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사들은 꿈을 먹고산다. 먼지 마시고, 소음을 들어도 그들의 생기와 열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면 또다시 나타나 거리를 생기있게 활보한다. 지나쳐도 뭐라고 하지 않고, 무시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거리의 악사들은 잠시 마음 내줄 몇 사람이면 족하다. 아니, 아무도 없으면 또 어떠랴. 자신의 소리를 들어줄 거리가 있는데. 요즘은 좀처럼 찾기 어렵지만 서울에도 그런 거리의 악사들이 남아 있다. 죽은 거리에 공짜로 숨결을 불어넣는 이들은 모두들 행복하다고 말한다. 폼나는 무대가 없어도, 번쩍이는 의상이 없어도, 값비싼 악기가 없어도, 대규모 관객이 없어도 그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거리에서 행복감을 충전하고, 거리에 다시 발산한다. 인사동, 대학로, 서대문, 사당역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들을 불러모았으니 잠시, 멈춰서서 그들의 행복한 사연을 들어보시길.
“한번 시작하면 30~40곡씩 해”
인사동의 아코디언 연주가_이호열
“인사동? 세계적인 거리니까 여기로 오는 거지.” 법명이 원각(圓覺)선사인 이호열씨는 ‘인사동 돌부처’라 부를 만하다. 거리 연주를 시작한 건 5년밖에 안 됐지만 이곳만을 고집하고 있어 다른 뜨내기 악사들보다 알아보는 이가 더 많다. 그래서인가 “내가 하나님이다!” 청하지 않은 거리의 친구들까지 친한 척한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하늘에 삿대질하는 이들이 연주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는 성내지 않는다. “돈 달라고 하면 보시라고 생각하고 1만원짜리 쥐어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연주를 할 뿐이다. “내 노래 듣겠다고 서 있을 필요는 없어. 저 사람 항상 저기서 노래 하는구나 하면 되는 거야. 그 자리에서 언제나 빛나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태양처럼 말이지.” 꼭지 비튼 수도처럼 콸콸콸 계속되는 그의 연주는 신기할 정도다. 도대체 언제 멈춰 서는 것일까. “한번 시작하면 30∼40곡씩 해. 끊으면 안 된다고. 흐름을 타야 하거든. 계속 가야 해. 그래야 소리가 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귀에 들어가.”
연주를 ‘중생에 대한 봉사’라고 말하는 그는 알고 보니 20년 넘게 산사 생활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해서 태백산에 들어가 수련을 좀 했지. 의술, 무예 모두 뛰어난 청운대사 아래 있었는데, 수련 도중에 스승이 가끔 휴가를 줬어. 그래서 도시에 나왔는데 그때마다 음악에 끌리더라고.” 평일에는 기 수련과 봉술 시연으로 보낸다는 그는 “명곡, 가요, 재즈 못하는 게 없다”며 탱고 <라 쿰파르시타>부터 패티 김의 <사월의 노래>(4월이 가면??)까지 즉석 연주를 해보인다. 아코디언 말고도 그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퉁소, 단소, 북, 색소폰. “가장 대중적이어서 가장 사랑한다”는 아코디언 연주는 프랑스 사람에게 단소를 가르쳐주고 배웠단다.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어서 좋은 건 싫증나면 내치고 딴 걸 연주할 수 있다”는 그는 비오는 날엔 색소폰이 제격이라면서 한 가지 비밀을 일러준다. “내가 왜 선글라스 쓰는 줄 알아? 무술을 해서 눈매가 무섭거든. 그래서 연주할 때는 항상 써.”
“남들 웃기고 싶어 환장한 사람”
마로니에의 돈키호테_윤효상
예수 강론을 들으려는 신도들이 저러했을까. 음료수 자동판매기 위에 올라가 들국화의 <돌고 돌고 돌고>를 부르던 한 중년 남자가 문예회관 앞을 가리키며 “내 뒤를 따르라!” 하니, 200여명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동한다. “남들 웃기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윤효상씨는 가진 것이라곤 갈라진 육성과 낡은 기타 하나가 전부지만 군중을 몰고 다니는 대학로의 스타다. 너무 웃어 배아프게 만들 정도로 재담꾼인 그는 정말이지 10초에 한번씩 좌중을 자지러지게 만든다. 아이스크림 나눠 먹는 연인들이 공연 전부터 그를 붙잡고 “아저씨, 언제 시작해요?”라고 귀찮게 물어대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다. “노래 한곡 하겠습니다. 제가 만든 노래인데 노래 같진 않습니다. 제목도 안 정했어요. 박수 받을 자격이 없는 노랩니다. 그냥 들으세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저기 박수 치지 말라고 그랬지! 여기 한번 올라서볼래? 맨 정신에 얼마나 쪽팔린지 알아? 엉뚱하게 박수 친 저 아가씨에게 사오정 송을 바칩니다. ‘오정아∼오정아∼뭐하니∼밥 먹는다∼무슨 반찬∼밥 먹는다∼죽었니 살았니∼밥 먹는다∼’.” 한꺼번에 쏟아진 웃음소리에 공원의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그 꽁지에 대고 그는 “자, 하늘을 보십시오. 우리의 쇼를 축하하는 비둘기 군무입니다”라며 능청을 떤다.
