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시작한 ‘SBS 금요드라마’가 오는 4월22일 세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세 주부의 일상을 코믹하게 다룬 첫 번째 이야기 <아내의 반란>과 중년에 찾아온 폭풍 같은 사랑을 그린 두 번째 이야기 <사랑공감>은 경쟁 프로그램인 KBS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호평을 얻었다. 이어 내놓은 <꽃보다 여자>는 SBS가 금요일 심야시간대를 ‘본격적으로’ 장악하기 위해 마련한 야심작이다.
<꽃보다 여자>의 연출을 맡은 배태석 PD는 “<꽃보다 여자>는 여자들이 직장을 비롯해 어느 자리에서도 ‘꽃’으로만 보이지 않길, 주체적인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꽃보다 여자>는 직장여성 3명이 직장생활을 통해 세상 속에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린 이야기로, 애인과의 재회로 큰 갈등을 겪는 40대 정아(최명길)와 직장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노처녀 동지(우희진), 자기표현이 뚜렷한 20대 초반의 세련(사강)이 주인공이다.
그간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소외되거나, 왜곡됐던 ‘여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한다는 점에서 (좀 ‘오버’하자면) 한국판 <섹스 & 시티>를 연상케 하는 <꽃보다 여자>는 그 기대만큼 우려가 되는 작품이다. 가장 큰 걱정은, 여성의 이야기를 남성 PD가 한다는 것. 이미 많은 PD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제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즉, 작품에 자신의 성향이 표출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상황에서 기획과 연출을 모두 남성 PD가 한 <꽃보다 여자>가 과연 얼마만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지(더이상 왜곡하지 않고)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기획을 담당한 허웅 CP(책임 프로듀서)는 “문제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남자 캐릭터는 남자 연출자가 하고, 여자 캐릭터는 여자 연출자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여성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최대한 ‘보편성’에 근거해서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의 깊게 세상을 바라봤다면, 남성도 여성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의 이런 주장이 조금 못 미덥긴 하지만 <이웃집 여자> <그래도 사랑해> 등 서민적인 이야기를 많이 써온 허숙 작가라면 별 무리없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꽃보다 여자>는 남성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치열한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소외받고 차별받는 여성들의 문제도 사실은 (사회의 혹은 남성들의) ‘사소한’ 노력(관심)만 있으면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촬영 바로 직전 김민희와 김영호가 출연을 고사해 캐스팅에 난항을 겪으며 촬영일정에 차질이 있었던 점도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다. 이는 사강과 임호가 출연 의사를 밝히며 해결되긴 했지만, 제작진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짧은 제작일정이었기 때문이다. 급조된 드라마가 높아진 시청자의 잣대를 무사통과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작진은 이 역시도 “프로들에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지만, 중간에 투입된 사강과 임호가 극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배 PD는 “내심 걱정을 하긴 했는데 촬영을 해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 CP도 “그간의 ‘고고함과 우아함’을 떨친 최명길이나 왈가닥으로 분한 우희진, 이기적인 신세대 사강의 연기가 매우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사랑공감>이 스타가 아닌 연기력으로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 것을 돌이켜보면, <꽃보다 여자>도 충분히 선전할 수 있으리라는 것.
<꽃보다 여자>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는 또 다른 이유는 김민희의 고사 이유가 노출문제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꽃보다 여자>도 <아내의 반란>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금요일 심야시간대 ‘선정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제작진은 이 점만은 “사실과 너무 다르다”고 항변했다. “<아내의 반란>과 <사랑공감>도 같은 지적을 받았었는데, <아내의 반란>은 결혼 15년차 부부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을 찾다보니 코믹한 음담패설이 끼어든 것이었고, <사랑공감>은 과거의 진한 사랑의 흔적이 현재의 어디까지 영형을 끼치느냐에 관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였다”는 것. 배 PD는 “<꽃보다 여자>의 경우 20, 30, 40대 여성들의 적나라한 생활상을 표현하기 위해 19세 이상 시청가 등급을 택한 것이지 노출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며 “은근히 노출을 바란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오히려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다양한 소재를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신설된 금요드라마 블록이 제대로 자리를 잡느냐 마느냐가 <꽃보다 여자>에 달렸다는 점은 제작진에게는 사실 큰 부담이다. 그간 금요드라마 블록이 사랑받았던 것은 애초의 기획의도를 잊지 않아서다. 출생의 비밀과 재벌 2세가 넘쳐나는 주류 드라마 시장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배우들의 열연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버무린 덕분에 시청자로부터 호평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그러니 주류 드라마에서 소외받던 혹은 왜곡돼 표현되기 일쑤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겠다는 <꽃보다 여자>의 미래도 그리 불투명해 보이진 않는다. 금요드라마 블록의 선전은 새로운 시도를 반기는 시청자가 분명 존재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금요드라마 기획에 계속 참여했던 허 CP는 “우리는 사회적인 이슈를 드라마로 구성해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부부간의 성적 담론일 수도 있고 이번 작품처럼 여성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금요드라마 블록만은 드라마 자체의 성패에 상관없이 많은 새로운 시도를 해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꽃보다 여자>가 실패한다면 그 가능성의 범주는 좁아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니 <꽃보다 여자>의 성공은 새로운 드라마를 반기는 시청자나 제작자 모두에게 간절한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