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5월14일(토) 밤 11시45분
거장감독 중에서 의외로 여성들의 드라마에 일가견이 있었던 이는 잉마르 베리만이다. 1970년대 그는 <외침과 속삭임>이나 <가을 소나타>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어머니와 딸 등 주로 여성 이야기로 짜여져있는 이 영화들은 일상적 사건을 실내극 형식으로 담아낸 점이 특징이다. 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심리 변화를 예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 출신의 리벤 디브로우어 감독이 만든 <폴린느와 폴레트>는 베리만 감독의 후기작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내면을 표현해내기 위해 카메라를 인물에게 근접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좀더 코믹하다는 것이다. 폴린느는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소녀 같은 할머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심지어 정확히 말조차 못하는 폴린느는 플랑드르 마을에 살고 있다. 이런저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폴린느는 마음은 고와서 매일 노래를 부르며 꽃에 물을 주고 마르타의 심부름을 척척 잘해낸다. 폴린느의 큰언니 마르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줄곧 그녀를 돌봐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마르타가 죽고, 누군가에게 남겨진 유언장에는 폴레트와 세실 중에서 폴린느를 잘 보살피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주겠노라고 써 있다.
<폴린느와 폴레트>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감독은 폴린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병원에서 환자를 인터뷰하며 구체적인 디테일을 만들어나갔다고 한다. 폴린느는 부분적으로 자폐증상이 있으며 타인 의존도가 높다. 다른 사람이 신발끈도 묶어줘야 하며 식사를 한번 하려면 번거로운 절차가 많다. 그럼에도 영화는 비극적 기운을 삼간다. 폴레트는 처음에는 폴린느에게 무심하며 실상 돈에만 관심이 있다. 차츰 폴린느는 폴레트와 함께 지내게 되고 폴린느는 옷가게에서 일을 돕기까지 한다. 여성들이 조금씩 친구가 돼 서로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폴린느와 폴레트>는 지나친 감상이나 동정심에 기대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라 반 데어 그로엔과 안 페터슨,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축이 되고 있다. 원래 사진과 영화를 전공한 리벤 디브로우어 감독은 단편영화 <레오니>가 주목받은 뒤 <폴린느와 폴레트>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남편이 가출한 뒤 스스로 가게를 꾸리게 된 한 노인의 일상을 다룬 <스위트 잼>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남다른 코미디적 감각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디브로우어 감독의 영화는, 등돌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와 가벼운 웃음이 공존하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