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특수효과 관련 장비
조물주처럼 바람과 비를 조절한다
액션영화가 많아진 충무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장비, 폭파용 컨트롤 박스①. 개별 단자에서 연결된 선이 촬영장소에 설치된 폭발물에 연결되는데, 최대 50, 60번의 폭발까지 한 박스에서 제어가 가능하다. 자동모드에 놓으면 일정한 속도로 연쇄폭파도 가능하다. 배우의 동선과 액션이 폭파의 템포와 세기와 정확하기 맞아야 하기에 철저한 리허설이 관건이다. 심지어 리허설도 노하우에 속한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주인공이 멋있게 나와야 한다는 것은 상업영화의 불변의 속성인지라 되도록 배우가 폭발물에 근접하길 바라는 것이 감독들의 일관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폭파신에 한해서는 특수효과팀의 지시가 최우선이며, 컨트롤 박스를 쥔 사람이 NG를 부를 수도 있다. 각 특수효과팀들이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끝에 예전에 비해 크기도 많이 작아졌고, 무선 컨트롤 박스도 등장했다. 그러나 사람의 안전에 직결된 장비이니만큼 언제라도 제어할 수 있는 아날로그가 안전하다.
하늘에 달을 대신하는 조명기를 띄우는 충무로의 현실. 이제는 바람 역시 연출자의 느낌에 최대한 근접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 선풍기만한 크기에서부터 폭풍우를 만들 만한 규모까지, 사용되는 개별 영화에 따라 강풍기② 역시 발전해왔다. <아메리칸 뷰티>의 비닐봉지 비행장면에서 볼 수 있었던 소규모 회오리바람까지도 국내 기술로 재연할 수 있을 정도. 바람을 보관했다가 시점을 조절하여 내보낼 수 있는 특수한 강풍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연효과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 특수효과 담당자들의 일관된 소감. 똑같은 강풍기를 사용하더라도 자연풍이 어떤 식으로 불어오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
10년 전만 해도 영화 속에 비를 연출하기 위해 소방차를 섭외했다. 요즘엔 아무리 간단한 비라도 강우기③를 부른다. 소방차를 개조해서 만들었으며 노즐과 수압을 통해 다양한 성격의 비를 뿌릴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비는 미량의 비를 뿌려야 하는 안개비. 약한 바람에도 흩날리면서 가짜라는 것이 티가 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강우기와 관련하여 가장 흐뭇한 영화로 <춘향뎐>을 꼽았다. 한국영화의 강우기술을 불신해온 탓에 영화 속에 아예 비장면을 집어넣지 않기로 유명했던 임권택 감독도, “한국에도 이런 비가 가능하다니!”라며 감탄했던 탓이다. 길거리를 청소하는 ‘살수차’와 헷갈리면 담당자가 기분나빠 할 수 있으니 주의 요망.
없으면 섭섭한 촬영장의 필수품들
청테이프로 영화를 찍는다?
제아무리 신기한 특수렌즈, 편리한 조명기들이 만들어져도 끝까지 살아남을 만한 촬영장의 일등공신들이 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때로 무한한 내공이 필요한 분들, 한자리에 모았다.
청테이프 청테이프로 영화를 찍는다는 괴담(?)이 나돌 정도로 널리 애용됐다. 약방의 감초처럼 오지랖이 넓기로는 따를 자가 없다. 포커싱을 위해 카메라 렌즈에 표시를 하거나, 배우가 서야 하는 위치를 표시할 때 사용하고, 귀찮게 따라다니는 복잡한 선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쓴다. 그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상사태에 이용한다. 청테이프를 늘어뜨려 조명기 빛을 끊었다는 전설적인 조명감독의 이야기도 전해지며, 제대로 된 클램프가 없는 현장에서는 마이크나 작은 조명기를 청테이프로 고정시키기도 한다. 손으로도 자를 수 있고, 어디나 잘 붙으면서 뜯기도 편하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현장 여건이 좋아지면서 현란한 색감과 떼어내도 끈끈이가 남는 속성, 열에 약하다는 성질 때문에 같은 재질의 검은색 테이프나 할리우드에서 주로 쓴다는 개퍼테이프, 다양한 색깔의 종이테이프 등이 그뒤를 잇고 있다.
애플박스 사과궤짝처럼 생겨서 촬영장 곳곳에 불려다니는 해결사. 미술팀이 세트를 받칠 때 사용하던 것들을, 걸터앉거나, 키가 닿지 않는 곳에 장비를 세팅하기 위해 촬영·조명부들이 하나씩 집어가면서 일반화되었다는 설이 있다. 촬영감독이나 배우의 작은 키를 보완할 때도 쓰인다. 지금은 촬영팀마다 용도에 따라 다양한 사이즈로 제작해서 들고 다닌다.
아이스박스 일정한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필름의 특성상, 냉장고가 없는 로케이션 촬영시 없어선 안 될 존재. 낯선 장비를 거느리는 현장에서, 혼자 눈에 띄는지라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그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묻는 동네 주민의 질문을 각오해야 한다. <쉬리>에서 필름을 담당했던 한 스탭은 마지막 축구장 장면에서 이걸 메고 다니다가,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요구하는 관중에게 불려다녔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C스탠드 이것이 “세기의 발명품”임을 부인할 조명부는 없다. century 스탠드를 줄여서 C스탠드로 부른다. 쓰임새가 100가지도 넘어서, 혹은 100년이 가도 용도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유래는 아무도 모른다. 경사진 장소에서도 고정이 가능한 지지대를 가진 본체가 10kg, 본체에 연결하는 암(arm)이 1kg 정도로 만만치 않은 무게이지만, 조명팀이 기본 20개 가까이 챙기는 필수품. 조명기 스탠드로, 조명기 앞에서 빛을 끊을 수 있는 액세서리를 설치하는 지지대로 주로 이용되며 제한된 장소에서의 조명도 가능하게 해준다. 워낙 활용법이 다양해서 미국에선 C스탠드를 이용해 IQ 테스트를 한다는 소문도 있다. 무식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능숙하게 다루기가 쉽지 않아서, C스탠드를 다루는 솜씨를 보면 조명 경력을 짐작할 수 있다. 맘에 든다면 집에 들여다놓고 옷걸이로 사용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