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평가 안끝난 최근세사 정면에서 최초로 다뤄 전두환 미화 논란 시청률 출렁 내레이션·다큐 기법 사용 캐릭터 카리스마 물타기 극 전개 ‘5·18’ 향해 치달아 ‘형식적 안배’ ‘정면 승부’ 어느쪽을 선택할까
드라마 <제5공화국>은 의미있는 시도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최근세사를 정면에서 다루는 최초의 작업이다. 게다가 극 중심에는 5공 권부의 핵심이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부분 생존해 있는 이들이다. 아직 5공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툼 속에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며, 이는 현실 정치와도 맞물려 있다. 그래서 <제5공화국>은 위험하다. ‘의미있는 시도’와 ‘위험함’은 서로 맞닿아있다. 5공에 비판적인 이들로부터 “전두환을 폼나게 그리고 있다”고 비난을 사는가 하면, 5공 인사들로부터도 “허무맹랑한 만화같다”는 쓴소리를 듣는다. 양쪽 모두 ‘역사 왜곡’이라고 외친다. 줄곧 상승하던 시청률은 7~8회 갑자기 주춤해졌다. <제5공화국>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률과 논란의 동반 변동?=지난달 23일 첫 방영 뒤, 상승하던 가구시청률이 14일부터 주춤해졌다. 11.0%에서 시작해 17.5%까지 올랐다가 다시 11.9%까지 떨어졌다. 이례적으로 40~50대 남성의 시청률은 9.6%와 11.8%로 높게 나오고 있으며, 10~50대가 3.2~10.2%로 다른 드라마보다 연령대별 시청률이 고른 편이다. 지역별 시청률은 대구(13.4%)와 부산(13.6%)이 높고 광주(11.6%)는 가장 낮게 나왔다. 연출진은 시청률의 하락을 ‘전두환 미화’ 논란에 따른 시청자들의 일시적인 기피 현상으로 보고 있다. 지역차는 <불멸의 이순신>이 광주에서 인기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공 정권의 최대 피해자들이 편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 큰 이유다.
시청률과 함께 논란도 출렁인다. ‘전두환 옹호론’이 똬리를 틀었다. 진원지는 ‘조직적인 댓글 도배’의 혐의마저 엿보이는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이다. ‘전두환 장군 만세’ 따위의 장난성 댓글을 비롯해, 심지어 ‘1조원을 해먹어도 내 배만 불려주면 훌륭한 지도자’라는 생각도 널렸다. “그때가 경제적으로 살기 좋았다”거나 “을지문덕, 계백 장군이 연상된다”는 식이다. 작전을 잘 짜서 게임에서 이기는 ‘마초 캐릭터’는 멋있게 보이기 십상이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으니 단호하고 강하게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5공 인사들은 “5공 세력을 권력에 눈 먼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한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제5공화국>의 줄타기는 당장 캐릭터 묘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안전 그물, 다큐 드라마??=<제5공화국>은 다큐 드라마를 표방했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며 ‘왜곡’과 ‘미화’ 논란 속에 조기 종영한 <영웅시대>와는 다른 길을 고른 것이다. 임태우 피디는 “5공은 태동해선 안 됐을 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대법원 판결문, 청문회 자료,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해 사건을 중심으로 대본을 만들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레이션과 다큐 기법을 곳곳에 사용하고 있다. 전두환 캐릭터에 카리스마와 매력이 세진다 싶을 때 내레이션과 실제 다큐 장면을 삽입하면서 물타기를 하는 식이다. 다큐적 요소는 이 드라마의 줄타기에서 일종의 안전그물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큐 형식을 취한다 해도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최근세의 역사 서술에서 객관화란 불가능에 가깝다. 김갑의 동국대 겸임교수(영화학)는 “사건 중심으로 그려도 ‘작가적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5공화국>의 주인공들은 내란죄·군사반란죄 등으로 무기징역 등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터라, 악인으로 밖에 평가할 도리가 없다. 사건 위주 다큐 드라마로 간다는 것은 <영웅시대>를 반면교사로 삼은 전략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매력인 캐릭터가 빠질 수 없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도 “드라마를 위해서는 주인공인 전두환의 행동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80년대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두환이 멋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제작진은 5·18이 나오면 이런 논란은 삽시간에 수그러들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럼에도 ‘형식적 안배’와 ‘정면 승부’ 가운데 한가지로 전략을 수정해야 할 시점이 됐다.
형식적 안배냐, 정면 승부냐?=인물의 카리스마를 적절히 이어감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은 끌면서 내레이션과 다큐 장면을 적절히 삽입해 균형을 잡는 것이 형식적 안배라면, 정면 승부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전두환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해내는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 기존 캐릭터 중심 드라마 보기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여전히 전두환을 오역할 가능성이 높다. 내레이션과 다큐 장면이 남발되면 극적 재미가 반감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정면 승부는 5공 주역들의 역공에 시달리며 명예훼손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처럼, 조금만 풍자하면 소송을 내고 막아서는 등 표현의 자유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고루한 명예감정 역시 <제5공화국>의 난관이다.
