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미스터 큐> <명랑소녀성공기> 등을 히트시키며 트렌디드라마의 대명사로 군림해온 장기홍 PD가 돌아왔다. 지난해 5월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를 끝으로 휴식기에 들어갔던 그가 1년 만에 선보인 작품은 <돌아온 싱글>(김순덕 극본·장기홍, 진석규 연출). 이혼 혹은 사별을 이유로 다시 혼자가 된 30, 40대 싱글들의 사랑 이야기다. 평소 “30, 40대를 위한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는 장 PD는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풋풋한 ‘늙은 소년, 소녀’들의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사랑에 대한 그들의 속내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혼한 남녀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돌아온 싱글>은 생각처럼 칙칙하지 않다. 오히려 20대의 트렌디드라마를 보는 듯 밝고 경쾌하다. “요즘처럼 이혼이 급증하는 추세에 그들이 부정적으로만 그려지는 것이 되레 의문”이라는 장 PD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그런 이미지를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이다. 그의 말대로 그간 이혼녀 혹은 이혼남이라는 소재는 아주 무겁고 심각하게 다뤄진 것이 사실이다. 현재 방영 중인 <꽃보다 여자>처럼 세상 모든 짐을 안은 양 우울하거나, <두번째 프러포즈>처럼 다가오는 남자를 애써 거부하는, 일상적인 사회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장치로 등장했다. 이에 대해 장 PD는 “주위에 이혼한 사람들을 봐도 드라마처럼 그렇게 심각한 경우는 드물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이 드라마가 오히려 현실적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정답’일지라도 이혼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나 아직까진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이혼녀, 이혼남에, 그것도 ‘두 번째’ 사랑을 ‘쿨’하게 찾아다닌다는 설정은 민감한 사안을 너무 가볍게 다룬 게 아니냐는 비난의 소지가 다분하다. 장 PD 역시 “현실성과 재미를 함께 생각해야 하니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혼을 조장할 것’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우리 드라마는 이혼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 이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라고 하는 그는 “이미 자신의 행보를 결정한 사람들이 새로운 사랑을 어떻게 찾아가느냐에 초점을 맞출 뿐, 이혼 때문에 고민하는 칙칙한 부분들은 애초에 배제됐다”며 “오히려 그들이 보고 힘을 낼 수 있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PD의 말처럼 <돌아온 싱글>은 이미 이혼을 했거나 혹은 하려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드라마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하느냐에 달려 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리얼한 에피소드만으로 노처녀들의 심금을 울렸듯, <불량주부>가 ‘노는 남편, 일하는 아내’라는 무거운 주제를 코믹하면서도 메시지 있게 담아내 주부들을 공략했듯 이혼한 남녀를 그릴 이 드라마 역시 공감대 형성이 관건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트렌디드라마라곤 하지만 소재가 소재인 만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미화시키지도 왜곡시키지도 않은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고 있다”는 장 PD 역시 “혹시 잘못된 표현으로 상처받을지 모를 이들을 위해 신중하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찾아갈 계획”이라고 조심스러움을 내비쳤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30대 여자작가들은 물론, 실제 ‘돌아온 싱글’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등 현실성을 담아내기 위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 등장하는 환경설정이나, 에피소드의 상당수가 그런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게 제작진의 이야기다.
이는 등장인물 설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돌아온 싱글>의 대부분의 캐릭터는 실제 이혼한, 그리고 이혼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완성됐다. 특히, 미국 MBA 출신으로 미국 여자와 결혼했다 3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이혼한 이민호(김성민)와 사랑하는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정금주(김지호), 조건보고 결혼했으나 남편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일부러 ‘불임’이라 속이고 이혼하는 강혜란(조미령), 그리고 사업을 한답시고 시댁뿐 아니라 친정 재산까지 말아먹은 남편이 미워 이혼한 박현금(정선경)까지 실제 우리가 들었거나 경험했던 일들이 등장인물의 사연으로 설정되어 마치 내 이야기인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캐스팅 과정 역시 이런 현실적인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다는 지침 아래 이루어졌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나 <불량주부>처럼 실제 경험한 배우는 아니더라도 나이와 성향 등을 파악해 최대한 맞추려 했다는 게 제작진의 이야기다.
이에 대한 출연자들의 각오 또한 남다르다.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출연을 결심했다는 김지호는 “지금껏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다룬 드라마는 너무 부정적이거나 어둡게 이들을 그려왔다”며 “금주를 통해 그분들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고, 김성민으로 이름까지 바꾸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김성택 역시 “무거운 소재지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행복한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정선경, 손현주, 박광정 등도 ‘30, 40대를 위한 트렌디드라마’에 ‘만사’ 제쳐두고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뭔가 해낼 것 같은 이 ‘돌아온 싱글’들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삼순’이다. 지난 6월1일 첫 방송돼 방송 3회분 만에 시청률 30%에 육박한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 같은 시간대에 편성돼 있다. 물론 장 PD는 “시청률보단 메시지 전달”이라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관록의 ‘장기홍 PD’인 만큼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일 첫회 시청률은 9.7%(TNS 미디어코리아)로 <내 이름은 김삼순>에 못 미쳤지만 그나마 순조롭게 출발했고 시청자 게시판에도 “기대된다”, “좋은 시도”라는 반응 일색이다.
삼순이라는 ‘노처녀’가 버티고 있는 수·목 시간대, ‘돌아온 싱글’들이 얼마만큼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지 시청률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