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오나라의 수도였던 쑤저우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중국인들의 생각으로는 ‘금방’인 거리다. 질주하는 버스 차창 밖으로 농촌의 풍경이 보인다. 띄엄띄엄 집들이 있고,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산은커녕 조그만 언덕 같은 것도 없다. 주변에 황산이 있다는 표지는 있지만 잘 믿기지 않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쑤저우에 도착하니 대도시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밀조밀한 한국의 풍경과는 다르다.
상하이의 외탄 지역에는 근대에 세워진 서양식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당시를 다룬 영화 촬영에서 늘 이용하는 건물들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황비홍>에서 본 것도 같다. 외탄에서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보이는 곳은, 푸동이라는 신흥 개발지역이다. 외탄을 포함한 포서 지역이 과거 상하이의 영광을 간직한 곳이라면, 푸동은 지금 아시아의 금융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상하이의 위업을 상징한다. 270m가 넘는 동방명주탑을 필두로 거대한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세계 각국 은행의 아시아 지점이 속속 입주했고, 사무실 비용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허허벌판이었던 푸동 지역은 단 10년 만에 첨단의 신도시로 성장했다. 외탄에서 푸동을 바라보면, 시간 혹은 역사라는 것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거대한 시간 속에서 딸려가고 있다.
중국 대륙을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갔을 때의 느낌과는 현저히 달랐다. 동구권이 완전히 무너진 뒤에도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곳. 여전히 공산당의 깃발이 난무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자본주의의 룰로 움직이는 곳. 중국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혼재된 기묘한 곳이었다. 발 달린 것은 책상 이외에 모두 식재료로 쓰인다는 농담처럼, 중국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국 스타일로, 자신들의 원칙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실리를 중시한다는 중국인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넓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든다. 세상이 넓지만,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제각각이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건 개발 독재의 힘이라고도 한다. 역사적 경험에서 알고 있듯이 가장 효율성이 높은 것은, 독재다. 바보가 독재자라면 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겠지만, 수완가이거나 통찰력이 있는 독재자의 빠른 판단과 결정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독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효율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게 또 인간이기에, 역사는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것이다.
중국의 멋진 풍경과 상하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나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이고,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거기에 뭔가를, 이를테면 한국을 비교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덕과 밭, 집들이 한데 어울린 풍경이 펼쳐졌다. 그것도 좋았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단칼로 가를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좋고 나쁘고는, 단지 취향일 뿐이다. 누구는 아이슬란드가 좋고, 누구는 남국의 해변이 좋을 수도 있다.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보면서 따라할 수도 있고, 그냥 우리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사회주의가 끝장난 것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미래의 희망을 걸 만한 경제체제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면? 그냥 가보는 거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단호하게. 아직 믿음이 없다면, 길이 열리는 대로, 순리에 맞게 그냥 앞으로만 가보는 거다. 돌아갈 길도, 골목길과 샛길도 숱하게 있는 곳이 세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