에 인기를 끌며 방영했던 <파리의 연인> 수준이라고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평소에 은둔하여 짱박혀 살던 대한민국 삼순이 삼식이들이 이미 곳곳에서 모여들어 공식 클럽 ‘3344’(‘삼’순이와 ‘삼’식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결성해놓았다. 3344 결사대원 중 닉네임 용가리 통뼈님은 “<대장금>의 음식 이야기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는 것 같은 두 가지 느낌이 팍팍 드네요… 역시 코믹의 여신 김선아”라는 짧은 문장 하나로 드라마의 앞뒤를 한번에 꿰뚫어보는 독창적인 소감을 올려놓았고, 닉네임 꽃사슴님께서는 “히히히 오늘은 재방 봐야 한다. 요번 주 벌써 5번째다. 그래도 재밌는데!!!!!”라며 요즈음 삼순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반복 무한 시청’의 기현상을 몸소 입증하고 있다(재방송 시청률만 해도 12.2%를 넘겼다고 한다). 인터넷, 종이매체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삼순이를 주시한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도대체 <내 이름은 김삼순>의 무엇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되는 걸까?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매력은 누구나 다 느끼듯이 ‘김선아가 연기하는 김삼순의 캐릭터’다. 그냥 김삼순의 캐릭터가 아니라 김선아가 연기하는 김삼순의 캐릭터다. 거기에서 첫 번째 흥미로운 건 인터넷 원작소설에서 빌려온 동명의 제목이다(원작자 지수현은 얼마 전 타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열여덟 스물아홉>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정기적으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경우 제목은 쉽게 그 극의 흐름을 한눈에 포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지어진다. 이를테면 제목은 드라마의 첫회와 마지막 회 모두에서 유효해야 한다. 그 점에서 보면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제목은 거의 선언이다. 주인공 캐릭터를 이해하는 어떤 단초로 그 제목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이름은 콤플렉스에 억눌린 현대인

비교하자면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하며 삼순이만큼이나 인기를 얻고 있는 또 하나의 순자 돌림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하고는 다른 차원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타자의 응원 형태로 지어진 제목이다. ‘어리고 착한’ 금순이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하는 제목이다. 세상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 세파를 꿋꿋이 헤쳐가는 금순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극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힘들어도 네 곁에 ‘매일매일’ 우리 시청자가 있을 테니 용기를 잃지 말라는 메아리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정 많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일일드라마라는 점은 왜 격려조의 감정이입 유도로서의 제목이 지어졌는지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은 말 그대로 주인공 스스로 이름을 밝히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다. 그래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핵심적인 두 가지의 뉘앙스를 모두 갖고 있다. ‘어쩌다가 나는 삼순이인가’라는 자학과 ‘어쩔래, 그래도 나는 삼순이다’라는 자신감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와 어쩔래’ 이 동석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성격의 공존이 바로 그녀 캐릭터의 본색이다. 김삼순. 30살(홈페이지에 따르면 29살). 방앗간 집 셋째 딸.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시장상인들을 상대로 조그만 금융업을 하시는데 그녀 말에 따르면 “일수를 살짝 놓고 계신다”. 큰언니는 힘들게 사는 것 같고, 둘째언니는 이혼한 뒤 집에 돌아왔고, 남자 친구에게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계기로 차였고, 새로 알게 된 한 남자는 싸가지가 없어도 매력은 있는 직장 사장이다. 능력있는 파티셰지만 지금은 돈이 궁해 그 사장과 가짜 계약을 하고 그의 연인 흉내를 내고 있다. 이게 김삼순의 지금 모습이다.