직장 그만두고 집에서 놀던 백수 시절, 기타 하나로 좌중을 휘어잡는 친구가 부러워 깍두기로 공연에 참가했던 그가 거리 공연을 시작한 지 벌써 17년. 자작곡 지하철 송을 부르고 꽥꽥이 게임을 벌이며 관객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는 그의 솜씨는 누구에게 배웠다기보다 세월이 일러준 것이다. 유명세 덕에 8년 전부터 <열린 음악회>의 오프닝 공연과 각종 행사의 사회를 맡고 있지만, 그는 주말에도 가족과 함께 쉬지 않고 혼자서 대학로에 나온다. “소음이나 다름없는 이벤트식 행사들로 대학로가 병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공원에선 시민들이 이것도 맛보고 저것도 맛보고 그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IMF 시절, 대기업 사옥 앞에서 기습 공연을 벌이기도 했던 그를 마로니에의 돈키호테라 하면 어떨까. 앰프를 앞세운 대형 이벤트 유치가 문화행사의 전부라는 거대한 착각에 맞서 그는 언제나 싸울 것이라고 했다.
“여행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
도시인을 유혹하는 집시밴드_캐비닛 싱얼롱즈
화요일 오후 2시. 도시인의 신체가 춘곤으로 흐느적거릴 시간이다. 대기업 사옥들이 사방으로 늘어선 서대문 사거리에 집시밴드 캐비닛 싱얼롱즈(The Cabinet Singalongs)가 등장하더니 예기치 않은 합주를 들려준다. 넥타이와 하이힐에 감금당한 어깨죽지와 발가락을 꿈틀거리게 할 만큼 매혹적인 사이렌이다. 스윙에서 왈츠로, 왈츠에서 폴카로, 리듬을 수시로 옮겨타며 도시인을 유혹하는 캐비닛 싱얼롱즈는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밴드다. “우리도 음악 할 줄 몰랐어요.” 행렬(트럼펫+우크렐레-하와이안 기타), 피망(아코디언), 우드(기타), 허니(탬버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들은 “오다가다 만난” 사이. 디자인, 미술, 무용, 신문방송 등 전공은 다르지만 음악에 대한 공통 관심을 밑천 삼아 친교를 더해갔고, 2003년 광화문의 한 술집에서 늘어진 샐러리맨들을 보고 밴드 결성을 결심했다고. “그때는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장난으로 연습하고 그러던 때였는데. 거리의 사람들 보니까 왠지 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첫 공연 때는 낮부터 연주하다 무관심한 사람들 앞에서 뻘쭘해져서 아지트로 되돌아갔지만….”
홍익대, 일산 등지를 돌며 거리에 간이무대를 차리는 이들은 트로트 한 곡조 뽑아보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간청을 들어드리지 못해 항상 맘에 걸린다고. “저희가 잘 모르는 노래들이잖아요.” 이젠 꽤나 유명해져서 무대에도 종종 서지만, 경험이 많지 않아 봉변을 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한 행사에선 열성적인 관객에 마이크를 빼앗겨 공연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내려온 적도 있다. “여행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이들이 지금껏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떠나본 기억은 전주영화제 나들이가 전부. 하지만 낮에 벌인 음악 좌판 덕에 “따라오고 새로 만든 친구들 술값과 방값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곧 가요!” 이들은 며칠 동안 경남 산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지방 공연에 합류할 계획이다. 버스에 올라타라는 일행들의 독촉에 꾸물거리는 하늘을 뒤로 하고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에선 원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내지르는 젊음이 느껴진다.
“새로운 안데스 음악을 들려드립니다”
에콰도르에서 온 밴드_마라부
“저 사람들 어디서 왔어요?” “에콰도르요.” “아, 에콰….” 중년 부인은 여섯명의 흑인들이 어찌해서 이곳에 왔는지 궁금증이 덜 풀린 눈치다. 가슴을 쿵쾅거리는 붐바(la Bomba) 연주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주최쪽에서 쌓아놓은 판매용 CD를 만지작거린다. 마라부(MARABU)라는 이름의 이 생소한 밴드는 4월27일 한국을 방문, 한달 정도 체류하며 지하철 공연을 벌이고 있다. 기획사인 안데스 매니아 김세라 대표는 “새로운 안데스 음악을 소개하고 싶어” 지난번 에콰도르 방문 때 오디션을 치렀고, 아프리카 민속음악에 뿌리를 둔 “정 많은 소리”에 끌려 마라부를 초청했다. 마라부 단원들은 모두 에콰도르에서 아프리카 이주민이 많이 거주한다는 초타 마을 출신이다. 16년 동안 마라부에서 활동해온 리더 루이스 비베로스는 “다들 유년 시절부터 함께 파티를 열고 연주하던 친구들끼리 모여서 만들었다”며 “우리가 하는 음악은 일종의 장난이나 놀이”라고 말한다. “삶과 유리되지 않은 소리가 가장 좋은 소리”라는 그가 8천여명의 주민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 집단 군무를 하는 2월의 꼬양귀 축제를 소개할 땐 입에서 침이 튀었다.
벌써 5번째 음반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지만 과학교사, 회사원, 학생 등 직업이 다 따로 있다고. 그래서 연습시간은 언제나 저녁이다. 가족들까지 끌어들여 정식 마라부 외에도 미니 마라부, 주니어 마라부 팀을 꾸리고 있단다.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는 레스테르는 주니어 마라부를 떼고 얼마 전 정식 마라부에 입단한 케이스다. 18살로 다른 멤버들과 서른살 가까이 차이난다고. “우리가 하는 음악은 가사도 그렇고 구체적이에요. 그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한달 가까이 체류해서인지 리더인 루이스 비베로스는 “역동적인” 한국이 맘에 쏙 든다며 “한국말도 많이 배웠고, 이제 한국 여자를 사랑하는 일만 남았네요”라고 농을 한다. ‘거룩한 아프리카의 새가 하늘로 끝없이 날아간다’는 뜻의 마라부의 빠르고 격렬한 리듬은 지금 지구 반대편 한국의 지하통로를 전염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