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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데로 임하소서, <서울독립영화제 2004 수상작>
ibuti 2005-06-17

하나, 지난해 10월에 <서울독립영화제 2003 수상작> DVD의 리뷰를 쓴 데 이어 <2004 수상작> DVD를 받았다. 대상 수상작을 비교하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빵과 우유>의 남자가 삶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해치려 했다면, <배고픈 하루>의 남자는 삶을 위해 타인의 몸을 해치려 한다. 그러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다만 힘들게 사는 이들을 지지하고 함께하려는 누군가가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둘, 얼마 전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의 DVD를 제작했다. 작품들의 뛰어난 외양을 보면서 과거 열악했던 제작환경이 많이 개선됐다고 짐작했는데, 서울독립영화제 참가작들을 보니 전체적인 독립영화 제작환경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여전히 힘들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셋, 지난주엔 독립영화 DVD의 제작과 관련하여 피심사인 자격으로 영화진흥위원회에 가게 됐다. 어떻게 제작하고 배급할 거냐는 첫 물음은 예상한 것이었는데도 목소리만 떨릴 뿐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관객에게 소구하기 힘든 현실이 머리 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넷, 지난해 11월엔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프랑스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만났다. 유독 한국에서 홈비디오 시장이 몰락한 이유가 궁금하다던 그들은 혹시 한국 사람들이 다른 문화활동, 그중에서도 독서에 빠져 사냐고 물었다. 실소가 나왔다. 큰 단위의 극장 관객은 홈비디오로 오면서 천 단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그나마 비상업적인 영화의 경우 백 단위를 채우기 힘든 게 현실이다. 다섯, 물어보자. 지금 현실이 무척 만족스럽고, 바뀔 게 없다고 생각하는지. 안 그렇다면 왜 현실에 안주하는 영화에 다들 그렇게 몰려다니는지. 꿈꾸는 데 지칠 때도 됐다. 여섯, 다시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을 본다. 다섯 작품엔 죽음에 저항하는 희망, 버릴 수 없는 자존심, 권태에 대한 치유로서의 사랑, 처절하게 즐거운 유머, 눈물이 와락 쏟아지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있다. 작은 것들 아니냐고? 아니, 하나라도 없으면 우리가 죽어버릴 것들이다. <배고픈 하루>의 엔딩이 죽음이 아닌 찬란한 은총이었길 난 기원한다.

서울독립영화제 2004의 모토는 ‘Never Mind’였다. 난 ‘왜 저러고 사나’라고 빈정대기보다 ‘그가 어떻게 살까’, 염려하기로 했다. 신경 끄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굳이 만듦새를 따지고 싶지 않은 DVD다. 감독의 인터뷰같이 꼭 필요한 것만 깔끔하게 담아놓은 이 DVD를 오래도록 간직하려 한다. 두 번째 디스크는 <KBS 독립영화관>에서 방영된 이른바 ‘스타급’ 단편영화 다섯을 부록 삼아 수록하고 있다. 이 또한 필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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