그러나 역사서가 아닌 드라마인 한 재해석과 왜곡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시무씨는 “작가나 제작주체는 나름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며 “사건과 인물에 대한 나름의 작가적 해석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의 교수는 “편견이나 자기집착이 가미돼선 안 되지만, 작가적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픽션을 팩트처럼 느끼게 하는 게 다른 드라마라면, 다큐 드라마는 팩트를 픽션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것 역시 다시 팩트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돼 어차피 왜곡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단 제작진은 정면 승부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5·18 부분 대본 작업을 마친 유정수 작가는 “광주를 둘러싼 전두환의 동선이 최초로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미화 논란이 사라질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다른 논란이 더욱 커질 것 같아 두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미 이런 정보를 입수했는지, 5공 인사들 쪽에서 소송 얘기가 흘러 나온다.
과연 전두환 캐릭터가 바뀔까, 그렇다면 보기만 해도 울분 터지는 악역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는 것도 가능할까. 한국 드라마에서 유례없는 시도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어떻게 이어가며 딜레마를 해결할지 궁금증이 늘어난다.
“5·18 전두환 움직임 방송되면 난리날 것”
유정수 ’제5공화국’ 작가
“이제야 한 시름 놨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15일 낮, 5·18 부분 대본 작업을 막 마친 <제5공화국>의 유정수(42) 작가다. 계획보다 1주일이 늦어졌다. 드라마에서 본격적으로 5·18을 다루는 것은 거의 처음이라, 작업이 쉬울 턱이 없었다.
처음엔 “전혀 겁이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5·18을 쓰고 나서 “이제야 두려움이 생겨난다”고 한다. “10번을 넘게 울었어요. 자료를 읽으면서 울고 대본을 쓰면서 또 눈물이 나더군요. 공수부대도 죽고 시민군도 죽고 다 죽었습니다. 광주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피해자였죠. 그해 누군가는 책상에 앉아 광주를 짓밟았어요. 그것도 대권을 향한 탐욕 때문에요…. 광주를 둘러싼 전두환의 동선이 드러날 테니, 방송이 나오면 난리가 날 겁니다.” 6월 초순께 15회부터 4부에 걸쳐 방영되는 5·18 부분은 다음주 광주 도청 앞 광장 등에서 촬영한다.
발포 명령을 전두환이 직접 내린 것으로 표현되느냐고 물었다. “청문회에서 ‘발포명령을 전두환이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과 같다’는 증언이 있다”고 답했다. 직접적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손으로 해는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발포명령 발뺌 손으로 하늘 가리는 꼴 독재와 고문이 좋다면 ‘전사모’ 만들라
곧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으론 온 힘이 빠져버렸지만, 마치고 나니 너무나 원통하고 아쉽고 그렇네요.” 5·18과 관련해서만 반년이 넘게 수백권의 자료를 조사하고, 타이핑한 자료도 200쪽이 넘는다. 너무 많이 조사했다. 대본 4회분에 모두 집어넣으려니 어려웠고, 다 반영하지 못해 분하다. 25년 전 ‘그날’, 광주의 울분이 느껴진다.
80년 그는 부산에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다. 광주는 봉쇄됐고, 신문과 방송은 신군부의 입 노릇에 바빴다. 그들에게 광주는 폭동의 현장이었으며, 시민은 폭도였다. 유 작가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 부산엔 일본 방송이 나왔던 터다. 불타는 광주를 볼 수 있었고 그의 아버지가 우리말로 옮기는 내용을 고스란히 전해 들었다. 그것이 그가 마주한 최초의 5·18이었다.
그는 “독재와 고문이 좋다면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라”고 했다. “쿠데타가 엉성해서야 성공할 수 있겠냐”며 미화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강변했다. “역사를 봐도 독재자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다 몰락했다”며 “이덕화씨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한다고 해도 냉철하게 본다면 나올 수 없는 논란”이라고 못박았다.
솔직히 드라마 시작 전 5공 인사도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요. ‘전두환이 언제부터 대통령 꿈을 꿨다는 거냐’고요. 그랬더니 그 양반이 ‘6월2일 국보위 현판식을 했으니 그 뒤에 생각하지 않았겠냐’고 하더군요. 더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2·12 이듬해 1월부터 시국수습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무슨 소립니까.”
할 이야기가 많지만, 드라마로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는 결의에 차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민주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뤘는지, 그 결과 우리 국민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될 겁니다. 80년 서울의 봄을 짓밟혔지만, 87년 6·10 항쟁으로 6·29를 끌어냈지만…. 슬펐던, 그래서 너무나도 아팠던 절망의 역사를 간직했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자유는 아시아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4년전부터 할까말까 고민
‘제5공화국’ 제작보고서 ‘의리의 돌쇠’ 장세동역 연기자 몰려
질곡의 5공화국이 드라마로 옮겨진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2003년 9월.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 피살사건을 시작으로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며 권력을 벼린 5공화국이 50부작(당시)에 걸쳐 고증된다는 게 소식의 알짬이었다. 하지만 과정이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4공화국에서 5공화국, 꼬박 10년= 문화방송이 1981년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2공화국(89년), 3공화국(93년)을 거쳐 4공화국(95년)으로까지, 티브이를 통해 거침없이 한국 근현대 권력사를 가로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모두 14년. 반면 4공화국에서 5공화국으로 넘어가는 데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제5공화국>의 신호균 책임프로듀서(시피)는 “피디들 기획회의에서 ‘5공화국’을 다루자는 의견이 4년 전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과 젊은 시청자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한 것. ‘팩션’(팩트+픽션)의 아킬레스건이다.
