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인터넷에서 공짜 영화를 다운로드받아 본다. 도둑질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수시로 틈만 나면 그 짓을 하곤 했다. 개봉되기 전의 영화를 먼저 볼 수 있다는 유혹을 참아내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 덧붙여 너무 편리하다. 이것저것 차리고 집을 나서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할 필요도 없고 그저,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을 기다리면 영화를 볼 수 있다. 그것도 공짜로! 얄팍하기 짝이 없는 나의 자본주의적 도덕성과 주머니로는 정말이지 이 모든 장점들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인터넷 덕분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들은 이제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향유되고 있다. 나는 여기에 무정부주의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인터넷이 수평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이다. 인터넷은 이제 광대한 시장일 뿐이다. 우린 가끔씩 인터넷이 얼마나 탐욕스러운 자본의 욕망 위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잊고 있다. 한때의 인터넷은 기왕에 구축된 고립된 네트워크들을 TCP/IP로 연결하는 광대역 네트워크에 불과했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의 전설일 뿐이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지난 90년대 이 분야에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하되었다. 예컨대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는 이 기간 중 연평균 88%라는 놀라운 매출성장률을 보였다. 성장률이 둔화된 2002년에도 시스코는 202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또 다른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2003년 매출은 320억달러였다. 비교하자면 2003년 미국 영화업계가 올린 총매출은 고작 90억달러였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통신 기술자본이 거둔 이윤적 성취는 사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인터넷은 개인의 자유가 범람하는 무정부주의적인 공간이 아니라 단지 자본의 욕망이 꿈틀대는 거대한 시장인 것이다.
이 시장에서는 날마다 거대한 자본이 투하되고 막대한 이윤이 창출되고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이윤은 시스코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술자본의 몫이다. 영화나 음반과 같은 문화산업이 악전고투하며 간신히 인터넷에서 뽑아내고 있는 이윤은 이런 자본들이 챙겨가고 있는 몫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에도 끼지 못한다. 이 엄청난 박탈감과 피해의식은 문화산업 관계자들과 변호사들을 흥분하게 만들고 급기야 냅스터나 소리바다, 벅스와 같은 피라미 업체들을 법정으로 몰아넣고 은밀하게(?) 공짜 콘텐츠를 즐기는 인간들을 반문화적인 범죄자로 몰아가기에 바쁘도록 만들고 있다. 물론 흥분할 만하다. 자본주의 역사상 상품의 영혼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뻔뻔스럽게 모독당한 때가 또 있었던가.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려면 좀더 냉철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술자본은 인터넷이 점점 더 빨라지고 따라서 모든 장비와 소프트웨어들의 교환주기가 더욱 짧아지기를 너무도 강렬하게 소망하고 있다. 그 결과 전세계의 네트워크를 초고속통신망, 초초고속통신망으로 바꾸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자들은 무엇보다 그자들이다. 이자들은 인터넷에서 문화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장비들을 만드는 데에는 일고의 가치도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불법복제된 디지털 콘텐츠들이 인터넷에서 공짜로 유통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자들이다. 생각해보라. 이메일과 웹브라우저로 인터넷 생활이 족하다면 누가 초고속통신망을 필요로 하겠는가. 따라서 초고속통신망 사용자들이 매달 빠짐없이 납부하고 있는 사용료에 불법복제된 콘텐츠의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영화와 음반산업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관계자들은 무수한 개미들을 범죄자로 몰아 협박하거나, 양심(?)에 읍소하는 신통치 않은 방법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좀더 확실한 상대, 예컨대 인터넷 기술자본을 대변하는 초고속통신망 업체를 상대로 맞붙어 싸울 것이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왜냐하면 당신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윤을 그들이 착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 편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훌륭하고 옳은 방법이다.
그런 그렇고, 나는 앞으로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로드받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다. 이 짓을 시작한 이후 점차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진실을 확실하게 깨우칠 수 있었다. 급기야 열편을 보고도 열편이 모두 기억에 남지 않는 도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초고속통신망도 이제 저렴한 라이트로 바꾸기로 했다. 더 느리고 더 싼 것을 찾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상품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