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주 많이 어리둥절하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SBS <뉴스추적>이 DJ의 숨겨진 딸 의혹을 거창하게 들고 나오면서 국정원 개입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의 재수사까지 촉구했는데, 이쪽 저쪽 다 조용하기만 하다. 한때 기잣밥 먹은 깜냥으로 감히 단언컨대, 이거 사생활 문제만은 아닌데 말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테랑의 경우와는 하늘땅 별땅 다르잖아. 미테랑은 혼외 딸을 버리지도 않았고 인권대통령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지도 않았으며 국가기관이 사실을 은폐하는 데 나서지도 않았지.
그런데 얼핏 ‘진상 밝혀야지’라던 야당도 ‘사생활 문제를 언급하는 건’ 어쩌고 하면서 뭉개고 넘어가고, 처음 며칠 여론 눈치보며 따라가는 인용보도로 땜방하던 언론마저도,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침묵의 카르텔 속으로 잠수해버렸다. 일부 신문은 <뉴스추적> 보도 초기에 사설로서 진상규명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요구에 아무런 메아리가 없는데도 그냥 문제제기한 것만으로 입 씻을 모양이다. 이제 이 문제는 언론 스스로의 취재노력 없이 각 매체 온라인 사이트에 네티즌의 안줏거리로 던져진 채 잊혀져가게 생겼다. 심층보도 추적보도 탐사보도 팩트 제일주의를 부르짖던 언론들, 왜 의혹만 제기해놓고 꼬리내리는 거냐고.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끝장을 봐야지.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한 온갖 논객들은 왜 더불어 침묵하는 건지(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손석춘, 조갑제, 지만원, 유근일 제씨, 정말 이 사안이 그렇게나 할말없는 당근지사인가요? 그대들의 생각이 궁금해요. 마치 ‘들춰내서 아무한테도 득될 것 없다’는 데 모두가 만장일치 도장 꾹 한 것 같잖아요).
이건 확실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런데도 아무런 분노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회, 이상한 사회다. 앞으로 혼외의 생명들은 얼마든지 버려도 할말이 없게 생겼다. 세상이 합의하면, 한 개인의 인권 따위는 공개적으로 비하되고 무시되어도 만사 오케이다. 천하의 인권운동가도 그럴진대 보통사람들이야 뭐 아무렇게나 살면 어때. 게다가 앞으로는 ‘남자의 아랫도리’에 금테 한겹 더 둘러줘야겠는걸. 바다에 빠트려 죽이려던 정적일지라도 아랫도리에 대해서만은 관대해야 한다는 게 남성사회의 묵계라니, 이상한 데서 멋있는 척하는 것도 유분수지.
DJ를 아끼고 평가하는 심정에서건 아랫도리 문제라서 그렇건 간에, 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침묵하는 속사정이야 있겠지, 물론. 그런데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고 원칙과 정의와 도덕의 잣대가 ‘그때그때 달라져도’ 된다면 대체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다는 거지? 정치권은 그렇다치고, 언론은 그러면 못쓰는 것 아닌가 싶네. 세상에 문제를 던져놓고, 진상은 니들이 요령껏 짐작해라, 우리는 내막 다 알아도 니들한테 말 못하고 안 할란다, 글구 니들은 사실 몰라도 사는 데 별 지장 없잖니, 이런 태도밖에 더 되느냔 말이지.
<뉴스추적> 기자들은 가랑이 찢어지도록 뛰어다닌 대가로 칭찬보다는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나는 이 사안에 관한 한 나머지 언론 모두보다 그 두 기자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다. 추적보도를 하다보면, 떨어지는 뉴스 받아먹으며 안전빵으로 기는 것에 비해 실수의 확률도 커지는 법. 이른바 ‘오큐페이셔널 해저드’이며 ‘리스크 테이킹’이랄까. 그러니 총대 멘 기자들 입장에선, 취재가 좀 부실하네, 제대로 좀 하지 그랬어, 나중에 니들 옳은 것으로 밝혀지면 그때 받아써도 안 늦어,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팔짱 낀 언론동료들이 얼마나 한심하겠나, 안 봐도 비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