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찍기·롱테이크 긴박한 심리묘사 브라스·메탈 어울린 강한 합창 압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숨 죽인 50여분이 후딱 지났다. 박종철 열사의 장례식 장면이 빠르게 스치고,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 선서가 서서히 겹친다.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 의원은 전 대통령을 고함으로 꾸짖는다. 최근부터 80년 안팎까지 숨가쁘게 훑어내려간 뒤, 궁정동 안가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화방송 특별기획드라마 <제5공화국>의 시사회가 20일 열렸다. 24일 방송될 2부 ‘운명의 총소리 10·26(2)’의 앞부분에 몽타주 형식으로 만들어진 프롤로그를 더했다. “베우스 논 불트”가 육중한 합창으로 울려퍼지고, 1979년 10월26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벌어진 일들이 펼쳐졌다.
심수봉(신동미)의 기타 반주에 맞춰 신재순(조미나)이 노래를 부른다. 박정희(이창환)의 입가에 미소가 흐르는 순간, 안절부절하던 김재규(김형일)는 총을 꺼내 차지철(정호근)에게 발사한다. 겁에 질린 차지철이 옴짝달싹 못하는 가운데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총알 한 발이 나간다.
거사 뒤 김재규의 모습을 쫓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격렬하다. ‘들고 찍기’ 방식으로, 궁정동 안가를 우왕좌왕 오가는 김재규를 따라갔다. 1분30여초 ‘롱 테이크’ 방식까지 더해 김재규의 복잡한 심리를 건조하면서도 충실하게 묘사해냈다. 그의 당혹스러움과 극도의 긴박감은 화면을 타고, 보는 이에게 흘러든다.
다시 총탄을 채워온 김재규는, 피 흘리며 심수봉에 기대있던 박정희의 머리에 다시 한번 총탄을 발사한다. 총격 장면이나 피흘리는 장면 등이 기존 드라마에 견줘 사실적이다. 얼마전 법원 결정으로 앞부분을 삭제당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블랙코미디 <그때 그 사람들>이 긴장감 속에서도 여유있게 사건의 전모를 담아냈다면, <제5공화국>은 딱딱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된 구성에 빠른 속도감이 더해지면서, 사실적인 긴박감을 자아낸다.
화면의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기존 티브이 드라마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어둡고 거친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 그림에서 힘이 느껴졌다. 임태우 피디는 “최대한 사실적이고 힘있게 연출하려 했다”며 “카메라뿐 아니라 미술과 조명 등도 엠비시 드라마가 선호해온 정통 기법과는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음악이 압권이었다. 제목 <베우스 논 불트>(BEUS NON VULT)는, 인간은 역사를 용서할 수 있으나 “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라틴어에서 따왔다. 합창단의 굵은 울림과 빠른 반복에 브라스와 메탈이 합쳐져 완성된 강력함은 모던함까지 품었다. <제3공화국> <제4공화국>에도 참여했던 작곡가 안지홍씨는 “제5공화국의 다양하고도 아이러니한 모습을 담으려 박력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고 설명했다.
반면, 성우 안지환씨가 맡은 내레이션이 극의 흐름을 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동해 귀에 익은 안씨의 목소리가 다소 무거운 드라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제작진은 “1~2회 지나 적응되면 설득력과 소구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