여기서 첫 번째 ‘어쩌다가 삼순이’는 그녀의 피할 수 없는 결점을 자학하고, 내로라 하는 푼수 기질의 태생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여자다. 어릴 때부터 바꾸고 싶어 안달이 났던 창피한 이름 삼순은 결국 희진으로 가명을 쓰면서까지 감추고 싶은 자신의 결점이다. 삼순이 자신을 김희진으로 부를 것을 레스토랑 입사 계약 최대의 조건으로 내거는 것으로도 그건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어쩌다가 삼순이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푼수 기질이 가득하다. 어쩌다가 남자에게 채여 바짓가랑이 잡고 울고불고 매달리며 화장범벅으로 울어젖히기, 어쩌다가 남자 화장실에 잘못 들어가 변태로 오인받기, 어쩌다가 상대방 얼굴에 씹던 밥풀 몽땅 쏟아붓기, 어쩌다가 술 취해 업혀가다 남자 등에 실례하기 등등등. 거참 삼순이 같은 짓만 하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그녀의 푼수짓은 끝이 없다. 그동안 영화계에서 다른 여배우들이 기피하던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인식시킨, 혹은 다른 여배우들에게서는 끌어낼 수 없었던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확정해버린 김선아의 연기가 이 드라마의 푼수짓을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김선아가 아니라, 김정은이었거나, 예지원이었다면 드라마의 주인공은 삼순이가 아니라 다른 것이 되어야 했을 정도다.

실력과 능력으로 세상에 맞서는 당당함

하지만 두 번째 ‘그래 어쩔래 삼순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사랑이자 자신감으로 가득 찬 여자다. 그걸 말하기 전에 종종 어쩌다가와 어쩔래 사이의 중간 형태로 벌어지는 것이 ‘은어와 쌍말과 성질부리기’라는 걸 먼저 말해야겠다. 잘난 척하는 사장 현진헌에게 미지왕(미친놈 지가 무슨 왕자인 줄 알아의 줄임말)이라고 말해서 그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은어 사용의 대표 사례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어이없는 소리를 하자 “너 지금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냐?”라고 말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새끼 저 새끼는 기본이고, 이년 저년은 보통이다. 현진헌의 옛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 커피 잘 마셨다고 쪽지를 남겨둔 예쁜 글씨를 보고 삼순이가 칭찬하는 말. “얼굴도 이쁜 년이 글씨도 잘 써요.” 그래서 멋모르고 약올리는 새끼들은 다 봉변당하게 마련이다. 현진헌을 처음 만난 날, 그의 양복 윗도리에 ‘어쩌다가’ 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가 대뜸 잘라버리자, 바로 뒤이어 달려가 얼굴에 케이크 날려버리는 삼순이. 성질이 막무가내다. 그래 어쩔래.

그런데 얼굴 위로 곤죽이 된 케이크 맛을 본 현진헌의 반응은 환호다. 그래서 그 맛에 반한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이 자신의 레스토랑에 그녀를 전격 파티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래 어쩔래 삼순이의 특징이 바로 이거다. 그녀는 성질만 끝내주는 게 아니라 자기 본업에서의 기술도 환상이다. 그래 어쩔래의 삼순이가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욕을 잘해서도 아니고, 발길질을 잘해서도 아니다. 그녀가 갖춘 전문 분야 여성으로서의 성실함과 능력 덕택이다. 사장과 ‘야자’ 뜰 수 있는 막나가는 사랑의 줄다리기도 실력을 인정받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성질만 있고 능력이 없는 김선아가 <위대한 유산>의 백조 미영이라면, 그 둘을 모두 갖추고 있는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인 거다.

자학에서 자존심 회복으로

말하자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궁극적으로 자학에서 자존심 회복으로 나아가는 드라마다. 세상 삼순이들을 대표해서 자존심을 지켜주는 드라마라고 표방하고 있는 거다. 비교하여 <파리의 연인>이 여자들의 있을 수 없는 환상과 남자들의 있지도 않은 환상을 동시에 자극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촌스러운 태생에 대한 자학에서 시작하여 그녀들의 자존심을 성대하게 회복해주는 전략을 택한다. 그래서 처음 시작이 좀 구차했으나 그 끝이 아름다울 거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된다. 때문에 어쩌다가의 삼순이가 지금까지 억척으로 코미디를 끌어안은 것처럼, 어쩔래의 길로 막 접어든 삼순이에게는 앞으로 순수하게 사랑에 성공하는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장들을 무척 많이 외우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언젠가는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위해 그걸 쓰게 될 거다. 삼순이는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가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순 없다”고 생각한다. 능력만큼 중요한 게 사랑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앞으로 만들어질 러브 케이크의 이름이 그녀의 촌스러운 이름과는 달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지어질 거라는 이 드라마의 약속처럼 들린다.

