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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의 러브레터’ 공개녹화 현장
김소민 2005-06-10

30분 전…대기실은 잠시 무료했다

지난 7일 서울 한국방송 공개홀에서 열린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공연에서 첫 초대가수인 ‘빅마마’ 가 노래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6시30분께 서울 한국방송 공개홀은 어슴푸레한 조명 빛에 싸여 고요했다. 곧 500여명 관객들의 환호와 고동치는 음악이 이 공간을 흔들 것이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녹화가 30분 뒤면 시작이다. 이날 아침부터 수십여명이 톱니바퀴 맞물려가듯 움직였다. 잠시 맞은 정적이다.

한국방송 2텔레비전 <윤도현의 러브레터>(금 밤 12시15분 방영)는 실력 있는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를 볼 수 있는 몇개 안되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폭과 음악전문프로그램의 깊이가 별개일까 만은 이를 두루 갖추기는 만만치 않다. 그런점에서 그 시간대 프로그램 가운데에선 시청률(5%)이 가장 높은 <윤도현…>은 꽤 잘나가고 있다.

아침부터 수십명이 톱니바퀴 맞물리듯…방송에서 두세곡 들려주려고 가수들은 하루 스케줄을 다 빼고 준비한다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 이날 첫번째 주자인 ‘빅마마’가 여유 있게 화음을 맞췄다. 코디들만 옷핀으로 어깨선을 잡아주느라 부산하다. 그 곁에 ‘윈디시티’ 5명이 무료한 듯 서로 지분거렸다. 오후 1~2시부터 리허설하고 대기 중이니 지루할 만하다. 신인인 모던 록그룹 ‘이지’ 맴버들은 카드 놀이와 팔 굽혀 펴기로 시간을 때웠다. 보컬 오진성(21)씨는 “라이브 공연은 많이 해봐서 그리 떨리지 않다”며 자신만만했다. 머리를 레게 식으로 땋은 이동원(21·기타)씨는 거울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떨려서 이러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선배격인 김도향씨와 왁스에겐 개인별 대기실이 배당됐다. 꽃분홍 모자를 쓴 김씨가 기타를 튕기며 목을 풀었다. “좀 떨렸으면 좋겠어.” 이 프로그램의 이동희(33)피디는 “방송에서 두세곡 들려주려고 가수들은 하루 스케줄을 다 빼고 준비한다”고 말했다.

“이거 마저 달고 가요~.” 구슬을 든 빅마마의 코디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이미 보라 빛 조명은 켜졌다. “브레이크 어웨이~.”(‘브레이크 어웨이’) 피디, 기술·음향·조명 감독 등 9명이 거대한 갖가지 기계 앞에 앉아 있는 무대 2층 부조정실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생방송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규모 공연인지라 모두 신경이 까칠해져 있다. 30여개 화면을 바라보는 이 피디가 “인, 컷”을 외치거나 그 옆에 바싹 다가앉은 신태은(52) 기술감독과 소곤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들의 호흡에 따라 카메라 6대는 관객석과 무대를 누비고 장면은 부드럽게 붙어 넘어간다.

한쪽엔 문용석(37) 음향감독이 우주선 조정기계같은 수많은 버튼들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72개 채널로 들어오는 소리들을 알맞게 섞는 중이다. 그는 “어차피 공연이 끝난 뒤 6시간에 걸쳐 다시 소리를 골라 시청자가 듣기 좋은 상태로 믹싱한다”며 “하지만 장비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그대로 방송해도 될 만큼 만들어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빅마마’에 이어 ‘윈디시티’가 라틴 리듬을 실어 나르자 강렬한 붉은빛 노란빛이 쏟아져 내렸다. 왁스가 ‘슬퍼지려 하기 전에’ 등 차분한 발라드를 부를 땐 별빛처럼 흘렀다. 이창근(54) 조명감독은 “녹화 2~3일 전에 노래를 여러 차례 듣고 분위기를 파악한 뒤 프로그램 해둔다”고 설명했다.

이날 무대에서 가장 큰 박수를 이끌어낸 건 윤도현씨와 대화 중 김도향씨가 부른 ‘항문을 조이자’였다. “지하철에서 쓸데없이 잡담 말고 다른 사람 모르게 명상을 하듯이 조용히 항문을 조이자.” ‘지그지그 작작’ 기타 소리에 맞춰 노래하면서 김씨도 가끔 피식 웃었다. “항문을 조이려면 그만큼 삶에 긴장감을 줘야 하거든요.”(김도향) “꼭 이런 거 진짜 해보는 분들 계세요.”(윤도현) “우하하하”(관객).

이럴 때 작가 이연(30)씨는 더 바빠진다. “80% 정도는 대화를 예상하고 있지만 가끔 대답이 엉뚱하게 나와 다음 질문이 이어지지 않거나 김도향씨처럼 말씀을 재밌게 해 길어지면 프롬프트에 오르는 질문을 즉석에서 빼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이지’가 무대에 올랐다. 대기실에선 자신만만했는데 ‘땡큐’라는 노래에서 꼬여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송을 많이 안 해봐서….” 다행히 보컬 오씨는 듣지 못했지만 부조정실 안에선 “아이씨” “뭐야” 등 짜증 섞인 뇌까림이 흘러나왔다. 3번째 시도 만에 저음과 고음을 자유롭게 오가며 매력적인 목소리가 제대로 뻗어 나왔다.

밤 10시30분 무대는 순식간에 뜯겨나갔다. 관객이야 추억을 안고 돌아갔지만 음향감독은 새벽 5시나 일을 털 것이다

밤 10시30분께 무대는 텅 비었을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뜯겨나갔다. 그 자리엔 다음날 녹화용 무대장치가 들어섰다. 관객이야 추억을 안고 돌아갔지만 음향감독은 새벽 5시나 돼야 일을 털 것이다. 이 피디는 다음 주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목요일부턴 가수 인터뷰하고 연습과정을 직접 보고 또 맞춰보고 콘티를 짜고 카메라팀 등과 협의하고… 그리고 다시 이 자리로 설 것이다. 이 피디는 “100명은 안되겠지만… 사실 모두 몇 명이 이 프로그램을 위해 일하는지 정확히 모를 만큼 소소한 일까지 누군가가 끊임없이 처리하고 있다”며 “이런 공연 일주일마다 하는 거 장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