해, 말아? 3:3= ‘5공화국’을 극화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한 이는 <제4공화국>도 공동집필했었던 유정수 작가다. 2003년 <제5공화국>의 대본 가운데 4부를 미리 완성해 박종(엠비시프로덕션 사장) 당시 드라마국장을 설득했다. 하지만 문화방송이 <영웅시대> 후편으로 2005년 방영을 계획한 뒤, 본격 제작을 앞두고 임태우 피디에게 작품을 맡긴 게 지난해 느즈막한 9월께다. 그 전까지도 프로그램 편성 여부를 논의한 6여명의 시피들은 반반으로 맞섰다. “역사적 평가가 이르다”는, “시청자들이 정치를 넌덜머리낸다”는 의견 따위가 그 반이었다. 촬영 첫 삽이 떠진 게 겨우 지난 12월.
“역사기록 그대로 보여줘라, 혈기 넘쳐 판단 말라”= 박 사장이 당시 유 작가와 임 피디에게 당부한 말이었다. 사건 판결과 검찰 조사결과 등에만 철저히 의존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육군은 12·12 사태에 가담했던 부대의 마크를 가려달라고 청한 바 있다. 생존하는 12·12 쿠데타 관계자들은 변호사를 통해 올 초 대본 수정을 요청했다. ‘누가 군대 출동 명령을 내렸는가’ 등에 대한 이견들이다. 신 책임프로듀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공식 기록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그걸 뒤엎을 만한 걸 가져온 것도 아니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자료 선별이 이미 ‘판단’이고, 판단은 또 다른 판단과 부딪히게 마련이다.
탱크 좀 협조 해주세요= 대규모 병력을 이용해 쿠데타를 도모한 12·12 사태(7,8일치 방송부터)를 영상에 담아내는 일이 만만할 리 없다. 촬영 협조를 요청했지만 육군 쪽은 거절했다. 결국 5공화국 팀은 탱크와 장갑차를 외주 제작했다. 그렇게 각각 두 대의 탱크와 장갑차가 지난 1월 광화문을 나설 수 있었다. 제작비만 2억5천만원이 들었다. 엠16 소총 따위 소도구는 아예 해외에서 빌려왔다. 제작비 10억의 반 가량을 소품이 해치웠다.
장세동, 제가 하겠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는 장세동씨였다. 4~5명의 연기자가 ‘장세동’을 “멋있다”며 먼저 자원했다고 한다. 자원을 하지 않았던 홍학표씨가 결국엔 당첨됐다. 이번 캐스팅의 주안점은 모방이나 모사가 아닌 이미지와 스타일의 복사다. ‘재사형’ 허화평(이진우), ‘무사형’ 허삼수(차광수), ‘모사형’ 허문도(이희도)가 그렇게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역으로 <궁예>의 김영철씨와 이덕화씨가 애초 거론된 것도 같은 이유. 김씨가 먼저 잡힌 영화 일정으로 고사하고 이덕화씨가 맡았는데 선뜻 가발을 벗겠다고 나섰다. 유일한 모사라면 모사다.
실재와 이미지 혼동 걱정되나 다룰만
전문가 시각
학계나 평단에 있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제5공화국>에 대한 염려가 앞서는 눈치다. 하지만 지금 5공화국을 다뤄야한다는 필요성에는 두루 의견을 같이 한다.
학술계간 <모색>의 오창은 편집위원은 “우선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데 방송의 의도와는 달리 역을 맡은 배우의 이미지나 연기의 후광이 강해서 실존 인물의 이미지와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복제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각인되며 실재와 뒤바뀌는 것이다. 김병후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티브이 속에선 대립하는 상대방이 비슷한 정도의 치밀함이나 양으로 다뤄지지 않는 한, 중심 인물이 긍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드라마의 속도를 담보하기 위해선 본래의 이미지가 노출될 시간이 없어지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근본적 차이일 것이다.
90학번 문학평론가인 홍기돈씨는 “당장의 갈등 구도를 세밀하게 짚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한 시기의 흐름을 누가, 어떻게 막았는가를 넓게 짚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절대악’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됐던 인물이 세목별로 객관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5공화국 때를 보며 지금도 계속되는 정치인의 과오와 변명을 정치적 허무주의로 안일하게 넘기는 우리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며 “권력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시민적 공분이 합리적으로 모아지는 시대라서 5공화국은 지금이야말로 다루기에, 의미를 찾기에도 적기”라고 덧붙였다. 대중의 비판적 시청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