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수학, 아니 ‘산수’ 문제 하나. 111+1×2는?
초등학교 때 배운대로라면, 곱셈을 덧셈보다 먼저 해야 하므로 ‘1×2=2’가 되고 여기에 111을 더하니까 정답은 113. 하지만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일밤>(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선 달랐다. 지난 29일 저녁 방송된 이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상상원정대’에선 이 문제의 정답이 224였다.
제작진은 연산기호 순서에 따라 덧셈을 먼저한 뒤 곱셈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시더포인트’라는 놀이공원에서 개그맨 윤정수·이윤석·정형돈(이경규는 사전게임에서 이겨 제외) 등이 목재 궤도 위를 달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고서 산수 문제를 푸는 내용이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30일 오후 인터넷 게시판에 “산수 문제의 오답이 정답으로 방송에 나가게 된 것은 제작진의 실수이며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방송된 <한국방송>의 <도전 골든벨>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사람은 1923년 상해에서 일본 천황을 제거하기 위해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감행했습니다. 누구일까요?”라는 문제에, 제작진은 ‘윤봉길’을 정답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1923년이 아니라 1932년이다” “천황이 아니라 일왕이라 표현해야 맞으며 그에게 폭탄을 투척한 인물은 ‘이봉창’이다”라는 시청자 지적이 쏟아졌다. 제작진은 부끄럽게 고개를 떨궈야했다.
<일밤>은 오답 소동 뒤 코너 개편 요구로 번져
두 사례 모두 부주의한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고 제작진의 사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시청자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일밤>의 경우 새 코너인 ‘상상원정대’가 애초의 기획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겹쳐지면서 <일밤>의 최근 개편에 대한 비판으로 번진 것이다. 어찌보면 퀴즈 프로그램에서의 오답이 더 치명적일 수도 있을 텐데 <일밤>에 더 혹평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오락프로그램에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옥에 티’로 끝날 수 있었던 문제가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제작진이 <일밤> 홈페이지에서 밝힌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이렇다. “`상상원정대'는 기존의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프로그램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이기 위해 세계를 원정하며, 시청자들에게 각국의 기발한 아이디어의 다양한 정보와 상상력을 통한 새로운 고품격 재미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어렵게 생각되는 과학의 원리가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 하나로 생겨난 엄청난 경제적 가치 등도 함께 알아보는 뜻깊은 시간도 가져본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 코너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조승현씨는 “과학적 원리가 우리 생활에 어떻게 응용되는지 등을 설명하기보다는 연예인들의 과장된 몸짓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다니엘씨는 “차라리 프로그램의 의도를 ‘세계 각국의 놀이기구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을 연예인들이 체험하는 코너’라고 바꾸는 게 낫다”고 거들었다. 변도건씨는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때 연예인들을 외국에 보내 그 정도의 프로그램밖에 못 찍다니…”라며 혀를 찼다.
익살스럽게 후배 개그맨 속이는 이경규 행동도 비판의 도마에
제작진, “재미있게 만들려는 일종의 역할극” 반론
시청자들은 개그맨 이경규씨의 행동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꾸짖었다. 이씨는 놀이기구 타는 사람을 정하는 게임에서 항상 후배 개그맨들한테 속임수를 쓰거나 억지를 부려 ‘위기’를 모면해왔다. 이 날도 경사로를 내려오며 물을 튀기는 놀이기구 옆에서 물통에 물을 많이 받는 게임을 하면서, 미리 준비해 간 생수를 물통에 넣어 놀이기구를 타지 않았다. 남궁운평씨는 “방송경력이 제일 많은 이경규씨가 반칙과 잔머리로 일관하는 것이 재미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문제”라며 “가족시청 시간대에 이씨의 그런 행동이 아이들한테 재미로 친구들을 놀리고 속이는 버릇을 가르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지난 봄 <일밤> 개편 이후 프로그램 질이 더 떨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성준씨는 “<일밤> 역사상 이번 개편이 가장 실망스럽다”며 “개편한 지 얼마 안됐다고 유지할 생각만 하지 말고 재미든 감동이든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확 뜯어고치라”고 주문했다.
물론 게시판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상상력을 키우고 과학적 원리를 알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심은지) “`상상원정대' 보면 놀이기구를 타는 짜릿한 대리만족을 줍니다”(임아성) 등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이기구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후한 점수를 주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상상력·과학’이라는 프로그램의 애초 취지만 잘 유지하면 안방극장에 안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상상원정대' 강영선 프로듀서는 30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100년 상상시리즈 3편’ 기획 일정에 따라 2주전 ‘라이트형제 비행기 제작 체험’을 했고 지난주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 궤도 롤러코스터 체험을 한 것”이라며 “프로그램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규씨 행동에 대한 시청자의 비판과 관련해서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들려다보니 일종의 역할극을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