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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과 복고 사이, 캐스커

1990년대 말, 여의도 방송사와 나이트클럽 등지에선 ‘도리도리 춤’으로 표상된 테크노가 열띤 호응을 얻고, 홍익대 앞 클럽가에선 달파란, 데이트리퍼, 모하비, 트랜지스터헤드 등 일군의 DJ들이 록 밴드 중심의 인디신에 미묘한 지각변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전자는 사이비였고 후자가 진짜였다’는 ‘병아리 감별’식 평가나 ‘아∼ 옛날이여’식 후일담을 얘기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이준오의 원맨 프로젝트 캐스커(Casker)가 햇병아리 시절 저 ‘1990년대 말 홍익대 앞 일렉트로니카’의 흐름에 몸담았다는 사전정보는 필요할 듯하다.

캐스커는 1999년부터 <techno@kr> <PLUR> 등 일련의 일렉트로니카 컴필레이션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불독 맨션, 제펫,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등의 공연이나 음반에 참여하여 지명도를 높여왔다. 이를 통해, 낯설고 차갑고 어렵다는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한 통념과 맞서며 대중적 감도가 높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데뷔작 <철갑혹성>(2003)에 이어 최근 발매된 2집 <Skylab>은 그 결정판이다.

스튜어디스의 내레이션이 삽입된 첫곡 <Air Trip>은 이 음반이 60여분간의 일렉트로니카 음악 여행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번 여행에서 달라진 건 이융진(보컬), 이진욱(피아노, 키보드)이 가세해 3인조로 재편성된 점이다. 음악적 재료는 더 풍성해지고 보컬이 담긴 트랙이 다수를 이룬다. 그래서 기왕의 라운지풍 친근한 음악은 더 친숙한 색채로 다가온다. 탱고를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변형한 ‘차가운 신파’ <Tango Toy>는 음반 커버가 암시하듯 첨단과 복고 사이에 자리잡은 이 음반의 좌표를 잘 드러낸다. 금방이라도 ‘플로어’에 뛰어들게 충동질하는 라틴 하우스 넘버 <Ela(Bajo de la Luna)>와 트립합의 영향이 그림자처럼 깔리는 <다시 내게>는 이들 음악의 스펙트럼을 넓게 보여준다. <Fragile Days>가 라틴 음악에 프렌치 팝을 토핑으로 얹은 것 같다면, <어느 날 pt.1>은 복고적인 프렌치 팝으로 빚은 사운드트랙 같다. 싱그러운 보컬의 향기가 묻어나는 <고양이와 나>와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7월의 이파네마 소녀>는 보사노바를 상이하게 변용한 대중적 넘버다. 전체적으로 일렉트로니카에서 이물감을 덜어내고 친밀감을 보탠 음반이다. 때문에, 원맨 프로젝트 시절의 팬이라면 반응이 엇갈릴 듯하고, 클래지콰이와 포츈 쿠키의 팬이라면 흔쾌히 접수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