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게 소 닭 보듯 하며 살던 남편과 뜻밖의 화해를 했다. 박대운씨 때문이다. <폭소클럽>(KBS2) ‘바퀴달린 사나이’의 주인공 박대운씨는 양팔이 없는 친구를 위해 등을 긁어주고 코를 파주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던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순간 남편과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색한 웃음으로 대충 화해하고 다시 <폭소클럽>을 열심히 봤다. 문득 박대운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말도 하고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내가, 박대운씨에게 웃음도 모자라 위로까지 넙죽 받아챙겨도 되는 것인가.
난치병을 앓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병원 다큐’를 기피하게 된 것도 비슷한 느낌 때문이었다. 난치병에 걸린 것도 기막힌 일인데 난치병에 안 걸린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까지 깨우쳐주다니, 입장 바꿔 생각하면 참으로 분통터질 일이라는 생각에 채널을 돌리곤 했다.
방송에서 장애인을 자주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남한 인구 열명 중 한명이 장애인이라는데, 내게는 장애인 친구도, 이웃도, 직장 동료도 없고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는 일도 드물다. 일상에서 만날 수가 없으니 방송에서라도 만나 서로 눈에 익고, 마음도 주고, 더불어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장애인을 보면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아니라서 다행이야’라는 안도감으로 새삼 겸손해지고 행복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다룬 눈물과 감동의 다큐멘터리는 물론, 최근 <일요일 일요일 밤에>(MBC)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장애인들,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비장애인은 엄두도 못 낼 일을 해내는 위대한 이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비추는 카메라가 나 같은 ‘보통 비장애인’의 시선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래서 박대운씨에게 바란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눈’을 거치지 않은 맨 얼굴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눈물 아닌 웃음을 주는 게 처음이라서, 촌스럽고 염치없지만 ‘바란다’. “행여 비장애인 시청자 같은 건 생각하시지 말고, 장애인에게 위로가 되는 웃음을 주세요. 비장애인에게는 혹독하고 썰렁하고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되시더라도 그냥 하세요. 그동안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의 ‘존재’ 자체가 위로였으니 당해도 싸요. 그렇게 함께 웃어야 정말 웃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