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자 일을 시작한 뒤 들은 말 중 제일 헛소리는 기자는 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모 영화잡지사 선배의 말이었다. 초면이라 침묵하면서 듣는 것이 한참 나이 많은 그의 언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목구멍을 막았다. 혹은 어느 영화사 직원에게 들은 말 중 제일 헛소리는 영화가 개봉을 하기도 전에 그런 리뷰가 들어간 글을 써내면 어떻게 하냐는 투정이었다. 이 말이 관객을 위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탓이라면 그나마 괜찮은 것이지만(사실은 여기에도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관객을 위한 것인가?), 대부분은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평을 관례화된 시기 이전에는 미리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기에 헛소리다.
생각해보니, 한참 전에는 원고를 써보내준 어느 감독이 내 평에 화가 나 원고료를 받지 않겠다는 항의성 통고를 전해온 적도 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오히려 문장마다 복기하며 40매 분량의 반론문을 미리 써놓고 전화 오기만 기다린 적도 있다. 갑자기 스스로가 치사하고 한심해져 그만두기는 했는데, 그때 미친 생각이 아마도 마음이 상하여 원고료를 거부한 그 감독도 치사해서 그만둔 것이었겠지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과연 이렇게 서로서로 치사함을 느끼며 한발 물러서면서 앙금을 남겨야 하는 문제일까? 우리는 서로의 일을 열심히 한 것뿐이지 않은가?
오해가 있을까봐 하는 말이지만, 관점이 배제된 훌륭한 기사들이 있다. 그것들이 필요할 때도 많다. 영화를 보기 전 상황이 대부분 그러하다. 그러나 기본은 다시 언제나 그 영화에 대한 관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걸 잃어버리면 기준이 사라진다. 그 관점이 얼마나 명확한지 흐릿한지, 고견인지 아닌지, 맞고 틀린지는 그 다음 일이다. 2005년 몇월 며칠에 일어난 어떤 사건과 몇월 며칠 본 어떤 영화는 같은 의미에 있지 않다. 영화는 실제가 아니라 창작이고, 뒤따르는 해석의 전제이다. 육하원칙으로 사건을 보도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영화기자는 그걸 보는 순간부터 관점을 함께하지 않으면 무용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묻자. 그렇게 안된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나?
싸워가며 격렬히 사는 편은 아니지만, 세상 모든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이 가장 비열한 인간형 중 하나라는 생각은 하고 산다. 어떻게 모든 사람과 같이 웃을 수 있는가? 세상에서 제일 원칙없이 나쁜 놈이나 그런 짓을 한다. 그저 우리는 서로 열심히 해야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기분도 상하겠지만 그것밖에 더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종종 피로함을 몰고올지라도 이게 나의 영화기자 방식이다(이 장은 지극히 개인의 생각을 반영하는 지면이다. 이것이 곧 <씨네21> 전 기자의 생각은 아니라는 걸 말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