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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의 발견2: 디지털 장편영화 [2] - <거칠마루>
박은영 2005-05-17

현역 무술인 캐스팅, 눈속임 없는 액션영화 <거칠마루>

이상한 나라의 무술 영화

<거칠마루>는 이상한 무술 영화다. 무술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복수의 테마도 없고 유혈낭자한 폭력도 없다. 그저 “도복을 입고 있을 때 최고이고 싶다”는 무술인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는 과정의 이야기일 뿐이다. 무림 최고의 고수 거칠마루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혹은 겨루고 싶어서 모여든 무술인들은 그나마도 승부에 연연하는 모습이 아니다. 대련을 피해 도망다니는 이가 있는가 하면, 탈락한 이들끼리 번외 경기를 펼치기도 한다. “우물을 파는 데 이기고 지는 건 없다”면서. 그러니까 <거칠마루>는 ‘무술’보다는 ‘무술인’ 그리고 ‘무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그저 ‘강해지고 싶어서’ 몸을 단련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이다. 생활인으로서 약자이고 부적응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애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술을 놓지 못하는 열정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이 영화는 ‘무술영화의 탈을 쓴 휴먼드라마’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거칠마루>는 무술의 달인 여덟명이 마지막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토너먼트를 벌이는 과정을 경쾌한 리듬으로 따라잡는다. 태껸, 우슈, 유도, 복싱, 무에타이 등 저마다 다른 종목을 대표하는 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 대련을 벌이는 과정은 스테이지와 캐릭터를 바꿔가며 진행되는 비디오 게임을 연상시키지만, 단순한 시각적 쾌감과 활력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와이어와 컴퓨터그래픽의 눈속임을 빌리지 않고 순수하게 몸으로 부딪혀 보여주는 이들의 액션을 대하노라면 그 어떤 신성함과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홍콩 무협물의 과장된 액션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전문 배우가 아닌 현역 무술인들을 기용했다는 김진성 감독의 고집이 ‘이유있다’는 사실을 절로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2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7천만원으로 거칠게 완성했던 <거칠마루>는 지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선보인 이래 늦게나마 ‘경사’를 맞았다. 영화사 스폰지에서 후반작업과 보충촬영을 위한 추가제작비 l억3천만원을 투자하고 마케팅과 배급을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올 초 하이라이트 대결신(결승전)을 재촬영하고, 가수 김C가 등장하는 프롤로그와 내레이션을 덧붙여 더 나은 ‘때깔’과 대중친화적인 화법으로 버전업했다. <거칠마루>를 오는 8월 말 극장 개봉할 계획인 스폰지에서는 속편 제작 가능성도 높다고 귀띔해 주었다.

김진성 감독 인터뷰

“무술보다는 무술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TV 다큐 <인간극장>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무술의 고수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얘기였는데, 테크놀로지가 앞서가는 요즘 세상에도 몸으로 부딪히길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무술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강해지겠다는 열망에 온몸을 던지는, 그야말로 날것으로 덤비는 모습이 근사해 보였고 감동적이었다. 인터넷을 매개로 이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들의 애환을 덧붙여 이야기를 구성했다.

-어떤 부분을 보충 촬영했고, 이전 버전을 어떻게 발전시켰나.

=마지막 결투신과 김C의 내레이션과 출연분을 추가했다. 또 여러 인물을 비슷한 비중으로 두루뭉술하게 소개했던 이전 버전과 달리 태식(<인간극장>의 주인공이자 <거칠마루>의 주연배우인 장필운)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고민을 부각했다.

-전작 <서프라이즈>와 색깔이 다르다. 원래 무술이나 액션 연출에 관심이 있었나.

=무술은 잘 몰랐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다. 관객도 영화를 통해 나와 비슷한 체험을 하길 바라고 있다. 무술 영화라는 건 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무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니까. <서프라이즈>는 기획영화이긴 했지만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았는데, 당시 내가 많이 부족했다고 느끼고 있다.

-비전문 배우들을 데리고 2주 동안 찍었고, 후반작업은 2년을 끌었다.

=무술 고수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캐스팅하고 실제 캐릭터에 맞게 시나리오를 썼다. 캐스팅, 각본, 헌팅을 한달 반 만에 마치고, 촬영은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마쳐야 했다. 연기 경험 없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잘 아는 이야기여서 그랬는지, 축제하듯 잘 놀아주었다. 연기가 어색하고 부족하기도 하지만 처음에 의도했던 풋풋함, 담백함, 소박함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을 잘 담아낸 것 같다. 후반작업은 함께 각본을 쓴 작가 아내의 수입에서 비용을 충당했다. 디지털은 찍기는 쉬운데 마무리해 선보이는 게 너무 큰 일이더라.

-기존 디지털 독립 장편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이고 화법이다.

=디지털을 택한 건 비용문제도 컸다. 비전문 배우들의 무술 영화는 충무로에선 불가능한 프로젝트였고, 저예산 프로젝트로 가자니 디지털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영화라고 하면, 작위적인 작가주의나 엄숙주의가 떠오르는데, 나는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다 같이 즐기고 호흡할 수 있는 이야기로 디지털영화의 통로를 넓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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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