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현장이 점점 맛없어지고 있다. 재미는 물론 더 빨리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고 나를 포함한 영화잡지 기자들의(특히 사진기자들!) 시름은 점점 깊어가서 특단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는 한 곧 불치라는 진단을 받게 될 날이 머잖은 것 같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우리는 특별히 더 맛이 없었던 한 현장에서 영화잡지 사진기자들이 단체로 카메라를 거둘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태를 맞이했는데 카메라와 함께 펜도 그 손길을 거두어서 영화의 현장에 가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었다. 가끔 이런 일들이 개별적으로 있어오긴 했지만 최근 들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드디어 기자들의 단체 보이콧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상식을 넘어서는 무성의한 현장 공개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씨네21>을 11년째 만들어오며 무수한 매체환경의 변화를 겪어온 나이지만 적어도 영화현장 취재만큼은 옛날로 돌아가고픈 심정이다. 밤을 꼴딱꼴딱 새워가면서도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일체감을 느끼고 내가 취재한 영화의 개봉과 흥행을 지켜보며 뿌듯해하던 그런 기분이 너무 그립다. 그때는 그 영화가 마치 내 영화인 것 같은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 한번의 이벤트성으로 영화현장을 보고 오면 아무 느낌이 없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있던 애정마저 없어지기도 한다.
그 원흉은 여행사 패키지 상품처럼 변질되어가는 취재 형태에 있다. “모모 영화 취재 일일 참관단”이라 이름 붙여 마땅한 그런 취재 말이다. 다 함께 우르르 대형 버스에 나누어 타고 현장엘 가서 마치 관광 가이드인 양 기자들을 섬세히 안내해주는 영화 마케터들의 도움으로 휘∼휙 현장을 한번 보는 것 말이다. 물론 이런 취재를 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최소한 열 가지쯤은 있겠지만 말이다.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각종 매체들, 점점 위력을 더해가는 배우와 감독의 영향력(그들은 대부분 잦고 긴 현장공개를 원하지 않는다. 대부분 어떻게든 짧고 간단하게 끝내고 싶어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강하게 노출되어 영화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효과적으로 높이려는 마케팅 전략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다. 그렇게 심하게는 한번에 400여명의 기자들이 영화현장을 찾기도 하고 많은 인원 때문에 식당에서는 “자, 메뉴는 두 가지입니다. 비빔밥은 왼쪽으로 순두부는 오른쪽으로 서주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아직은 애정도 남아 있고 또 남에게 지기 싫은 프로정신 운운하며 버티어나가고 있지만 이제 그 한계에 온 것 같다. 우리 독자들도 더이상 TV 연예프로에서, 지하철 무가지에서, 컴퓨터만 켜면 유혹하는 선정적인 제목 밑에 딸려 있는 사진들에서 이미 너무나 많이 봐온 바로 그 사진이나 기사를 또다시 일주일 시간이 흐른 뒤 시네스코프 지면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비단 <씨네21>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만 나는 적어도 스포츠지나 온라인 매체와는 차별된, 조금은 더 깊이있고 내용있는 영화현장 기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다시 오늘을 회상하며 “그래도 그때 그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어. 단체로 버스 타고 꼭 수학여행 가는 기분도 들고. 버스에서 먹던 도시락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데…”, 뭐 이런 얘기를 할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