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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TV영화와 다시 만나다,

KBS <HDTV문학관> 부활, 올해 <소나기> 등 8편 선보일 예정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뛰어난 영상미와 삶의 이면을 깊숙이 아우르는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KBS <TV문학관>이 <HDTV문학관>으로 부활했다. 1980년 12월 김동리 원작의 <을화>로 시작한 <TV 문학관>은 1987년 10월까지 매주 1편씩 총 277편을 제작, 방송하며 1980년 드라마의 새 지평을 얻었던 작품이다. 80년대 큰 사랑을 받았던(당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방송사에 입사한 PD의 대부분은 “<TV문학관>이 하고 싶어 PD로 지원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HDTV문학관>을 이끄는 이녹영 팀장을 비롯해 <겨울연가>의 윤석호 PD, 팬엔터테인먼트의 상임이사 장기오 대PD가 대표적인 경우) <TV문학관>은 90년대 접어들면서 시청자에게 외면을 받았다. 하여 이후에는 <드라마 초대석> <TV 문예극장> <신 TV문학관> 등으로 바뀌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 이번에 부활한 것이다.

어쩌면 문학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은 ‘가벼움’이 미덕이 된 요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부와 빈이 대립하고,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사는 정형화된 캐릭터들에 싫증난 이들이라면, <HDTV문학관>에 관심이 갈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5월 오랜만에 첫 방송을 내보내는 <HDTV문학관>에 집중하는 이유다.

경명철 KBS2 편성팀장은 “올해를 <HDTV문학관> 100선 프로젝트의 원년으로 선정했다”면서 “앞으로 1년에 10편씩, 10년 동안 100편의 드라마를 제작할 것이며 이를 위해 <HDTV문학관> 선정위원회도 구성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HDTV문학관>은 5월과 11월에 4편씩 총 8편이 전파를 탈 예정이다.

<HDTV문학관> 부활에 많은 이들이 반기고 있다. 11월 방송예정작 <새야새야>의 원작자 신경숙은 “<TV문학관>을 보며 소설가를 꿈꿨었는데, 부활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80년대 <TV문학관>을 제작했던 혹은 이 작품 때문에 PD가 됐다는 많은 연출가들도 선뜻 참여의 뜻을 밝혀왔다. 80년대 <TV문학관>에서 메가폰을 잡았던 이영국, 고영탁, 김충길, 장대오 PD가 돌아왔고, 얼마 전 <여자, 정혜>를 통해 제18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윤기 감독, MBC <한뼘 드라마>의 황인뢰 PD 등은 객원 연출가로 활동키로 했다. 장대오 대PD는 “요즘 젊은이들은 소설도 인터넷에서 요약판으로 읽는다고 하는데,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줄거리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글에 담긴 사상이나 철학을 느껴야 한다. 좋은 문학작품을 영상을 통해 소개하는 <HDTV문학관>이 영상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에게 뜻깊게 다가설 수 있길 바란다”고 조심스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기대와 관심 속에 지난 5월8일 황순원의 <소나기>가 첫 전파를 탔다. <소나기>는 <HDTV문학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난해 9월 인터넷을 통한 ‘드라마로 보고 싶은 문학작품’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작품. <태양은 가득히>와 <학교2> <태양인 이제마> 등을 연출한 고영탁 PD와 <효자동 이발사>의 이재응, <여선생 vs 여제자>의 이세영이 호흡을 맞췄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방송에 앞서 가졌던 시사회를 본 많은 이들은 “책에서 보던 내용들이 눈앞에 펼쳐져 새로웠다”(양선웅), “운동회, 개울가에서의 물장난, 곡식이 여물어가는 들녘, 추수하고 난 가을 들판 등 아름다운 영상에서 고향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이순정)라고 시청소감을 밝혔다. 고 PD는 “<소나기>는 황순원 <소나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대신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의 정서를 같은 질감의 소재를 활용해 최대한 복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작품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HDTV문학관>의 기본 제작방향이라는 것.

이는 ‘문학작품을 제대로 알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긴 하지만, 조금 걱정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많은 상징과 의미가 있는 텍스트를 영상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기 때문. 일부의 이런 우려에 대해 이녹영 팀장은 “다 아는 이야기라도, 잘만 만든다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HDTV문학관>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수작이니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그의 이런 호언장담에는 이유가 있었다.

100%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HDTV문학관>의 촬영횟수는 20여회에 지나지 않지만, 한 작품이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기본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화려한 세트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요즘 드라마 중 눈 내리는 장면 하나를 위해 세 계절을 기다리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눈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소나기>의 경우 지난해 9월 시작해 최근에야 완성했다. 이처럼 <HDTV문학관>에서는 드라마당 최소 2개 이상의 계절이 배경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 HD로 제작된다는 점도 이 팀장이 <HDTV문학관>의 장점으로 꼽는 점이다. 공들여 찍은 작품을 영화와 같은 수준의 화질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 고화질 HD카메라를 사용한 덕에 시청자는 한편의 TV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오는 15일에는 은희경 원작의 <내가 살았던 집>이 방송된다. 딸 하나를 두고 있는 미혼모 이유정(배종옥)이 5살 연하의 남자(장현성)와 세 계절에 걸쳐 나누는 사랑 이야기로, <여자, 정혜>의 이윤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연극배우 손숙이 소녀적 감수성을 지닌 유정의 어머니로 출연한다. <HDTV문학관>은 5월 중 김동리의 <역마>와 박범신의 <외등>을 더 선보인다. 시청자 조사 2위작인 <메밀꽃 필 무렵>은 11월에 안방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