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사교무도장의 추억
어릴 적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독서실이 있었는데, 그 곳3층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사교무도장’이란 것이 위치해 있었다 (공부하는 아이들 머리 위에서 춤추고 있는 어른들라니!). 전면으로 까맣게 코팅한 유리 위에 커다랗게 파여진 ‘사교무도’라는 글씨는 마치 타락으로 이끄는 지옥의 문구처럼 보였고, 어쩌다 장바구니를 끼고 홀연히 3층으로 사라져가는 동네 아줌마들의 뒷모습을 볼라치면 ‘말세군… ’ 하며 끌끌 혀를 차곤 했다. “처음 본 남자 품에 얼싸 안겨” 춤을 출 것이 분명한 그녀들이 어쩐지 방정치 못한 여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 ‘사교무도’ 붐은 단순히 우리 동네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불거져 나왔던 것 같다. 한참 중동으로, 미국으로 돈 벌러 나간 ‘기러기 아빠’들이 늘어난 때기도 했으니 과부 아닌 과부가 되었던 아줌마들에게는 손가락이 부러지게,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안아주는 사내의 품이 얼마나 그리웠으랴. 내부사정이 어쨌던 간에 한동안 코미디에서는 “누님, 가정을 버리세요” 라는 가정 파괴적인 유행어로 그 ‘제비’ 아저씨들과 춤바람이 나버린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희화화해서 보여주기도 했고, 9시 뉴스에도 가정을 버리신 누님들이 인생까지 버린 케이스들을 앞 다투어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춤을 춘다는 건 경박한 짓, 춤을 추는 사람들은 노는 애들이나 바람 난 아줌마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서 우리 모두는 커왔다.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나 ‘아람단’ 같이 돈 드는 방과 후 활동을 하지 않고서야 “밀과 보리가 자라네…” 같은 노래에 맞추어 ‘건전한’ 포크댄스를 배울 기회조차 없었고, 중, 고등학교 때 춤추러 다니는 아이들은 99% ‘날라리’라고 규정지어졌다. 대학에 와서도 나이트에 들락날락 거리는 친구들의 목적이 ‘춤’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의 삶에서 춤이란 군무에 가까운 마스게임에 착출 당해 뙤약볕에서 땀을 폭포처럼 흘리거나, “오늘 물은 어떤가” 눈동자만 굴리는 나이트 클럽 춤이 고작이었다. 춤에 미쳐, 음악에 취해, 파트너의 눈을 빨아먹을 듯 바라보며 추는 그런 정열적인 춤이란 건, 평생 춰 본적도, 아니 춰 볼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요즘 뉴욕을 조용히 그러나 ‘미치도록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편의 영화는 바로 <매드 핫 볼룸>(Mad Hot Ballroom)이라는 초등학교 볼룸댄스 경연대회를 둘러싼 다큐멘터리다. 미국의 P.S.(공립초등학교-Public School)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무료로 볼륨댄스 수업을 시행하고 있다. 9.11이전엔 겨우 2개의 공립초등학교에서 시행되었던 이 수업은 현재 60개 이상의 학교에서 채택하게 되었고, 전체 뉴욕주의 볼룸댄스 경연대회는 해를 거듭하며 그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들 중 감독이 포커스를 맞춘 곳은 바로 다민족이 섞여있는 맨하탄 트라이베카의 P.S.150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2세들로 구성된 워싱턴하이츠의 P.S.115 그리고 아시아계와 이탈리아계 아이들이 대부분인 브룩클린의 P.S.112이다.
눈 내리는 겨울, 처음으로 어색하게 탱고스탭을 배우고 메렝게의 리듬에 쑥스럽게 몸을 흔들던 ‘동네 꼬마녀석들’ 은 봄이 지나고 더운 여름으로 바뀌는 동안 어느덧 ‘작은 신사숙녀들’로 변모해 간다. 파트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바닥만 쳐다보던 아이들의 눈에는 어느덧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기운이 자리잡는다. 그렇게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충실하게 따르는 카메라는, 단순히 경쟁을 위한 춤 연습과정만을 담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하교를 하며 소년, 소녀들의 솔직한 대화 사이로 파고든다.
“12살이 되면 더 많은 자유가 주어 질 텐데.” 하며 한숨짓는 11살의 허무에 귀를 기울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에 관해 함께 투덜댄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고민을, 결혼과 진로에 대한 포부와 꿈들을 감싸 안는다. “춤을 배우고 싶으면 춤을 배우고 음악을 배우고 싶으면 언제라도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부유한 사립학교 아이들이 아니라 “대부분 편모, 편부, 혹은 조부모나 친척 손에 키워지는” 궁핍한 이민자들의 아이들이 춤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화려해만 보이는 마천루의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진짜 거리, 퀸즈와 브룩클린과 할렘과 맨하탄의 거리풍경을, 그 다양한 근경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 하나 하나의 얼굴이 모이고, 거리 하나 하나의 풍경이 모이는 이 다큐멘터리는 뉴욕의 화장기 없는 정직한 초상을 그려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2시간 넘는 이 긴 다큐멘터리를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건 ‘춤’ 과 ‘리듬’이다. 아메리카의 신나는 스윙이, 쿠바의 감칠 맛나는 룸바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쫀득쫀득한 메렝게가, 아르헨티나의 우아한 탱고가 흐르면, 아이들은 유리알 같은 두 눈을 마주하고, 고사리 같은 손을 부여잡고, 밥공기 같이 작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춘다. 그리고 그 작은 신사, 숙녀들의 스탭을 따라, 그 자신만만한 시선을 따라 관객들의 마음도 어느새 아르헨티나로, 쿠바로 리듬의 여행을 떠난다.
‘나이트 죽순이들’ 역시 ‘부킹’에 미친 게 아니라 춤에 미쳤던 게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쉘 위 댄스>의 스기야마처럼 홀로 어설픈 스텝을 밟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동네 YMCA에 볼룸댄스 클래스가 있는지를 체크해 보고 있는데, 같이 영화를 본 친구가 전화를 해서 “빨리 춤을 배우러 가자”고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떠든다. 가을에 뉴욕을 떠나 쿠바로 가면 반드시 ‘룸바’를 배우겠노라고, 강습료를 벌려면 그 전에 게으름 안 피우고 돈을 모아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 미쳤군. 의심할 필요도 없다. 바람이 난 게 분명하다. 춤.바.람.
그 일본 샐러리맨을 무도학원으로 이끈 건 무료한 직장생활과 창가의 춤추는 여인이었지만, 그를 끝까지 무도장에 남게 했던 건 춤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어쩌면 그 때 그 아줌마들은 ‘제비 아저씨들’을 사랑했던 게 아니라 ‘춤’을 사랑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 때 그 ‘나이트 죽순이들’ 역시 ‘부킹’에 미친 게 아니라 춤에 미쳤던 게 아니었을까.
개도 안 걸린다는 지독한 오뉴월감기에 걸려 도둑맞듯 5월 한 달을 침대에서 보내고 나니 벌써 6월이 왔다. 이제 감기약을 삼키는 대신 신나게 이를 닦으며, 즐겁게 샌드위치를 만들며, 한가롭게 공원을 걸으며, 입 속으로 박자를 센다. 나도 모르게 룸바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아무도 모르게 몸을 흔들어 본다. “T-A-N,G.O, 티- 에이- 엔,지.오. 탱고!” 춤을 출 수 있는 건강한 육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끼는 순간 그렇게 이 도시에는 여름이 왔다.
<매드 핫 볼룸> 예고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