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定住)하지 않고 흘러다니는 것, 쌓아두지 않고 덜어내는 것을 동경하는 이 시대에 프랑스 가수 케렌 앤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한 유목민(nomad)이다. 러시아-이스라엘계 부친과 네덜란드-인도네시아계 모친을 둔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에서 자랐다. 예술적으로는, 샹송/프렌치 팝과 모던 포크, 로큰롤과 카바레 음악, 유대 민속음악과 러시아 문학 등을 두루 자양분으로 섭취했다. 그녀의 음악이 복고적인 동시에 세련되고, 단순해 보이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지니며, 친숙하면서도 이국적인 까닭이다.
3집이자 첫 영어 앨범인 <Not Going Anywhere>(2003)로 케렌 앤은 프랑스 권역, 그리고 마니아층을 넘어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도약했다(한국에서도 이동통신서비스, 아파트 등의 광고에 쓰이며 적잖은 인기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얻은 ‘제2의 프랑수아즈 아르디’란 평은 벤자민 비올레와의 작·편곡 파트너십과도 일부 연관이 있다. 그들이 과거 ‘프랑수아즈 아르디-세르주 갱스부르’ 짝을 연상시켰기 때문.
하지만 지금 케렌 앤은 벤자민 비올레와의 오랜 파트너십에 마침표를 찍은 상태고, 파리지엔이라기보다 뉴요커에 가깝게 살고 있다. 4집 <Nolita>(EMI 발매)는 그 첫 결과인 셈(‘Nolita’는 뉴욕의 이탈리아인 거주지 ‘North of Little Italy’의 약칭이다). 전체적으로 외로움, 절망, 결핍, 바람 등의 테마가 짙은 안개처럼 자욱하고, 케렌 앤의 보컬은 초콜릿처럼 달콤하면서 씁쓸하다. ‘흐린 하늘 아래 살아가는 법’이란 가사가 나오는 프렌치 팝 발라드 <L’Onde Amere>와 ‘끝없는 끝’을 향하듯 7분이 넘게 전개되는 타이틀곡 <Nolita>는 대표적이다.
나른한 무드에 절박한 역설을 감추고 있는 <Chelsea Burns> <Greatest You Can Find>는 매지 스타, 니코, 벨벳 언더그라운드(3집)처럼 묵상적이며, 소프라노 스캣을 삽입한 <La Forme et le Fond>와 미스터리한 남성(Sean Guillette)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Song of Alice>는 먹먹하고 서늘한 사운드트랙 같은 느낌을 준다. 영묘한 곡조의 저류에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가 내내 흐르는 <One Day Without>은 가슴이 녹아내릴 듯한 순간을 선사한다. 그처럼 <Nolita>는 영원 같은 순간으로 다가와, 꾹꾹 누르며 견뎌온 어떤 감정을 증폭시키는 고혹적인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