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드라마 중 최강자인 <불량주부> 후속으로 또 하나의 화제작이 이어진다. 오는 5월23일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패션 70s>는 1970년대 패션계를 다루는 독특한 소재와 2003년 돌풍을 일으켰던 <다모> 이재규 PD의 작품이라는 점, 결혼과 출산으로 연예계를 떠났던 이요원의 복귀작 등의 이유로 일찍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SBS가 ‘광복 60년 대기획’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 내놓은 야심작이다.
24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드라마는 20∼30대 젊은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화려한 시대극’을 표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를 다룬 시대극은 암울한 현대사와 가난했던 생활상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던 것. 그러나 <패션 70s>는 좀 다르다. 70년대가 배경이지만 결코 어둡고 칙칙하지 않다. 해방 이후부터 70년대까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당시 패션계를 고증, 복원해내는 시대극 성격에 충실하면서도 인물관계와 극 전개에서는 현대극의 느낌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 이재규 PD는 “70년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두운 시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낭만과 열정이 있었던 시대”라며 “야성과 꿈이 있었던 당시 상류사회를 통해 그 시대의 역동성이 매력적으로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모>를 통해 사극의 낡은 틀을 벗어나 현대적 감각의 ‘퓨전 사극’을 선보였던 이 PD의 감성이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빛을 발할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사실 이 PD가 연출을 맡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에 쏟아지는 관심은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일한 장편드라마인 <다모>는 수많은 ‘다모폐인’의 열광적인 호응으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으며 마니아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 때문에 그가 다시 한번 시도하는 장대한 스케일의 HD 시대극 <패션 70s>가 <다모>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PD와 호흡을 맞춘 정성희 작가는 시청률 50%를 넘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국희>를 만든 장본인. 정 작가는 “1999년 <국희>를 방송할 때부터 <패션 70s>를 구상했으니 6년을 준비한 셈”이라며 이번 드라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모>를 좋게 본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힌 이 PD 또한 “<다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대극은 무조건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정 작가의 대본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며 “이번에도 굉장히 독특한 드라마가 될 거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 절반을 사전제작한 <다모>와 달리 방송이 나가면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촉박한 시간적 제약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이다. 한달 넘게 촬영을 했지만 현재 4부 분량 정도를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장면마다 대단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방송 일정에 맞추다보면 100% 만족할 만한 영상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는 이 PD는 HD로 제작하는 드라마인 만큼 비주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 같은 화면’을 위해 영화 촬영에만 사용되는 소니 HD 카메라 시네마 알타로 드라마 전체를 촬영하고 있고, 시대물에는 쓰지 않는 렌즈를 사용해 기존 시대물에 비해 훨씬 깊은 느낌과 역동성을 살리고 있다. 반면 전체적인 톤은 시대물의 따뜻한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파스텔 색조로 부드러운 영상을 선보인다.
물론 <패션 70s>의 매력이 감각적인 영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패션산업이 부흥했던 70년대를 배경으로 라이벌로 살았던 두 여자 디자이너의 경쟁과 우정,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는 드라마의 내용은 시청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주인공은 더미(이요원)와 준희(김민정).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성격의 더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천재적인 재능으로 토종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한다. 반면 귀족처럼 자라며 어린 나이에 디자인을 시작한 준희는 다른 사람의 코드를 재빨리 파악해 제품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 모차르트 같은 천재형인 더미와 살리에리 같은 노력형의 준희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대통령 보좌관으로 야망을 위해 살아가던 동영(주진모)와 다이버 강사로 뚜렷한 목표없이 인생을 유쾌하게 살아가는 빈(천정명)이 가세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사랑 이야기를 풀어간다.
2002년 <대망> 이후 3년 만의 복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요원이 기대에 부응하는 연기를 보여줄지도 이 드라마의 관심거리. 이요원은 “관심이 너무 내게 치우치는 것 같아 겁이 난다”고 말했지만 디자이너 지춘희에게 따로 훈련을 받으며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기대를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김민정, 주진모, 천정명도 흥행이 보장되는 특급 스타는 아니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특히 이 PD가 “더미와 준희는 단순한 주연, 조연이 아니라 회마다 각자 주인공이 된다”고 말했듯이 극중 비중이 큰 준희 역의 김민정은 <아일랜드>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바 있어 두 여배우의 연기 대결이 보는 재미를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패션’을 소재로 한 드라마인 만큼 이요원의 보헤미안 히피 룩 등 등장인물들의 패션이 벌써부터 화제가 될 정도로 <패션 70s>에 쏟아지는 관심은 엄청나다. 시대물이 강세를 보이는 요즘,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다”는 모토를 건 <패션 70s>가 시청률과 작품성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수작’으로 남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