추신: 재치있는 또는 얄팍한 또는 사소한 재미 하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다른 기존의 드라마 장면들에 대한 언급을 서슴지 않는다. 레스토랑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치기 직전의 현진헌에게 삼순이는 “텔레비전 안 보는 척하면서 볼 건 다 보네”라고 말을 던진다. <파리의 연인>을 흉내낸 것이라는 비난을 아예 톡 까놓고 흉내낸다고 공언하면서 피해가는 방편이다. 사람들은 그래 알겠다고 한번 웃고 난 뒤 그 다음은 다시 흉내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흘러나오는 음악과 진지한 표정을 처음 보는 것처럼 열심히 감상할 것이다. 고단수는 아니지만 대략은 통하는 전법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 김도우

“취재는 무슨… 내가 오래 묵은 싱글, 평범한 삼순이다”

-김삼순은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많다. 이런 인물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위험한 부분도 있었을 텐데.

=김윤철 PD와 나는 모두 일상성이 있는 캐릭터를 선호하고 그걸 표현하는 데 장점이 있다. 드라마적인 캐릭터였다면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위험부담은 느끼지 않았다.

-김삼순과 다르게 진헌과 희진, 헨리 등은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고 전형적이다. 그들과 삼순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만들어내는가.

=작가로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진정성, 리얼리티, 관습적이지 않기…. 그걸 지켜나간다면 잘되리라고 나를 압박하고 있다.

-원작소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소설에선 진헌이 연하가 아니고 희진도 진헌을 사이에 두고 삼순과 경쟁하지 않는다.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고 각색했는지.

=원작이 괜찮다. 좋은 점들은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관습적인 틀 안에서 관습적이지 않기’, ‘사실적인 로맨틱코미디 만들기’. 그 결과 좀 새로운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삼순이는 좀더 어른스러워지고 일상성이 더 부여됐다. 그리고 희진의 역할. 후반에 살~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희진을 갈등의 핵으로 키웠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사는 현실적이고 구어에 가깝다. 뽀삽질이나 미지왕 같은 단어도 사용하고. 대사를 쓸 때 기준이 있는가.

=대사가 본질은 아니다. 캐릭터를 잘 받쳐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미지왕>은 처음 봤을 때 시대를 앞서간 그 엽기정신에 박수를 보냈는데 문득 생각나서 인용한 것뿐이다. 그리고 삼식이는 좋아하는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삼식이>에서 따왔다.

-<파리의 연인> <가을동화> 같은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작정한 건 아니다. 불현듯 덤으로 얹어주는 한줌의 콩나물 같은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30대 독신여성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원작이 있다고는 해도 다른 취재나 경험도 필요했을 듯하다.

=취재는 무슨… 내가 오래 묵은 싱글, 평범한 삼순이다(내가 못한 연애질을 시키려고 벼르고 있음. 지둘려 삼돌이들~).

-김선아의 대사나 행동,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그녀가 해왔던 연기의 톤과 비슷하다. 대사나 에피소드를 쓰면서 배우가 김선아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가.

=김선아의 연기가 기존의 것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할 때 진헌과 희진을 번갈아보던 표정연기를 보라. 새로운 연출과 융합하여 더 구체적이고, 더 사실적이고, 더 섬세해졌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지금 대본대로 갔을 테지만 고농축우라늄 같은 그녀를 만나 상상치 못한 핵폭발을 일으켰다. 방송을 본 뒤로는 “선아가 이렇게 해주겠지?” 하며 두려움 없이 쓴다. 맑고 사랑스러운 현빈과 정려원도 내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준다. 배우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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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i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