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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22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5공 정권의 3S정책 밝혀

“광주학살 눈돌리려 올림픽 기획”

올림픽으로 철거민 몰아내고 프로야구 9달만에 졸속출범

80년대 ‘3에스(S) 정책’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5공 정권이 정치에 쏠린 국민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22일 밤 11시30분,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3에스 정책의 진실을 파헤친다.

전두환은 80년 8월,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한국과 일본의 다리 구실을 해온 세지마 류조를 만난다.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해 잃은 민심을 회복할 방법을 구하는 전두환에게 세지마 류조는 올림픽 개최를 제안한다. 그 뒤 전두환은 서울올림픽 유치를 가능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대한체육회,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은 바덴바덴으로 향하고, 52대 27로 서울 올림픽이 결정된다. ‘올림픽’ 망국론을 주장했던 남덕우 총리가 물러나고, 바덴바덴에 동행했던 유창순이 총리 자리에 오른다.

경제 여건을 따지지 않고 올림픽을 유치한 5공 정권은 빈민들이 거주하는 이른바 ‘사각지대’를 없애라고 특명을 내리고, 이에 따라 상계동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은 부천 경인고속도로변의 허허벌판으로 집단 이주한다. 그러나 부천시청은 그곳이 올림픽 성화 봉송로 주변이라는 점을 들어 또 다시 철거를 지시한다.

또 전두환은 81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프로 스포츠 출범을 지시한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2천달러도 안되는 개발도상국에서 프로야구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진 뒤 불과 9달만에 출범했다. 이 가운데 호남을 연고지로 둔 ‘해태’는 보유 선수가 14명에 불과할 정도로 졸속이었다. 광주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연승을 거듭한 해태는 결국 83년 프로야구 우승컵을 거머쥔다. 호남 사람들의 한을 푸는 해방구 구실을 한 셈이다.

한편, 이른바 ‘에로영화’와 향락산업이 번성하던 때이기도 했으나, 정부 정책과의 직접 연관성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진은 “검열 등으로 소재에 제한을 받아 에로 영화가 늘어났고,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경제성장으로 일부 계층이 부유해지면서 향락산업이 번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황상의 연관성을 추측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 연관성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