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어린이 창작극 <강아지 똥> 연습현장
“어린이 연극은 본성으로 돌아가 자양분을 얻는 일”
과천시민회관의 극단 모시는 사람들 연습실을 찾은 날은 형광등 불빛이 청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황사가 심한 어느 오후였다. <강아지 똥>(원작 권정생, 연출·각본 김정숙)의 마지막인 강아지 똥이 민들레 꽃을 피우는 장면 연습이 한창이다. 연습실 한켠에는 일정표와 의상 옷걸이가 있었고, 배우들은 초봄인데 옷이 흠뻑 젖도록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강아지 똥>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4년째 공연하고 있는 어린이 연극 주요 레퍼토리다. 김정숙 대표는 87년 어린이 연극을 시작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트럭을 세낼 여건도 안 돼 단원들과 버스를 타고 세트와 의상 소도구들을 나누던 ‘보따리 연극’ 시절이었다. 단원들은 “제발 우리도 <백설공주> 좀 하자”고 한숨 섞인 간청을 했다. 명작동화류는 흥행이 보증되어 있었지만, 창작극은 찬밥에 요강 엎어진 신세였으니 말인다. 하지만 그렇게 18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어린이 창작극이 이젠 <강아지 똥> <반쪽이전> <말하는 거북이> 등 몇개의 레퍼토리가 되었고, 얼마 전 아동극집 <쌀밥에 고깃국>(김정숙 지음/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이 출판됐다.
“<강아지 똥>은 보통 어린이 연극이 가지는 교육성을 벗어나 있어요. 아이들과 인생을 이야기해보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의 집중시간이 3분이라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60분간 집중하죠. 어른처럼 말로 꾸며내는 재주는 없지만 자신의 느낌으로 대화하는 거예요.”
김정숙 대표는 이 작품으로 아이들과 철학적인 선문답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작업자들이 즐거움으로 꼽는 아이들 관객의 활발한 반응과 자유로운 표출은 연극을 살아 있게 하는 커다란 활력소라고. <강아지 똥>의 극중에서 자신이 강아지 똥임을 괴로워하던 강아지 똥이 하늘의 별을 보고 “내가 어떻게 별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너는 절대로 별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한다. “넌 똥이야. 니가 똥이고 더럽지만 그건 당연해. 니가 더러우니까 똥이지. 똥이니까 더럽지.” 똥이 똥이라서 똥이라고 말할 줄 아는 것만큼의 진리. 김정숙 대표는 자신이 꾸준히 어린이 연극을 해올 수 있었던 힘이 이런 데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 연극을 한다는 것은 본성으로 돌아가 자양분을 얻는 일이에요. 흥행, 상업성 등 어른 연극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 보상을 받죠.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리게 될 때가 많은데, 어린이 연극은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추는 그 하나의 거울을 쥐고 있는 것과 같죠.”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귀기울여보자. 치이고 밟히느라 노화한 몸들은 “똥이 똥이라서 똥”인 진리의 자정 능력을 증진시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교육연극 연출가 피터 윌슨(Peter Wilson)
“교육과 연극은 좋았지만, 학교와 극장이 싫었다”
영국의 교육연극 연출가 피터 윌슨과 한국의 인연은 지난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의 T.I.E(Theatre in Education) 수업으로 시작됐다. T.I.E는 ‘교육연극’으로 번역되는데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창의성과 놀이적 속성을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야이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이 세간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피터 윌슨의 이번 내한은, 오는 5월 한국에서, 11월부터 12월 영국에서 공연될 작품 <다리>((The Bridge)(원작 피터 윌슨·고순덕, 연출 피터 윌슨·남인우)의 연습을 위해서다. 이 작품은 2002년부터 준비된 한·영 프로젝트로, 한국과 영국의 연출가, 작가, 배우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에서의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곳의 어떤 면에 자극을 받는가.
=한국에 오기 직전 영국 정치상황의 변화로 재정적 지원이 줄어들었다. 25년 영국 생활에서 극단을 이끌면서 교육연극을 계속 해왔는데 그때마다 교육자나 정부가 중요성을 모르니까 매번 부탁하고, 거절당하고, 싸우는 일의 연속이었다. 소모되고 있다고 느꼈다. 이 일을 확신하지만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이 일을 왜 하는가, 이 일이 왜 가치가 있는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월드컵을 볼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웃음)
-말꼬리를 다는 것 같지만, 궁금하다. 이 일을 왜 하는가? 이 일이 왜 가치가 있는가.
=부모님이 선생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 좋은 것이고, 그걸 통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편으론 연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다. 연기도 좋고 교육도 좋지만 학교와 극장은 싫다. 학교는 아이들을 믿지 못하고 부리고, 다루려고만 한다. 극장 역시 도전하지 않고 그 안에 갇혀 자기만족만 반복하고 있다. 그것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다리>는 한국전쟁에 대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은 영국인의 입장에서는 다루기 힘든 소재가 아닐까.
=한국전쟁 자체보다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어떻게 만나서 소통하느냐가 애초의 주제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선택된 상황이 전쟁이었다. 최근 이라크전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파병된 병사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채 싸우고 있다. 전장에서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로 충돌한다. 이들에게 대화가 불가능할까?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분명 위험도 있었다. 두 나라가 배운 역사도 다르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전이 감정적이고 가슴 아픈 문제지만 영국인에게는 생소하다. 또한 이 연극은 두 나라의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 지점에서도 문화 교류와 문화 소통이 있을 것이다. 나의 문화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고, 상대의 문화는 어떻게 보일지에 관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어두운 소재가 아닐까? 그래서 흥미가 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영국에서도 아이들에게는 희망이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쟁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을 또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뭐가 좋고 나쁜지 나름의 분별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지금도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반응이 즉각적이고 솔직할 뿐만 아니라, 정의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데 놀라곤 한다.
<리틀 드래곤>의 3D 입체영상 디자이너 보이첵 피자렉
“화면과 행위가 일치되게 실시간으로 조종”
라트 어린이 극장의 앙코르 공연 <리틀 드래곤>에는 독특한 스탭 명칭이 있다. 이른바 ‘Real time animator’. 직역하자면 ‘실시간 만화영화 제작자’쯤 되겠다.
“무대 배경이 3D영상으로 쓰이는 거죠. 보통 무대에 쓰이는 영상은 녹화된 걸 트는 정도였지만, 이번 연극에서 영상은 배우의 움직임과 함께 배경이 돌고, 문이 열리고, 우주 공간을 부유하죠. 제 작업은 화면과 행위가 일치되도록 공연 동안 실시간으로 조종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역동성을 살린 영상의 운용인 셈이다. 폴란드계 호주인 보이첵 피자렉은 라트 어린이 극장의 <그림자 도둑>에 이어 두 번째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80년대 폴란드의 공산정권을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당국의 미움을 받게 되어 스위스, 비엔나 등지를 유랑하다가 호주에 정착하는 과정은 그에게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연극적 발언 대신, 환상과 동경에 대한 얘기, 그러니까 어린이 연극에 대한 확신이 서서히 싹트는 과정이었다고.
“배우, 연출로서의 지난 경험들에서 지금까지의 행보는 매우 당연하고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들에 대한 열망이었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