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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TV는 놀이기구다

공익성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

<올드보이>를 보면서 내가 했던 생각은 우습게도, 저런 감옥이면 있을 만하네, 였다. 침대에 목욕탕이 딸려 있고, 체력단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고, 무엇보다 TV가 있다. 케이블 채널만 나온다면, 그 안에 10년 넘게라도 있으라면 있을 수 있다. 만두만 먹으란 건 좀 고려해봐야겠지만, 그래도 별탈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보고, 오락프로 보고, 다큐멘터리 보고, 뉴스도 보다보면 시간은 금방 간다. 오대수의 비극적인 상황은 이해하지만, 하여튼 그런 잡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소리를 듣는다.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음악이 나오면 잠시 일을 멈추고 거기에 집중한다. 일에 집중하면 음악이 안 들린다. TV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일을 할 때는 소리가 다 이해되는 국내 프로그램을 주로 틀어놓게 된다. 뉴스건, 드라마건, 버라이어티 쇼건 상관없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일을 한다. 그러다 흥미가 생기면 TV를 본다.

흔히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른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종일 똑같은 프로그램만 반복해서 본다면 바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짓을 누가 할까. TV는 유용한 정보의 원천이자 놀이기구다. 그 정도면 된다. 프로그램 하나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을 필요도 없다. 어떤 건 정보를, 어떤 건 오락을, 어떤 건 감동을 주면 된다. 재미있으면서 공익성을 보장하고, 유용한 정보를 주면서도 시청률이 높기를 바라는 것은 참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락 프로를 좋아한다. ‘그래서’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하여튼 나는 연예인들이 나와서 찧고 까부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즐겨본다. 오락 프로의 본분은, 역시 즐거움이다. 멍청하다, 가학적이다, 신변잡기다 등의 비판이 아무리 쏟아져도 나는 그런 걸 즐겨본다. 연예인들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며 떠드는 것도 좋아한다. 그걸 다 믿을 필요는 없다. ‘리얼리티 쇼’라고 말하는 것들도 태반은 찌고 치는 고스톱인데, 버라이어티 쇼는 더욱더 당연한 것이다. 그들이 실제 그렇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그냥 사소한 쇼이고, 연기일 뿐이다. 그걸로 한순간을 즐겁게 해주면 그만이다. 이경규가 원래 성질이 욱하건 말건 상관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대단한 도전’에서처럼, 그런 캐릭터로 웃음을 주면 그만이다. 내가 그걸 보고 즐거워하면 된다. 아니면 채널을 돌리면 되고.

오락 프로그램이란 그런 것이다. 실컷 웃고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 물론 김영희 PD가 했던 <느낌표!>라든가 ‘러브하우스’ 등의 공익성 오락 프로도 좋다. 버라이어티 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기적의 도서관’이나 ‘러브하우스’, 최근 시작된 ‘D-day’ 등은 사회복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유익한 프로다.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모든 오락 프로그램이 그렇게 변하는 것은 싫다. 오락 프로를 교양이나 정보 등과 결합시키는 프로그램도 있어야 하지만, 순수하게 오락만 지향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전에 있었던 ‘쿵쿵따!’라든가 ‘대단한 도전’ 같은 것들.

뭐 사실 대부분의 버라이어티 쇼란 게 그렇긴 하다. 별다른 내용없이 그냥 노는 거다. 하지만 한때 ‘공익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오락 프로그램을 손댔던 모 방송사의 버라이어티 쇼는 정말 지루하고 참담한 오락물이었다. 그거야말로 전파 낭비이고, 위선이다. 한국사회는 쾌락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쾌락이 없는 삶이란, (성자가 아니라면) 사막이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생물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낱 심심풀이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