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달 전인가, 가까이 지내는 비구니 스님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들었다. 며칠 전 그분을 만났을 때, 병원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 때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진단을 했던 의사는 어느 부위에 악성종양이 있는데, 그것이 언제쯤 생겨나 지금은 어느 정도 크기로 자라고 있다면서 얼른 그걸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스님은 그 얘기를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모두 생명에 관한 말들이네요. 그런데 우리 절집에서는 지푸라기도 자기 얘기 하는 건 모두 알아듣는다고들 해요. 아마 그 종양들도 자신들이 자라고 있느니, 그걸 잘라내야 하느니 하는 얘기를 모두 듣고 있을 거예요. 자기들 죽이려는 그런 얘기가 그것들 듣기에 끔찍할 겁니다.”
전혀 뜻밖의 말에 의사선생은 매우 놀랐던 모양이다.
“아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글쎄요. 잘라내니, 죽이니, 하는 것과는 다른 식으로 말하거나, 피할 수 없다면 들리지 않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한참 뒤에 다시 진단을 받으러 그 병원을 찾았을 때, 그 의사선생은 “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하며 배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단다. “같이 오셨군요” 그러면서 그 의사선생은, 그날 스님 얘기를 듣고는 이후 오는 환자들에 대해 혹은 그 환자와 ‘함께 온’ 암세포들에 이런 식으로, 아주 다른 태도로 대하게 되었다고 했단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그 스님은 종양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심하셨다고 말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암세포는 바깥에서 침투한 병균이 아니라 자기 세포가 변성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진 게 자신의 몸 안에서 자신의 삶이 만든 거라면, 억지로 잘라내고 털어버려 저만 살려고 버둥댈 게 아니라, 그걸 안은 채 자신의 몸과 삶을 바꾸어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생명이란 죽음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정의한 것은 19세기의 유명한 의사 비샤였다. 19세기는 생명이 독자적인 실체임이 부상한 시기였고, 그래서 자연사 가운데서 생명을 다루는 ‘생물학’이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한 시기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생명이란 비샤 말대로 ‘죽음의 부정’이다. 이는 이후 삶과 죽음을 언제나 근본적인 대립과 적대 속에서 생각하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이런 사고방식 속에서 죽음과 연결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의 씨’가 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 파스퇴르나 코흐에 의해 병원균이 발견된 이후, 생명이란 우리의 신체를 침투하는 저 병균들과 싸워서 그걸 퇴치하는 군사적 모델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장기이식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곤란이 면역체계라는 사실은, 이런 군사주의적 모델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보여준다. 비록 남의 것이지만, 콩팥이나 간이 ‘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대장균을 비롯한 엄청난 수의 혐기성(嫌氣性) 박테리아들의 서식처다. 게다가 그 가운데는 병들의 원인으로 알려진 수많은 ‘병균’들이 있다. 그러나 간염균이나 결핵균이 그렇듯, ‘병균’들이 있다고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암세포 역시 그렇다. 그것이 있다고 항상 증식되고 죽는 것은 아니다. 암 아닌 이유로 죽은 사람의 몸을 열어보면 악성종양이 있었던 흔적이 뚜렷한 경우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것을 곧바로 ‘죽음’에 혹은 ‘생명’에 연결시키는 재빠른 ‘분석’처럼 삶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삶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하는 것이고, 죽음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죽을 때가 된 것이 죽지 않으려고 할 때 암세포가 되거나, <모노노케 히메>에서처럼 다른 것을 죽음으로 모는 ‘타타리카미’(재앙신)가 된다. 그래서 암세포나 종양을 자신의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것을, 혹은 그것을 안고서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는 그 스님의 말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물론 이전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겠다는 말이겠지만.
죽음을 애써 쫓아내려는 자는 죽음에 이미 반 이상 사로잡힌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자야말로 진정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일 것이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은 물론, 내 생명에 반하는 것, 내 뜻에 반하는 것조차 나의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 그것은 아마도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말의 극한값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