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일 <씨네21> 창간 10주년 특강 ‘한국영화의 현재를 묻다’가 강의장이었던 연세대 위당관에 미열을 남긴 채 끝을 맺었다. 마지막 주의 단상을 장악했던 인물은 봉준호 감독과 홍상수 감독이었다. 6월20일쯤부터 차기작 <괴물> 촬영에 돌입할 예정인 봉준호 감독은 원효대교 아래서 최종 헌팅을 진행하다가 강연장에 바로 도착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특유의 입담이 시작되면서 체력 또한 살아난 듯했다. 사회자인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와의 문답에 들어가기 앞서 그는 장장 40분에 걸쳐 영화에 입문한 뒤 겪었던 일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봉 감독의 예의 ‘비주얼’한 화법 덕분에 관객은 상체를 강단으로 기울일 정도로 집중한 채 경청하고 있었고, 오기민 대표는 “준비할 시간이 없어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었을 텐데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봉 감독의 이야기는 때때로 다른 곁가지로 빠져나가곤 했지만, 그 덕분에 내용은 오히려 풍부해졌다. 이어진 문답에서 그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는 원칙과 ‘장르와 한국 현실의 충돌을 만들어낸다’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히치콕 감독만큼이나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강연이 끝난 뒤 <괴물> 준비 때문에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그의 뒷덜미를 기나긴 사인 행렬이 붙잡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즉흥적인 재치에 탄성을 질렀던 청중은 이틀 뒤인 6월1일, 같은 자리에서 열린 홍상수 감독과의 만남에선 다들 최면상태에 빠져들었다. “홍상수 감독은 본래 강연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2시간 동안의 강연을 수락했는지 의문입니다”라는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설명이 있었고, 강연은 처음부터 문답으로 진행됐지만, 홍상수 감독은 예의 그 몽롱한 말투에 묻지도 않은 자신의 영화적 방법론을 알쏭달쏭 비유에 실어 우회적으로 전했다. 강연이 이뤄지는 동안 비가 쏟아진 터라 위당관 안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지만, 이내 홍 감독의 복화술에 제압당했다. 평소 여러 자리에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이지만, 이날 강연에선 감독이 여전히 품고 있는 창작의 비의들을 어떻게든 끄집어내려는 평론가의 집요함이 순간순간 엿보이기도 했다. 물론 사회자의 질문을 눙치는 홍 감독의 딴청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탓에 강의 뒤엔 “수요예술무대를 진행하는 김광민-이현우 커플을 보는 것 같았다”는 관전평도 나왔다. 평소 홍 감독이 술자리에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즐겨하는 것을 알았는지 한 청중은 궁금한 질문을 내놓는 대신 “술자리에 끼워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고, 홍 감독은 “그래요. 한잔 합시다”라는 말로 기꺼이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