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대만, 베트남, 몽골의 공통점은 인종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외관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 나라들을 풍미했던 한류에 내재된 소구력의 근본이기도 하다. 반면에 일류(日流)는 이런 소구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동남아 전 지역에 오랫동안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예외가 있었다면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던 인도차이나 지역 정도였지만 이 나라들조차도 9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원조와 직접투자의 확대를 거치면서 결국 동남아의 다른 나라들과 동일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이 시작된 인도차이나 3국에 대해서도 돈이 없어 밀리고 있는 현실에서 한류는 일종의 신기루와 같다. 한류를 침소봉대하는 사람들은 한류가 마치 시장을 개척하는 전도사인 양 포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이 증명한 것처럼 시장은 자본이 장악하는 것이고 문화는 단지 그것을 후일담으로 포장하면서 후식을 제공할 뿐이다.
이런 한류가 뜬금없이 일본 열도를 욘사마 열풍으로 뜨겁게 달구면서 아주 생뚱맞은 일을 해치우고 있다. 일본의 한류가 엉뚱하게 남한의 반일정서를 극적으로 완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남한 드라마가 일본인들을 감동시키고 중년 여성들이 나리타 공항과 하네다 공항에서 자빠지는 풍경을 연출하는 것도 부족해 현해탄을 그룹으로 넘어오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은 동시에 뿌리 깊은 식민지 지배의 피해의식을 청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했을 것이다. 덕분에 한일관계는 해방 이후 최고조의 훈풍에 젖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40년을 끌어온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한일협정, 북한문제 등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켜를 더해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무척 기이한 현상인데 남한에서는 욘사마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우익이 주름잡고 있는 일본 역시 한류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보인다. <겨울연가>를 들여다 방영했던 것도 국영방송인 <NHK>였고 여전히 한류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아낌없이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일부 몰지각한 극우 골통들이 시비를 걸기는 하지만 한류의 물줄기를 지나치게 혼탁하게 만들 의지는 없는 듯하다. 일본 우익의 한류에 대한 속내는 우연찮게도 국내에 상주하고 있는 친한파 일본인 미즈노가 들려주고 있다. 한류에 대한 국내 어느 방송의 인터뷰에서 미즈노는 엉뚱하게도 “동남아를 여행하다보면 결국 가장 가까워지는 것이 일본인과 한국인이다”라는 동문서답을 내놓아 나를 탄복시켰다. 동남아를 적잖게 여행한 적이 있던 나의 경험으로 본다면 이건 완전히 사실과 다르다. 동남아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결국, 별로, 대개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때문에 미즈노의 속내가 내게는 마치 대동아공영권과 한일합방의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급속한 경제발전의 결과 뒤늦게 아시아에 눈을 뜬 뒤 남한은 마치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된 뒤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제국주의를 모방해왔다.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한 내려깔기의 국민적 실천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첫걸음을 뗀 뒤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해왔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목불인견의 홀대에 이르러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동북아 허브는 이것의 국가적 슬로건이라 할 수 있고 한류는 문화적 표상으로 간주돼왔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아주 오래전에 앞서 실천했던 것이 일본이었다. 동남아의 섹스관광에서 여실히 드러나지만 남한은 도쿄올림픽(1964)과 서울올림픽(1988)의 시차를 두고 아시아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이건 그림자놀이에 불과하다. 남한은 일본과 같이 제국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그 단적인 예는 일본이 동남아에 퍼부었던 경제원조의 십분의 일도 남한은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곳에는 경제적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한 일본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아시아에서 남한의 일본 따라가기는 가능성도 없거니와 결코 옳지 않다. 그건 아시아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일 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정한 아시아를 찾는 길, 평등과 우호를 기반으로 세계사의 발전을 위해 어깨를 걸 수 있는 아시아를 향한 길이 그만큼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한이 그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 길은 친일이 아니라 반일의 길이다. 일본이 한류에 대해 열어놓고 있는 그 넓은 가슴을 냉정한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동남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미즈노의 꿈은 남한으로서는 자멸의 꿈이고 자뻑의 꿈이다.