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 Julie) 1999년, 감독 마이크 피기스 출연 피터 뮬란 장르 드라마 (폭스)
금기, 사랑보다 관능적인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통해 세상 끝에 내몰린 남자의 비극적인 절망을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연출한 바 있던 마이크 피기스는 99년작 <미스 줄리>를 통해 다시 한번, 억압된 욕망에 의해 자기 파괴의 극단으로 치닫는 인물들을 탐구해간다. 19세기의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이한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의 원작을 영화로 옮겨온 이 작품은 사회적 금기와 위계에 짓눌린 남녀의 사도마조히즘적인 욕망을 통해 위반과 일탈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
영화는 19세기 스웨덴을 배경으로 자신의 욕망에 천착하는 백작의 딸 줄리와 하인 진의 모호한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약혼자로부터 파혼을 당한 줄리는 하인들과 파티를 벌이며 절망감을 달래고, 급기야 충직한 하인 진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늦가을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일을 영화로 끌어온 이 작품은 원작이 그러하듯 다분히 연극적이다. 하룻밤이라는 시간과 저택의 부엌으로 한정된 공간 속에서 줄리와 진은 설전에 가까운 대화로만 영화를 채워나간다. 때문에 얼핏 지루할 법도 싶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초반부 줄리는 자신의 귀족적 계급우위를 수단으로 진에게 성적 복종을 요구하는 듯하면서도, 후반에 이르면 진의 남성적인 파워가 그녀를 압도한다. 그리고 결국 억압과 복종의 성적 유혹으로 전개되는 두 사람간의 욕망은 당대의 계급적, 관습적 위계와 질서에 대한 위반의 행동으로 치닫게 된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지점은 진과 줄리의 정사장면이다. 자신의 완력을 이용해 줄리를 겁탈하는 듯도 보이는 이 장면에서 마이크 피기스는 관객의 관습적인 ‘보기의 방식’조차 파괴하는 실험을 행한다. 두개의 분할화면으로 나뉘어 제시되는 이미지들은 줄리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이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병렬된다. 디지털로 연출한 마이크 피기스의 다음 작품 <타임 코드>가 4개의 분할화면을 병렬적으로 진행시킨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작품은 그 전조적인 실험에 해당한다. 연극적인 공연예술의 생생한 공간감을 살리면서도 다분히 영화적인 방식의 촬영과 편집의 연출력을 구사하는 마이크 피기스의 실험성도 찬탄할 만하다. 각색, 촬영, 배우, 작곡, 연출 다양한 영화적 역량을 구사하는 마이크 피기스는 이 작품에서도 시종 영화적 이미지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음악을 직접 작곡함으로써, 영화음악의 거장 마이크 뉴먼 못지않다는 평을 들었다. 마이크 피기스를 ‘영화작가’라 부르기에는 아직 주저할 만한 부분도 많지만, 꾸준히 저예산의 실험정신으로 자신만의 영화미학을 개척해나가는 그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