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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30% 넘은 <굳세어라 금순아>… 며느리 역할 논쟁 화제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MBC 일일연속극 <굳세어라 금순아>가 시청률 30%의 고지를 넘으며 연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연출을 맡은 이대영 PD는 프로그램의 인기에 대해 “처음에는 금순이 캐릭터 자체가 튀어서였지만, 요즘에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맏며느리 이야기와 장기이식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뤄 호평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굳세어라 금순아> 인기의 8할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금순(한혜진)의 좌충우돌기 덕분임에는 틀림없지만, 지금 우리가 이 드라마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맏며느리 성란(김서형) 때문에 시작된 ‘며느리 역할 논쟁’이 그것.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성란이 시집오면서부터 고부갈등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일찍 퇴근한 성란이 밥은 해놓지 않고 요가를 한 지난 5월24일 방송분에서부터였다. 시어머니 정심(김자옥)이 “너는 저녁 때 집에 와서 아무도 없으면 일단 식구들 저녁은 있나 그것부터 확인하고 밥이 없으면 밥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니?”라고 화를 낸 데 대해 성란이 “집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고, 늦을 땐 늦는 사람이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퇴근해서 집에 쉬러 온 게 아니라 꼭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에요”라고 대답한 것이 화근.

이날 방송이 나간 뒤 <굳세어라 금순아> 홈페이지에는 400여건의 글이 올라오며 성란의 태도에 찬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네티즌 김양희씨는 시어머니 앞에서도 자기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성란에 대해 “성란이가 딸이었다고 해도 그랬을까요? 일하고 지쳐서 퇴근한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밥해라’라고 하는 엄마가 있을까요? 만약 우리 엄마라면 ‘모처럼 일찍 들어왔으니 밥 맛있게 차려줄게. 많이 먹고 푹 쉬어라’ 하셨을 거예요. 시어머니가 성란이를 딸처럼 생각해서 조금만 맘을 넓게 가졌더라면 성란이도 미안해서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 김선주씨는 “생활비를 모두 책임져왔던 아버지는 가사일을 했던가. 그런데 성란이가 생활비를 모두 책임지고 도우미 아줌마 쓰겠다는데 뭐가 불만인가. 여자, 며느리는 부려먹어야 속시원한 건가”라며 여전히 80년대를 걷고 있는 드라마 속 여성의 역할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물론 시어머니에게 자기 할 말은 기어이 하고야마는 성란의 당돌한 태도를 나무라는 이들도 있다. “시집을 왔으면 최소한의 며느리 노릇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시댁 가풍에 익숙해지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성란의 태도는 곱게만 볼 수 없다. 가사에는 전혀 관여치 않겠다는 저 발칙한 태도가 과연 우리가 바라고 있는 며느리상인가”(이상은), “능력이 돼 식기세척기 사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틀렸다는 점이다. 먼저 어른들께 의논하는 것이 좋지 않았나”(이진영) 등.

사실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성란의 태도는 그 자체만을 두고 보면 그리 잘못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란이 시청자들에게 큰 원성을 사게 된 것은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는 주인공 금순과 비교돼서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피할 수 없는 드라마적 장치”라며 “하지만 성란과 정심의 갈등을 길게 끌 생각은 없다. 어느 순간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데 제작진의 이런 설명이 <굳세어라 금순아>의 미래를 더욱 개운치 않게 한다. 성란에게는 ‘이혼’이라는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다. 성란의 결혼식장에서 정심이 “이혼한 며느리 맞는 부모 심정은 얼마나 찢어질까. 큰 결심했네”라는 얘기를 들은 것은 이후 있을 폭풍에 대한 복선이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니 지금은 이토록 당당한 성란이 이혼문제로 고초를 겪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역시 “드라마의 재미”라는 이 PD의 이야기는 고부간의 타협이 약점을 가진 성란이 결국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양보해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드는 데 동참하는 선에서 정리되는 것은 아닐지 불안케 한다. 시대가 바뀌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바뀜에도 가정이란 곳은 여전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 우울한 결론은 “성란이라고 밉보이고 싶어 그러겠어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인물인 만큼 예전에 ‘예, 예’ 하며 살던 것이 후회돼 그렇게 솔직해진 것”이라는 배우 김서형의 해석이나, “금순이 시댁문제를 좀더 발전적으로 풀었으면 좋겠어요. 집안일을 여자의 의무인 양 그리기보다는 힘든 가사일을 남녀노소 능력에 맞게 분담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말이죠”(네티즌 최혜정) 등의 대안을 내놓은 네티즌들의 바람을 처참히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정선 작가는 “성란과 정심의 갈등은 입장 차이일 뿐”이라며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시어머니도 성란이 일하느라 고생하는 것을 보고 며느리를 배려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란을 결코 악역으로 그릴 의도가 없었다는 작가의 말에는 아직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는 극중 성란의 대사를 보면 좀더 믿음이 간다.

“저 놀다온 거 아니잖아요. 저 일하다 왔어요. 이 사람이랑 똑같이 일했고, 더구나 저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요. 늘 머릿속이 회사일로 터져나가요. 퇴근을 했다고 해서 퇴근을 한 게 아니에요.” “저는 어머니, 밥해 먹으려고 이 사람이랑 결혼한 게 아니에요.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한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 자꾸 이렇게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닦달하시고 몰아세우시면 저는 불행해질 것 같아요.”

<굳세어라 금순아>로 시작된 ‘일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의미있는 일이다. 커리어우먼에게 ‘슈퍼우먼’이 되길 강요하는 가족드라마에서 성란의 “나는 슈퍼우먼이 아니다”라는 말은 분명 큰 반항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굳세어라 금순아>가 행복하게 살 권리는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것임을 일깨워주길 바란다.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과 봉사를 제물로 삼은 ‘행복한 가정’은 21세기에는 더이상 의미없음도 더불어 알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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